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편견

오만과 편견은 여행의 준비물이자 기념품

by 스테르담
편견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누군가가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반전매력'이란 말이 있다.

첫인상은 좋지 않았으나 알고 보니 사려 깊고 따뜻한 사람이란 걸 알았을 때, 자연스레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단어다. 제인 오스틴의 명작 '오만과 편견'은 이러한 주제를 다룬다. 편견으로 인해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고, 오만으로 인해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없던 남녀 주인공은 서로의 '반전매력'을 알게 되며 사랑의 결실을 이룬다.


이러한 '오만'과 '편견'은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어느 나라나 도시를 방문할 때 잘 알고 있다는 '오만'은 많은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스며든 '편견'은 방문한 곳의 매력을 절하한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모순과 역설의 반복이듯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은 꽤 큰 여행의 묘미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전부가 아닐 때,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러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쾌감은 오늘이라도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게 하는 원동력이다. 일상에서 우리의 오만과 편견은 빗장을 걸고 방어적인 태세로 일관하지만, 낯선 곳에 도달하면 그 빗장은 자연스레 열리게 된다. 여행은 이처럼 꽉 막힌 무언가를 뚫어주고, 얽히고설킨 관념을 해체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는 '오만'과 '편견'의 전형이다.

성매매와 마리화나 그리고 도박이 합법이 나라. 이 이야기를 들으면 그 누구라도 편견에 휩싸일 것이다. 아마도 그 편견은 '환락'이란 단어를 끄집어낼 것이고, 소돔과 고모라 또는 배트맨이 살고 있는 고담시티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내가 마주한 네덜란드는 '환락'과 '퇴폐'가 아닌, '자유'와 '유쾌함'이 있는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거의 모든 도시가 소와 양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나라였다.


더불어, '더치페이', '더치커피'와 같은 어설픈 지식은 내 오만이었다.

네덜란드엔 더치페이가 없으며, 더치커피 또한 없다. '더치페이'는 네덜란드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영국인들이 네덜란드 사람들을 조롱하려 만든 말이고, 배에서 뜨거운 물을 구할 수 없어 차가운 물로 내려 먹는 커피를 보고 일본 회사가 '더치커피'란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여자 친구와 밥을 먹을 때도 '더치페이'를 하냐는 나의 질문과, 암스테르담 한 카페에서 '더치커피' 메뉴를 끝내 찾지 못했던 내 모습은 어설픈 지식과 오만의 방증이었다.


이 외에도, 마약과 갱단이 판을 칠 거라 생각했던 멕시코.

그러나 따스한 햇살 광장 아래 자전거와 살사 댄스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 낭만이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길거리 곳곳의 쥐와 악취를 맞이해야 했던 프랑스 파리, 무뚝뚝할 줄만 알았지만 생각보다 다정했던 독일 사람들 등. 무엇이 편견이고 무엇이 오만인지 헷갈리는 순간들은 여행의 묘미였으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던 생각과 관점에 어느 정도의 균형을 가져다준 의미 있는 경험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새롭게 얻은 이 경험이, 내 또 다른 '오만'과 '편견'인 것을.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는 것을 기준으로 세상의 경계를 정한다.

나에게 친절했던 독일인으로 그 편견이 깨졌을지 모르지만, 만약 불친절한 경험을 했다면 독일인은 무뚝뚝하다는 내 편견은 더 단단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속되어 바뀌지 않는다면 오만으로 굳어졌을 테고 말이다.


그러하므로 우리는 여행을 해야 한다.

무엇이 편견이고, 무엇이 오만인지를 자각해야 한다. 그 경계의 면을 직접 경험해야 한다.


편견과 오만은 우리네 인지적 소모를 줄여주는 하나의 효율 기제다.

편견이란 틀은 깨는 것이라기보단 넓혀가는 것이고, 오만이란 응어리는 깨부숴야 할 게 아니라 갈고닦아야 하는 것이다.


혹여라도 편견으로 어느 나라를 미워하지 않기를.

혹시라도 오만으로 어느 도시를 오해하지 않기를.


오만과 편견은 여행을 위한 준비물이자.

일상으로 돌아올 때 가지고 와야 할 기념품이라는 걸 나는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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