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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08. 2016

가족이라는 여행

가족, 여행 그리고 가족 여행

나에게 가족이란


가족이란 단어는 참 정겹다. 그 정겨움은 그 단어를 말하거나 생각할 때 마음으로 곱씹을 정도다. 내가 힘들 때 나 스스로가 더 이상 나를 응원하지 못할 때. 바로 그때. 가장 기대고 싶은 사람들 일지 모른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은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세상을 살아온 내가 깨달은 바다. 아버지의 부재는 바로 경제적 빈곤으로 나타났다. 금수저는 아니라도 최소 철수저 이상의 것들이 흙수저로 바뀌었다. 아니, 수저라는 것 자체가 없어졌다. 찰나였다. 가족의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는 잘 모른다. 다만,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와 방황하는 누나를 가족으로 둔 나는 늘 혼자였다. 친척과의 왕래도 거의 없었다. '가족'이란 걸 느끼지 못했다. 나는.


살아가는 데 있어 결핍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결핍으로 인해 삐뚤어질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올곧고 싶었다. 즉, 가족의 부재를 탓하며 방황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그 '가족'을 직접 꾸리기로 했다. 결핍을 채우고 싶은 욕망이었다. 가져 보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이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절대자에 대한 오기였는지도 모른다. 결혼을 위한 돈이 있을 리 없었고 원하는 때  원하는 사람과 조건을 맞추어 짝을 지을 상황도 아니었다. 내가 꿈꾸던 가족을 이뤄내기 위해선 그저 기다려야 했다. 결핍에 대한 간절함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갔다.


'죽으란 법은 없다'는 말이 싫었다. 가족은 부재했는데, 가족이라는 한 사람이 친 경제적 사고로 정말 죽음을 결심했던 나였다.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는데 땅속까지 갔었던 경험이었다. 그래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어느 날 문득 화목한 가정에서 아름답게 자란 한 여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곤 내 옆에 와이프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첫눈에 반한 그 날, 얼굴에서 본 환한 빛은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화목한 기운이었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있었다. 가족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나였으니. 그토록 갈망하던 가족이라는 화목함에 내가 적응하지 못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예전의 결핍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와이프는 두 아이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고 그리 잘나지 않은 남편을 극진히 사랑하고 치켜세워준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매일매일을 다짐한다. 좋은 남편, 그리고 좋은 아빠가 되겠노라고. 그래서 나는 와이프와 아이들을 하루에도 몇 번을 안아준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내가 받지 못했던 것이니 더 열심히 하게 된다. 다시, 나는 올곧고 싶었다. 결핍으로부터.


이른 저녁.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난 어느 날. 집으로 가 초인종을 누른다. 우당탕탕 뛰어나오는 아이들이 '아빠'를 연신 외쳐댄다. 와이프는 나를 위해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를 흩어내고 있다. 첫째 녀석은 오늘 배운 피아노를 연주해주겠다며 즉석 리사이틀을 열고, 둘째 녀석은 내 어깨에 매달려 어리광을 부린다. 얼굴엔 미소가, 가슴은 울었다. 꿈꾸던 모습들이 눈 앞에 펼쳐지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건 정말 꿈일까? 가상현실일까? 내가 지금 VR을 끼고 있는 걸까? 너무 행복한 눈물은 가슴 깊은 곳에서 난다는 걸 몸소 알게 되었다. 그건 '가슴물', 또는 '마음물'이라고 해야 할까? 어감이 영 이상하지만, 느낌은 영 뜨거웠다.


나에게 여행이란


여행이라 말은 사람을 참 설레게 한다. 설레발을 치게도 하고. 하지만 여행이란 말은 나에게 '사치'란 말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 돈이 없어 여행을 못했다면 궁색한 변명까? 돈이 없어보면 안다. 정말 돈이 없어서 여행을 못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란 걸. 돈을 구하기 위해 물리적 시간도 없다는 걸. 그래서 여행은 사치란 걸. 그리고 늘 혼자였기에 '혼자 하는 여행'과 같은 그럴싸한 젊은 시절의 도전 과제는 나와는 영 어울리지 않았더랬다. 늘 외로움을 달고 다녔으니, 어쩌면 난 늘 혼자 여행 중이었는지 모른다.


다섯 살 무렵. 아버지가 운전하시는 차 뒤에 앉아 어디론가 다니던 것이 내가 기억하는 가족여행의 전부다. 어느 동물원이나 놀이동산, 아니면 그 둘을 합쳐 놓았던 곳이었을 수도. 친구들과의 MT, 그리고 감정과 분위기에 이끌려 바다로 내달린 여행에 대한 기억도 몇 개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 해외를 나가지 못했던 것이 한이었는지, 지금은 전 세계를 누비며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스스로 혼자 여행을 가는 건 그리 즐기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리저리 출장을 다니다 보면 본의 아니게 혼자 여행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된다. 여행의 매력은 다른 누군가의, 다른 어느 곳의 일상을 겉핥아 본다는 것이다. 일상에 녹아들진 않되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는 일상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산 정상에서 저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야경을 보는 것과 같다. 그 야경을 한 발자국 떨어져 보는 것이 여행이라면, 야근을 하며 그 불 빛을 밝히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처음 해외 이곳저곳을 누비며 알게 된 수많은 볼 것들과 한 발자국 떨어진 일상의 이야기들이 나는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 한 곳이 헛헛해졌다. 나 혼자 호의호식하는 거 아닐까...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문득,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맛본 것을 맛보게 해 주고 내가 본 것을, 내가 느낀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가봤던, 좋았던 그곳에 가족을 꼭 데리고 가고 싶다는 또 다른 열망이 생겼다. 그래야 여행이라는 것이 완성될 것 같았다. 여행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완성하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난 그저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을 에두르고 있나 보다.


나에게 가족 여행이란


나에게 결핍이고 사치였던 것들. 그 두 가지가 어느새 생겨버렸다. 나에겐 궁극의 사치라 여겼던 것들. 화목한 가족 그리고 가족과의 여행. 둘째가 아직 와이프의 뱃속에 있을 때 시작된 일본 여행.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신나게 물장구치던 괌 여행. 여행이라기보다는 관광, 아니 전쟁이었다. 극기훈련이라 해도 좋다. 아이들이랑 어디라도 가야겠다는 의무감에 비롯된 움직임들. 몸은 사방으로 지쳤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 우리, 와이프와 내 짐보다 더 많은 아이들의 짐. 아이들의 짐보다 더 짐이 되는 아이들.


어느덧 두 아이는 말이 통하는 나이가 되었다. 뭘 원하고, 뭘 원하지 않는지 분명하게 말한다. 때론 귀찮아 대충한 답변에 논리적으로 달려들기도 한다. 나와 아이프의 말이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해 적잖이 우리를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때 감사하게도 유럽 어느 한 나라에서 주재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 일은 바쁘고 어깨는 무겁다. 하지만 가족이 함께 있다는 것. 그리고 차를 타고 조금만 움직여도 여행이 된다는 것. 아니, 그 차 안에 가족이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여행이라는 것이 마음의 위안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우리 가족이 함께한 궤적을 곱씹고 남기고자 한다. 그 궤적에는 이야기가 있고, 추억이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함께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가봤고, 무엇을 했는지를 초점 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였다는 것. 그리고 먼 길을 이동하고, 한 없이 걷고, 함께 먹고 부둥켜 잠잤던 그 시간을 기록하여 아이들이 자랐을 때 또다시 함께 보고 싶은 것이다. 내가 어릴 때 가지지 못했던 그 시간을 우리 아이들에게 줄 수 있어서 난 너무 행복하다. 나의 어려웠던 어린 시에 대한 보상이라면, 나는 나의 과거를 달게 받아 들일 수 있다. 조금씩 아빠가 되어가고 있나 보다.


나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고 싶진 않다. 하지만, 가족을 우선으로 하다 보면 희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 경우 난 그 희생을 공유하고 싶다. 가족이 알게 하고 싶다. 공유하지 않고 희생만 하면 오히려 더 가족과 멀어진다. 난 너희들을 위해 이렇게 희생하는데 알아주지 않다니. 마음이 저만치 멀어져 간다. 그건 철없는 투정이다. 표현하지 않고 투정하는 아빠에게 아이들은 다가오지 않는다. 도망갈 뿐이다. 오히려 알게 해 마음으로 가까워지고 서로 위로하고 감사해야 한다. 그게 가족이다.





'여행'이란 말은 어디에 갖다 붙여도 참 잘 어울리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인생'을 여행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반대로 '여행'을 '인생'에 빗대기도 한다. 혼자 하는 여행이나 친구와 하는 여행. 또는 부모님과, 형제와, 친척과. 아니면 여행지에서 만난 새로운 누군가와의 또 다른 여행. '여행'이란 말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추억과 기억, 그리고 해보지 못한 미지의 그것들. 그래서 설렌다. '여행'은. 그 말 자체로도.


그래서 '여행'은 어쩌면 '가족'과도 잘 어울릴지 모른다. '인생'을 '여행'으로 표현하자면 '가족'은 그 여행을 함께하는 동반자다. 또 '가족'을 '여행'에 빗대어보면 만나고 이루어가는 그 과정이 여행과 같다. 부쩍 말이 많아진 둘째, 감수성이 솟아나는 첫째의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이 녀석들을 매일매일 여행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기록하려 한다. 그리고 기억하고 추억하려 한다.


우리 가족의 여행을.

그리고 '가족이라는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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