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한 이 시절에 글 쓰시고 운동하시는데 어려움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선생님을 뵈었던 2008년 그 해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해의 기억이 그리 선명하지 않고 어렴풋합니다. 글과는 전혀 상관없던 평범한 직장인은, 글을 쓰고 나서야 그때를 선명히 간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한탄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소중한 연이 닿아 선생님께서는 제 결혼식 주례를 서주셨지요.
결혼 전 한 번, 결혼식 당일 그리고 결혼 후 감사인사 식사까지. 진작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면 선생님을 한 번이라도 직접 뵙는 것이 얼마나 큰 일생일대의 일인지를 알았을 텐데... 그때는 무지했고, 이제는 감히 직접 연락드리지 못하니 이렇게나마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저 같은 사람도 글을 쓰고 있다니요. 어쩌면 선생님을 만난 게 누군가의 계획이 아닐까란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어디에서 글감을 얻으시는지, 어떻게 글을 쓰시는지'라는 제 질문에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네 일이나 신경 잘 써라!'라는 거침없는 답을 주신 바 있습니다. 글도 모르고, 인생도 모르고, 대작가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풋내기 젊은이가 의례상 여쭤본 말을 선생님은 그대로 간파하셨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도 제 질문의 깊이는 '깊이'라는 말을 쓰기가 무색할 정도로 얕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주례사로 '돈'과 '경제력'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니, 열심히 그리고 많이 돈을 벌라 말하셨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주례사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글과 문장을 흠모하고나서부터는, 왜 그러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주신 말씀을, 마음을 넘어 뼛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 또한 글을 쓰고 있고, 그 기저의 주제는 '먹고사는 고단함'입니다.
어쭙잖게 선생님과 같은 주제를 쓰고 있지만, 저마다의 고단함은 고유한 것이므로 제 안에 있는 그대로의 것을 내어 놓고 있습니다. 주례사로 해주신 말씀 하나하나가 주옥이란 걸 느끼면서 말입니다.
그 고단함은 유쾌하지 않고, 밝지 않은 것들인데 저는 그게 참 싫지가 않습니다.
고단함에 몸서리치며 세상의 부조리와 싸울 때에는 그것들이 경멸스러웠는데, 부조리한 건 세상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조금 진정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먹고사는 고단함은 초라한 게 아니라 고귀하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그 깨달음을 하나하나 글로 써 내려가다 보니, 몇 권의 책이 되기도 했습니다. '가난'과 '먹고사는 고단함'은 어느새 제 글의 마르지 않는 글감이 되고 있는 겁니다.
선생님.
글을 쓰기 시작하니 선생님이 더 크게, 멀리 보입니다.
선생님과 같이 세상을 울리는 대작을 쓸 수 있을까란 자문조차 감히 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글이라도 계속해서 써 나가야지...라고 다짐합니다. 먹고사는 고단함은 계속될 것이고, 나의 지난 어려웠던 시절과 경험들은 그저 가만히 마음속 상자 안에 갇혀있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글이 주는 즐거움과 글이 주는 놀라운 선물들을 거부할 도리가 저는 없습니다.
언젠가 직장인의 페르소나를 벗어야 할 때.
저는 선생님과 같이 내 목소리를 내는 글을 쓰고, 그 글이 많은 이에게 가치가 되어 그것으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또렷이, 제대로 살아나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