마디 1
부인 1 : 힘들었지, 회사 일은 잘되었어?
(내 남자다. 힘들었을 거야.)
남편 1 : 맨날 쳇바퀴 도는 것처럼, 그렇지 뭐.
(내 여자다. 위로받고 싶다.)
부인 2 : 회사 일이 힘들다니? 집안일도 몇 배 힘들어.
힘없는 소리만 하구는. 기운 떨어지게.
(그냥 남자이다.)
남편 2 : 기운 떨어지기는? 먼저 물어보았잖아.
(그냥 여자이다.)
부인 3 : 경이네 식구들은 해외여행을 간다고 난리인데,
우리는 싸움이나 안 하고 살면….
(남처럼 사는 남자이다.)
남편 3 : 회사 일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얼빠진 여행은?
(남처럼 사는 여자이다.)
마디 2
고생하는 남편이 안쓰럽던 아내는
말 몇 마디 나누고
남편을 힘없는 남자로 쳐다본다.
급기야,
아내는 여행계획도 짜는 등 에너제틱한 사람과
살지 못하는 처지를 한스러워할지 모른다.
그러나 남편은
‘그렇구나,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가 그렇게 의미 없이 지나가는구나.’라고
‘있는 그대로’ 자기의 처지를 이해해 주길 기대하지만….
아니, 아내 탓도 아니다.
남편 탓이다.
따지고 들면 둘 모두의 탓이다.
속마음이 보였으면,
본 그대로.
가슴이 짠했으면,
짠한 대로.
남편 먼저, 아내 먼저
속마음을 털어놓았어야 했는데….
썩어 없어질 자존심이
고개를 세우니….
마디 3
주민 센터에 다녀온 집사람은
‘지문이 안 나와, 서글퍼’라며
한숨을 쉰다.
나는 000처럼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지문이 집안일하는 데도
없어진다는 것을.
정말 몰랐으니.
휑하니 가슴에 찬 바람만 분다.
소통의 벽이 요새처럼
견고해지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속마음은 타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