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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27. 2016

사모곡 대신 사모전 (思母錢)

오늘도 사모곡 대신 사모전을 드립니다.

-사모곡 (思母曲)-


[문학] 고려 가요의 하나. 아버지의 사랑보다 어머니의 사랑이 더 크고 지극함을 낫과 호미에 비유하여 읊은 노래로, 《악장가사》와 《시용향악보》에 전하며, 작자와 연대는 알 수 없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나는 어머님의 손에 자랐다.

그 손은 대기업 임원 아내의 것으로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아왔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의 세상은 그 손으로 하여금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만들었다.


식당 보조와 여관 카운터, 그리고 가사 도우미까지.

어머니 손에 묻은 것은 물 한 방울만이 아닐 것이다.

오만가지가 묻었을 그 손에 난 경의 이상을 표한다.


난 그 손에 자랐기 때문이다.


장황하게 개인사까지 드러내며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고로 나는 어머니께 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땅한 도리다.


하지만, 아들로 태어난 나는 어머니께 살갑게 굴기가 쉽지 않다.

생각해보니 지난  몇십 년 동안 안아 드린 적도 없고,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도 없다.


민감한 사춘기나 고등학교 시절엔 그저 사고 안치고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효도라 생각하고, 그것만으로도 내 역할은 충분히 다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업무상 멀리 다른 나라에 와서 살고 있다.

문득, 전화 한 통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정을 맞이하여 추가 용돈을 송금했기 때문이다.


살갑지 않은 아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용돈을 보내며 안부를 묻는 것이다.

예상대로 많이 좋아하신다.


보내드린 금액은 몇 백만 원 단위지만 오만가지를 손에 묻혀가며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의 은혜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걸 나는 잘 안다.


하지만 송금하기 전에 금액을  저울질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돈이 빠듯한 게 아니다.

맘이 빠듯한 것이다.


어렵게 자랐지만 이제는 나도 제법 내 아이들은 흙수저는 벗어나게 해 준 정도의 삶을 살고 있다.

직장인으로서 미래가 불안정할지언정 지금 당장은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 돈과 약간의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여유도 있다.


그런데도 마음이 빠듯하다니.

아니, 키워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빠듯해도 내 모든 것을 드려야 함이 마땅하거늘.


곰곰이 생각해보면 배은망덕이다.

아니 곰곰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무조건 배은망덕이다.

난 이렇게  스스럼없이 배은망덕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치매에 걸린 부모를 버리거나, 약해진 부모를 때리는 것만이 배은망덕일까?

그 배은망덕과 내 배은망덕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갑자기 사모곡(思母曲)이 떠오른다. 뭔가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 것이다.

군대에서 유격 훈련 중 진흙바닥에서 뒹굴며 불렀던 어머님의 은혜도 떠오른다.

마음은 이러한데 표현이 잘 되지 않는다.


사는 게 바빠서, 맘에 여유가 없어서, 아들이라는 핑계로. 그리고 배은망덕해서.


요 몇 년 전 어머니의 칠순잔치. 돈으로 섭외한 사회자가 우리를 어머니 앞에 앉히고 눈물을 쥐어짜는 멘트를 한다. 너무나 의도적이어서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지만 누나는 태어나서 저런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 없이 운다. 이런 것에 얼굴을 찡그리고 우는 모습이 보기 싫어 이벤트가 끝나고 누나에게 꾸짖었다.


"그러니까 평소에 잘해, 이럴 때만 울지 말고."


내가 내뱉었던 그 말의 화살촉이 나를 향해 있다.


나 또한 어느덧 부모가 되어 아이들의 재롱과 귀여움에 흠뻑 취해있다.

이것이 영원할 것처럼. 언젠간 이 녀석들도 나에게 배은망덕할게 뻔하다. 용돈을 보내기 전에 주저할 것이고, 각자 자기 사랑에 빠져 부모는 뒷전일 것이고, 일에 치여 연락은 뜸할 것이다.


내가 아들을 해봐서 잘 안다. 이 녀석들아.


어쩌면 이러한 배은망덕 또한 거두는 것이 부모의 손이 아닌가 싶다.

우리 어머니의 손은 오만가지가 다 묻어 있어서, 이쯤의 배은망덕은 아무것도 아닌가 보다.


다만 얼마만이라도 아들에게서 용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래도 자식을 헛되이 키우지 않았다는 생각을 들게 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나는 안부 전화도 같이 하니까.


그러고보난 그렇게 매우 많이 배은망덕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오늘도 사모곡 대신 사모전 (思母錢)을 드린다.

많이는 배은망덕하진 않지만, 아들이라 살갑지 않은 탓에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앞으로는 용돈의 액수를 정할 때 지금보다는 조금만 덜 고민할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조만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리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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