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어디에나 있단다.
배우려는 마음이 있다면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아빠가 미루고 미뤘던 운동을 시작했단다.
바쁘고 고된 업무와 잦은 출장으로 녹초가 되어 미루다가, 의지박약의 아빠를 보여주기 싫어 밖으로 뛰어 나갔지. 정말 집 밖으로 한 발을 내어 놓기가 왜 이렇게 힘들었던지.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해 시작한 그 운동은 오랜 시간 지금까지 이어오게 되었어. 덕분에 너희들에게도 같이 운동을 하자고 할 수 있는 솔선수범의 기회가 오기도 했고 말이야.
아빠가 정말 마음 단단히 먹고 밖으로 나갔을 때.
아빠는 보았단다. 저마다의 의지를 가지고 나온 수많은 사람들을. 나갈까 말까 고민하던 내가 부끄러울 만큼. 자신을 가꾸려, 건강을 지키려, 목표를 이루려 걷고 뛰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어.
'아, 여기저기 정말 배움이 넘쳐나는구나.
내가 태만함을 택할 때, 누군가는 자신을 위해 뛰고 있었어.'란 깨달음.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논어 술이(述而) 편에서 공자가 한 말이야.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스승으로 받들 만한 사람이 있다.'는 뜻. 세계적으로 숫자 '삼(三)'은 철학적으로 의미가 깊은 숫자야. 서양의 삼위일체, 동양의 도덕경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천지인, 여러 번 생각한 뒤 행동으로 옮기라는 뜻의 '삼사이행' 등. 즉, 상징적인 '삼(三)'이란 숫자로, (최소 ~ 최대) 사람들과의 조화 속에 배움이 있다는 걸 강조한 것. 결론적으로, 누구로부터든 배울만한 것이 있다는 뜻이 돼.
아빠가 힘겹게 집 밖으로 나가, 산책로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를 보고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정말로 흥미로운 건, 공자는 '삼인행필유아사' 뒤에 다음의 말을 붙였단다.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
'그중 스승으로 삼을 만한 사람은 기꺼이 따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학습을 통해 바꿔라.'
아빠가 [직장내공]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해.
나와 맞지 않거나 이상한 사람은 피하고, 마음 잘 맞는 사람들과만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게 사람의 본능이다. (중략) 싫은 사람에게서도 배울 게 있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것도 배움이지만, '저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지'도 소중한 배움이다.
- [직장내공] 중, 128p -
배움이란 건, 꼭 올바른 것만을 습득하는 게 아니야.
세상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거든. 위에서 말한 세 명의 사람 중 한 명은 배울게 많고, 또 한 명은 배울 게 없을 수도 있을 거야.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아무도 배울 게 없는 사람과 함께 지낼 수도 있어. 또는 그 반대일 수도 있고. 어떨 땐 내가 배운 걸 알려줘야 하는 때도 오곤 해. 하지만 그럼에도 배움은 어디에나 있다는 생각은 꼭 부여잡고 있어야 한단다. 그래야 그 누구와, 어떠한 사람과 있어도 너희는 배움을 얻고 성장할 수 있을 거야.
널린 배움을 습득하는 법
고백하자면, 아빠도 그랬던 것 같아.
무언가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으로부터는 그것을 얻으려 노력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면서는 그저 나무라거나 불평만 했었거든. 하지만 어느 날, 아빠도 내가 싫어하거나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의 행동을 그대로 하는 걸 보며 화들짝 놀란 때가 있었어. 배우려 하지 않고 그저 불평만 하면,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게 되고 어느샌가 나 또한 배우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무의식 중에 할 수 있게 돼.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 '배움'을 좀 더 얻으려면 다음과 같은 자세를 취해야 한단다.
첫째, 배움은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있다면, (나 자신도 사람이니) 나 홀로 있더라도 배움은 항상 어디에나 있다는 생각.
즉, '의미'를 찾고자 주위를 둘러보면 배움은 어디에나 있어. 아빠는 그렇게 생각해. 우리 인생은 마치 신이 우리에게 내어준 '숨은 그림(의미) 찾기' 같다고. '숨은 의미'를 찾으며 우리는 살아가는 게 아닐까. 주변에 널려 있는데 그저 지나치는 우리는 아닐까. 좀 더 자세히 보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이며 동공이 확 열리는 것처럼. 몰랐던 의미를 주변에서 발견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확 열릴 거라 믿어.
둘째, 나이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
아빠는 너희들로부터도 많이 배운단다.
그리고 아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한테도.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도. 배움엔 나이와 때가 없다고 생각해.
탈무드에도 이런 말이 있어.
나는 스승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친구에게서 많이 배웠고, 심지어 제자들에게서도 많이 배웠다.
나이가 많다고, 오래 살았다고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가리키려 하는 건 정말 지양해야 해.
시대가 바뀌었어. 나이는 '나일리지(나이 + 마일리지)'가 아니야. 경험과 실익이 앞선 지금의 시대엔, 더더욱이 나이와 때를 가려선 안된단다. 아빠도 그것을 항상 명심하려 노력해. 나이 어린 후배에게 초면에 함부로 말을 놓거나 무언가를 충고하지 않으려 조심하는 이유야. 그러면 오히려 내가 배우는 게 많으니까.
셋째, 눈과 귀, 머리와 마음, 몸과 영혼을 열어 배울 태세를 갖춘다.
배움을 위해서는 오감을 열어야 해.
'의미'와 '배움'은 나에게 설렁설렁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아가고 발견해야 하는 것이거든. 원효대사의 해골 물에 대한 일화를 잘 알지? 깨달음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내 마음속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야. 똑같은 일상에서도 무엇을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어.
심리학에는 '지각', '인지'심리가 있단다.
사람의 오감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지각),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인지)를 연구해. 그 과정을 통해 사람은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지 결정하거든. 과거의 경험과 미래에 대한 의지가 우리의 삶을 구성해 나아가는데, 양질의 배움으로 우리는 더 좋은 삶을 맞이하지 않을까 싶어. 아니, 분명 그럴 거라 아빠는 믿는다.
그러니까, 배움은 어디에나 있단다.
배우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렇게 되면 어느샌가 더 많은 사람들이 너희를 배우려 할 거야.
그런 사람이 되렴.
그렇게 되더라도 겸허해야 하는 것은 잊지 말고!
[저서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