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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파니 May 05. 2023

South Beach, Miami

봄방학의 정의. 

1.

우리나라에서 봄방학은 학교장재량이다. 있는 학교도 있지만 없는 학교도 많다. 그 마저도 딱 중학생 때까지, 입시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는 대한민국 고등학생에게 며칠 간의 추가 휴식은 꿈같은 소리다. 그래서 미국 대학교는 학기 중에 봄방학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잔뜩 신이 났다. 학기 중에 쉴 수 있다고? 뭔진 모르겠지만 미국 좋다! 앞뒤 금요일과 월요일 수업까지 빼먹으며 최대한 모으니까 12일 정도 나왔다.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일 미국 대학교 봄방학을 즐기기 위해 친구와 머리를 맞댔고, 12일간 뉴욕, 시카고, 마이애미, 올랜도 4개 도시 방문이라는 다소 대책 없는 계획은 젊은 날의 객기로 정당화됐다. 더군다나 미국 대학생이라면 봄방학 때 무조건 마이애미로 떠난다는 공식이 도착하기도 전에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악명 높은 스피릿 항공의 연착을 뚫고 가까스로 도착한 새벽 세시의 마이애미는 공기부터 뉴잉글랜드와 확연히 달랐다. 3월 중순 보스턴에선 아직 눈이 내리고 있는데, 여기 사람들은 다 나시를 입고 손부채질을 하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여름냄새를 맡으며 잡은 우버는 곧장 도착했고, 기사아저씨는 영어라고는 굿 오케이 노 프라블럼밖에 못하시는 라티노였다. 듀오링고 3일 차만에 냅다 실전으로 내던져진 나는 떠듬떠듬 아는 단어들을 뱉었고 찰떡같이 레게톤을 알아들어주신 친절한 아저씨 덕분에 침묵 대신 배드 버니를 들으며 직감했다. 분명 마이애미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고. 



2. 

봄방학 기간에 마이애미 비치에서 호텔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잡는다고 해도 1박에 최소 500불은 각오해야 한다. 다행히 친구와 나 둘 다 숙소에선 잠만 자면 된다라는 마인드라 선택지를 호스텔로 넓혔고 혼성 도미토리라는 점이 약간 낯설었지만 500불 주고 호텔을 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좋은 가격에 해변 바로 앞 호스텔을 예약했다.  우리 방은 4인실이었는데, 나 친구 그리고 헝가리에서 온 토마스와 다니엘이 룸메이트가 되었다. 둘은 고등학교 동창인데, 회사에 휴가를 내고 마이애미로 휴가를 왔다고 했다. 거기에 나보다 먼저 마이애미에 도착한 친구가 커먼룸에서 만난 친구를 소개해줬다. 독일에서 온 프란지 역시 대학교 봄방학을 맞아 마이애미로 놀러 온 솔로 트래블러였다. 우리는 ‘멋진 봄방학을 보내자’라는 공동의 목표로 금세 친해졌고, 거의 매일 같이 다운타운을 가거나 저녁을 먹었다. 돈 아끼려고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나씩 사들고 아무도 없는 해변에 몰래 기어들어간 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늘 즐겁다. 평소에는 그렇게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다가도 여행만 가면 말 한 번 걸어볼까 라는 용기가 어디선가 이상하게 샘솟는다. 여행이 끝나면 다시 보기 어려우니 관계의 지속에서 오는 부담도 적고, 서로 선을 지키면서도 여행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러다 이야기가 잘 통하면 그것 만큼 마법 같은 순간이 없다. 


이렇게 누군가 여행에 끼어들게 되면 계획이 종종 변경된다. 이거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가도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아 이동하지 않고 머물 수도 있고, 쉬려고 숙소에 들어갔다가도 놀러 나가자는 호스텔 친구들에 이끌려 다시 나갈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여행지에서의 예상치 못한 변수들을 사랑해 마지않는다. 최근 자주 듣던 레게톤 가수가 하필 딱 내가 마이애미에 있는 기간에 가까운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하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하룻밤동안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고, 교통편이 안 좋아 한번 가고 다신 다신 가지 않으려 했던 다운타운에 어쩌다 친구를 따라나섰다가 인생 최고의 세인트 패트릭 페스티벌을 즐기고, 잔디밭에서 초록 맥주 마시면서 예상에도 없던 주황빛 노을을 마주하고 감탄을 뱉던 순간들. 예상을 벗어난 풍경과 기대하지 않던 인연들은 늘 나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준다. 여행이라는 전제 하에 모든 게 허용되는 순간들. 



3. 

‘마이애미 바이브’가 있다. 아침에 미적미적 일어나 숙취를 깡생수로 누르고 비치타월 챙겨 미들 비치로 나가면 모두 선글라스 끼고 누워서 쉬고 있다. 한두 시간쯤 몸을 태우다 보면 금세 점심 먹을 시간이 되고, 쿠바 샌드위치 하나 투고해서 책 좀 뒤적이다 보면 해피아워 시간이다. 트롤리를 타고 10분쯤 이동해 사우스비치로 향한다. 미들비치보다 북적이고, 화려한 수영복과 네온에 시선을 빼앗긴다. 거리엔 내내 레게톤이 흐르고, 톤 높은 스페인어가 신나게 귀를 때린다. 마가리타 한 잔에 다들 기분 좋게 웃고, 우리는 쉽게 친구가 된다. 그렇게 규칙적인 듯 규칙 없는 마이애미 생활패턴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이 바이브는 카리브해 타고 쿠바에서 불어왔다. 마이애미는 지리상 쿠바와 아주 가까워서, 음식이나 언어, 인종도 유사하다. 보스턴과 날씨뿐 아니라 생활방식, 삶을 대하는 태도도 확연히 다른 게 보여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새삼 미국이 얼마나 큰 나라인지 실감했다. 비행기 타고 주에서 주로 세 시간 날아왔을 뿐인데 이렇게 다른 나라처럼 느껴질 수 있다니! 


따뜻한 햇볕 밑에서 몸을 구우며 생각했다. 봄방학에 마이애미에 간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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