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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09. 2016

로만틱 가도와 고성 가도의 그 어디쯤 Part.1

독일 하이델베르크, 퓌센, 로텐부르크 가족여행


여정


네덜란드 to 하이델베르크 (511km)/ 1박
하이델베르크 to 퓌센 노이슈반슈타인성 (332km)
퓌센 노이슈반슈타인성 to 로텐부르크 (221km)
로텐부르크 to 안스바흐 (141km)/ 1박
안스바흐 to 네덜란드 (634km)



이번 주말에 비상소집 회의 없을 것 같은데 가족 여행 갈까?


가족 여행은 항상 이렇게 시작된다. 주재원이란 신분이 이렇다. 닥쳐야 알 수 있다. 유럽 여행의 백미는 비행기표를 싸게 구하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 몇 개월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한다.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 결국, 닥쳐서 가는 자동차 여행이 우리 가족 여행의 틀이 되었다. 하지만 여행이란 게 닥쳐서 가는 것도 꽤 매력이 있다. 그리고 먼 길을 자동차로 가며 도란도란 나누는 우리들의 이야기도 좋다. 어쩌면 유럽 '가족 여행'의 백미는 먼 길을 갑자기 닥쳐서 떠나는 자동차 여행일지도 모른다.




주재지인 네덜란드는 차로 이동하여 여행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 바로 아래 벨기에부터 그 아래 룩셈부르크와 프랑스. 옆 나라 독일도 갈 데가 많다. 위로는 덴마크가 있다. 800~1,000km 편도가 사정권이다. 운전면허는 있지만 고속도로 면허는 따로 따야 할 것 같은 와이프 덕분에 운전은 오롯이 내 몫이다. 다행히 나는 운전하는 것을 즐긴다. 천생연분인가 보다. 그나마 일정이 긴 여름휴가나 겨울 마감 휴가에는 차로 4,000km를 이동하여 여행하곤 한다. 그러면 유럽 한 바퀴를 돌 수도, 저기 아래 이태리 곳곳까지 궤적을 그릴 수 있다. 몸은 힘들지만 운전하는 내내 많은 생각들이 정리된다. 도란도란한 가족 간의 대화도 내게 힘을 준다. 그래서 가족 여행이 좋다.




초등학교 갈 나이가 된 첫째와 그 두 살 아래 둘째 녀석에겐 몇천 키로의 자동차 여행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 그래도 어느덧 가족 여행은 이런 것인 양 잘 받아들인다. 창 밖을 스쳐가는 경치, 아빠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의 꿀잠, 휴대용 DVD 플레이어의 만화, 달달한 간식과 두 형제간의 끝말잇기는 아이들의 버팀목이다. 아빠는 어려서 이런 기회가 없었으니, 너희들은 여기 있을 때 마음껏 누리라고 설명하려다가도 이내 그 마음을 접는다. 당최 그 말이 아이들의 귓등에도 들리지 않을 것이길 알기에. 언젠간 스스로들 깨달을걸 알기에.


이번엔 어디로 갈까? 계획 좀 짜 줄래?


회사에서 정신없는 사투를 벌이는 동안 여행 계획은 와이프의 몫이다. 전해 들은 이야기와 검색 신공의 산물은 꽤 정교한 여행 일정이 되어 나온다. 어느 여행사 못지않을 정도로. 와이프는 일단 운전해서 갈만한 곳의 정보를 모은다. 그리고 돌아볼 곳을 정하고 또 숙소를 정한다. 숙소는 가능한 취사가 되는 곳을 잡는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의 먹성을 고려할 때 밥과 라면은 항시 준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5월 초엔 예수 승천일이라는 기념일이 있다. 올해는 한국의 어린이날과 맞물려 같이 쉬니 부담도 적었다. 한국은 쉬지 않는데 이곳만 쉬는 경우는 고역이다. 쉬고 와서 메일함을 열어보면 몇 백개의 메일이 쌓여있다. 반대의 경우가 그나마 괜찮다. 예를 들어 한국의 구정이나 추석 기간엔 오는 메일 없이 오히려 내가 보낼 수 있다. 이런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계산된 곳은 바로 독일. 퓌센의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다녀오는 여정으로, 가는 길에 하이델베르크와 오는 길에 로텐부르크를 거치는 여정이다. 최종 운전 거리는 약 1,800km가 예상된다. 뭐 이쯤이야. 나하나 힘들고 가족이 행복하다면... 은 무슨. 난 그냥 좋다.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가족 여행이. 쌓여 있는 업무와 해결되지 않는 이슈들, 기약 없는 월급쟁이의 서러움에 대한 달콤한 순간.


시속 200km, 그리고 잠든 아이들


네덜란드 고속도로의 최고 속도는 130km다. 독일 도로에 도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유명한 아우토반. 내달리는 차들과 보조를 맞추다 보면 어느새 200km로 달리고 있다. 중간중간 100~120km의 도로가 갑자기 튀어나온다. 카메라와 곳곳에 숨어 있는 경찰이 눈에 띈다. 아우토반이라고 무작정 내달리다 몇 백유로의 고지서를 받은 후에는 200km로 달리다가도 제한속도 표지판이 나오면 칼같이 지키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참 약 오르다. 무작정 달리라고 해 놓고 중간중간 함정을 파 놓은 느낌이다. 200km로 달리는 와중에도 왁자지껄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잠이 들었다.


빨리 달리고 싶지 않아도 달려야하는 독일 아우토반


로만틱 가도와 고성가도


네덜란드에서 출발한 첫 번째 목적지인 하이델베르크까지는 약 500km 거리다. 집을 출발하여 약 2시간이 지나 국경을 넘는다. 국경을 넘어 남서쪽으로 계속해서 내달리니 드디어 하이델베르크 표지판이 보인다.


독일에는 '로만틱 가도'와 '고성 가도'가 있다. '로만틱 가도'는 마인 강변의 뷔르츠부르크에서 뮌헨 남서쪽의 퓌센까지를 잇는 길이다. 그 길은 독일과 이탈리아를 연결하는 중세의 교역로였다. 낭만이 먼저 떠오르지만 로마로 가는 길이라니. 얕고 넓은 지식 하나가 더해진 느낌이다. '고성 가도'는 만하임부터 시작되고 말 그대로 50여 채의 고성과 성의 폐허가 남아 있는 곳이다.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번 가족 여행지로 꼽은 로텐부르크는 이 두 길이 겹치는 곳이고, 노이슈반스타인 성이 있는 퓌센은 '로만틱 가도', 하이델베르크와 안스바흐는 '고성 가도'에 속해있다.


가로 '고성 가도', 세로 '로만틱 가도' (출처: unclecho.com)


드디어 하이델베르크 시내로 접어들어 도심 한가운데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5시간의 차량 이동은 그리 힘들진 않았지만 어서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싶은 욕구를 불러왔다. 이렇게 하이델베르크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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