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

내 우물쭈물하다 이럴 줄 알았지!

by 스테르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그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로 하여금 행렬 뒤에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단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인데, '전쟁에서 이겼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 또한 언젠가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었던 거야.


그래, 이제 너희도 이미 알아버렸어.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걸까 죽어가고 있는 걸까?

백세 시대라고들 하는데, 그럼 50세를 기준으로 1세 ~ 50세까지는 살아가는 거고 50세부터 100세는 죽어가는 거라 볼 수 있을까? 정말로 우리가 딱 100세를 살고, 죽음을 맞이하는 나이가 일정하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는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그것 또한 아무도 몰라.

게다가, 사람들은 살면서 경험을 많이 나누며 삶에서 어느 정도의 정답을 찾아 가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그 누구도 우리에게 죽음 이후의 것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 사람은 없어. 아빠도 죽음 이후의 세상이나 차원에 대한 이야기는 해줄 수가 없단다. 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지.


아무리 기고만장한 사람도 그것 앞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말이야.


죽음의 의미
죽음과 우리


죽음은 절대적으로 보편적이지만 상대적으로 특수하단다.

즉, 사람은 죽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자신 또는 주변의 사람에게 그것이 다가오면 크게 요동하고 말아. 알고 있었음에도, 시나브로 또는 급작스럽게 다가오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마치 나와 주위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반응하거든. 그래서 죽음은 우리네에게 있어 두렵고, 슬프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란다.


하지만, 재밌고도 놀라운 사실이 있어.

'죽음'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것이기도 해. 무슨 말이냐고?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다음의 표현들을 볼까?


내가 원하는 선물을 받으니 정말 좋아 죽겠다!
너와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죽어도 좋아!
그거 어땠어? 죽여주지?
배고파 죽겠다!


어때.

이만하면 우리는 '죽음'과 아주 친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지 않니? 실제로 심리학에선 '죽음'도 인간의 본성이자 욕구 그리고 충동이라고 설명하고 있어. 본능적으로 삶을 갈구하지만 또 본능적으로 죽음을 바라는 양가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본거야.


그래서 프로이트는 삶의 의지인 '에로스'와 죽음 충동인 '타나토스'를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어.

너무나 좋고 행복할 때 '죽음'을 빗대어 설명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것을 그대로 증명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흥미로운 건 프로이트가 삶의 원동력인 성적 에너지 '리비도'에 집중하여 이론을 펼치다 갑자기 죽음본능인 '타나토스'에 골몰한 그 시기야. 1920년 [쾌락원칙의 피안]에서 처음 '죽음충동'이란 말을 사용했는데, 그 시기는 프로이트가 60세가 훨씬 넘은 1차 세계대전을 겪었던 때였어. 어쩌면 죽음에 대해 학구적 에너지를 쏟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던 거지.


동전의 양면.

쾌락과 고통.

삶과 죽음.


죽음의 의미는 결국, 죽음과 우리를 아주 강력하게 연대하여 어디서든 그것을 잊지 못하게 만들려고 작정한 것 같아.


죽음의 순기능


하지만, 생명체가 온전히 생명을 가진 그것 자체로 고귀할 수 있는 건 바로 죽음이 있기 때문.

죽음이 있기에 사는 동안의 그 시간이 의미가 있는 거야. '유한'이라는 우주적 개념은 아주 많은 의미를 생성해내는 것 같아. 우리가 그저 영원히 산다고 하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빠는 세상이 아주 무기력하거나 반대로 매우 혼란스러워질 거라 생각해. 아무런 의미도 없이.


'Bucket List'란 말을 들어봤을 거야.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 말이야. 동명의 영화로부터 유명해진 이 말은 죽음과 무관하게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어.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건 살면서 한 일들이 아니라, 하지 않거나 못했던 일이란 걸 깨닫게 해주는 좋은 개념인 것 같아. (작가 주: 'Kick the bucket'은 '죽다'라는 영어의 구어체로 중세 시대 교수형을 처할 때, 올가미를 목에 두른 다음 발 밑에 양동이를 두었다 걷어찼던 것에서 유래한다.)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존재의 운명을 감수하고서라도 무언가 해보고 싶은 일을 나만의 Bucket에 담아 본다고 하면. 어쩌면. 영원히 사는 것보다 더 의미 있지 않을까? 가슴도 설레고 말이야.




결국, 죽음 앞에 사람은 겸허해진단다.

시간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 아직까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마지막 한 가지. 그것이 바로 죽음일 거야. 그리고 그것을 생각하는 순간, 지금 이 순간은 눈 부시도록 빛나는 순간이 될 수 있어. 또한 그 겸허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좀 더 애틋해질 수 있단다. 미워할 시간이 없을 거야. 사랑만 해도 모자랄 판국에.


마지막으로 유명한 영국의 극작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소개하며 이만 줄일게.

재밌지만 섬뜩하고, 섬뜩하지만 미소 짓게 만드는 글.

죽는 순간까지 그는 작가로서 우리에게 묵직하고도 유쾌한 메시지를 던졌단다.

그 묘비명을 보고 너희들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과 다짐은 과연 무얼까?



"내 우물쭈물하다 이럴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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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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