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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11. 2016

로만틱 가도와 고성 가도의 그 어디쯤 Part.2

독일 하이델베르크, 퓌센, 로텐부르크 가족여행


여정


네덜란드 to 하이델베르크 (511km)/ 1박
하이델베르크 to 퓌센 노이슈반슈타인성 (332km)
퓌센 노이슈반슈타인성 to 로텐부르크 (221km)
로텐부르크 to 안스바흐 (141km)/ 1박
안스바흐 to 네덜란드 (634km)




"하이델베르크 이야기"


하이델베르크, 괴테를 불륜에 빠트린 아름다운 도시?


저마다의 도시는 각각의 스토리를 품고 있다. 그 스토리가 곧 그 도시를 단 몇 마디로 설명한다. 그래서 가보고 싶게 만든다.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자 일종의 마케팅인 셈이다. '신성한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하이델베르크는 명실공히 '학문의 도시'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1386년)이 중심에 있다. 더불어 전체 인구 14만 명 가운데 20%가 넘는 3만여 명이 학생이다. '학문의 도시'라는 말을 안 쓰면 이상할 정도.


학문의 도시와 더불어 가을이면 총천연색의 컬러를 뽐내는 이 도시는 괴테를 불륜에 빠뜨린 오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8번이나 이곳 하이델베르크를 방문한 괴테는 유부녀인 빌레머 부인과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 도시가 아름다우니 불륜에 빠졌다는 명제는 성립이 안되더라도, 그 정도로 아름다웠을까에 대한 의문은 우리의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어쩌면 '오명'이 아니라 '명예'일 수도 있겠다.


네카르 강가를 사이에 두고 갈라진 양쪽 언덕의 도시 하이델베르크의 첫인상은 '자유로움'이었다. 더불어 피렌체와 프라하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강을 두고 갈라진 언덕이 피렌체를, 그리고 카를 테오도르 다리는 프라하의 카를교를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네카르 강가가 내려다보이는 장면에 멋있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다양한 집들도 아이들의 눈을 사로 잡기엔 충분했다. 물론, 어른의 눈으로도 그러긴 마찬가지였다.


네카르 강가, 햇살과 자유를 즐기는 사람들



하우프트 거리를 지나 학생 감옥으로


가장 큰 번화가인 하우프트 거리를 지나친다. 번화가에 걸맞게 여러 식당과 상점이 주를 이룬다. 관광객들의 행렬은 언제나 활기차다. 지나다 부딪치는 일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이방인으로서 삶을 체험하러 온 사람들은 늘 이렇게 관대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도 이러한 마음의 여유는 필요하다. 물론, 나부터. 아이들도 신이 났는지 씩씩하게 걷는다. 아마 20분 후면 다리가 아프다거나,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조건으로 더 걷는 것을 협상하려들 것이다. "유럽 여행은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잔소리를 일발 장전해둔다.


하우프트 거리. 짐을 짊어진 관광객이 많다. 북적댐이 오히려 기분 좋은 활기찬 거리.


하우프트 거리를 걷다 보면 'Studentenkarzer'라는 벽면의 안내를 만나게 된다. '학생 감옥'이란 뜻의 이곳은 하이델베르크 다운 고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명물이 되었다.


학생 감옥의 다양한 안내판. Shop과 연결 되어 있기도 하다.


학문의 도시 답게도 이곳 중세의 대학은 치외법권 지대였다. 젊은 혈기에 사고를 치는 학생은 있기 마련.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에 이르자 1778년 교화를 목적으로 한 학생 옥이 탄생하게 되었다. 죄의 경중에 따라 1~30일 동안 물과 빵만 먹으며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젊은 혈기는 학생 감옥 내에서도 발현되었다. 학생들은 술과 음식을 몰래 들여와 오히려 파티를 즐겼다. 일부러 죄를 짓고 들어오는 학생들도 있을 정도. 1차 대전 이후 폐쇄된 이곳은 그 옛날 학생들의 자유로운 낙서가 남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문제아(?)들의 낙서가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겠지. 아이들은 이곳은 어디며 저 낙서들은 무어냐고 쉴 새 없이 물어본다. 감옥이란 말에 무서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지나가다 아이들이 반가운 '한글'을 발견했다며 흥미로워한다. 안타깝게도 그 내용은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다. 역사적인 낙서를 감상해야 하는 이곳에서, 역사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거다. 정확히 이와 같이 쓰여있다. 문장은 완벽한데 맞춤법이 틀린 것을 보면 번역기와 한국사람의 중간 정도인 존재가 남겨 놓은 듯하다.


"감시카메라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낚(낙)서를 하면 처벌됩니다!"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폭격이 취소된 하이델베르크 성


아름다운 도시나 문화재를 강조하는 레퍼토리로 '어느 유명한 사람이 불륜에 빠질 정도로 아름답다'라는 것 외에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세계대전 기간 중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폭격을 취소했다'라는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성도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폭격이 취소된 곳 중 하나다. 하지만 구교도와 신교도 간의 30년 전쟁, 팔츠 계승 전쟁, 벼락과 같은 자연재해 등으로 많은 곳이 파손 및 파괴되기도 했다. 이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하이델베르크 성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나는 사랑을 하고, 그리하여 사랑을 받으며 행복했노라."라는 괴테의 문구가 적힌 비석이 성 안에 있다. 유부녀 빌레머 부인과 나눈 사랑의 감정을 적은 '서동시집'의 일부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겐 특별히 설명을 해주진 못했다. 아직은 당연히 그럴만한 때가 아니므로. 하지만 언젠간 알았으면 한다. 세상엔 비난할 일도, 비난받을 일도 많고 우리들이 그 사이에 있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는 것. 누구를 무작정 비난하기 전에 나부터 돌아보는 것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란 걸.


저 멀리 보이는 하이델베르크 성
성으로 올라가는 언덕
성에 올라 바라본 하이델베르크. 저 멀리 카를 테오도르 다리가 보인다.
성 내부 전경. 생각보다 크지는 않다.
측면에서 바라본 하이델베르크 성


카를 테오도르 다리를 지나 철학자의 길로


성에서 바라본 저 멀리 카를 테오도르 다리를 향해 내려간다. 그 건너편엔 바로 철학자의 길이 있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는 원래 나무로 지어졌었지만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인해 유실되었다. 이에 카를 테오도르의 감독하에 돌다리가 지어졌고, 카를 테오도르 동상이 세워져 지금까지 이 다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강과 다리는 낭만을 떠올리게 하기 마련. 많진 않지만 곳곳에 몇몇 있는 자물쇠들이 몇몇 연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흘려놓고 있다.


닭살스런 연인들의 흔적. 강과 도시 그리고 낭만이 어우러진 사진 한 장.


다리를 건너고 나면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 나온다. 헤겔, 괴테, 야스퍼스 등의 유명한 철학자들이 사색을 위해 찾은 길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곳에다. 실제로 걸어보면 '고난의 길'이라 외치게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파르게 이어진 언덕길은 등산을 방불케 한다. 중간중간 쉼터도 있다. 우리 아이들은 네발로 기기 시작한다. 중간중간 쉬어가는 곳에서 아이들은 연신 물을 들이켠다. 어쩌면 철학이란 이렇게 고단한 것일지 모른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사색이 철학이라면, 우리 인생은 삶은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고난을 딛고 올라선 곳에서의 전망은 그 고통을 한 순간에 잊게 만든다. 언덕을 오르며 바로 눈 앞의 계단과 언덕만 보며 괴로워하던 시선이 한 차원 높아지는 순간이다. 아이들에게도 그것을 알게 하고 싶었다.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언젠간 깨닫게 될 것이다. 또는 후에 언젠가 이 글을 보고 나서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인생의 고단함. 또 어쩌면 인생의 즐거움



-하이델베르크 이야기 에필로그-


철학자의 길은 어쩌면 우리 둘째 녀석에겐 공포의 길로 기억될지 모른다. 서로 지쳐 각자의 사색에 잠긴 사이. 갑자기 둘째 녀석의 다급한 외침이 귀에 들렸다. 뒤돌아봤을 땐 끈 풀린 개가 둘째 녀석에게 달려든 후였다. 저보다 작아 보이는 어린아이가 만만했는지 달려든 개에 놀라 둘째는 이리저리 소리치며 뛰쳐다니다 끝내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진 상처는 꽤 컸지만, 아마 놀람의 상처 또는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더 깊이 박혔으리라. 개 주인은 달려와 미안하다며 전화번호를 주겠다고 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그러한 상황이 싫었지만 순간 일어난 일에 아빠로서 바로 어떤 조치를 취해주지 못한 것이 스스로를 실망케 했다. 몇 초간에 일어난 뜀박질이었지만 순간 대응하지 못한 나 자신이 자꾸 떠올랐다. 호텔에 도착해 잠든 둘째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며 많은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사내 녀석이라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과, 당장 어찌해주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하며 그렇게 하이델베르크에서의 하루를 마감했다.


둘째야, 아빠가 미안해. 항상 씩씩한 모습이지만 아직도 많이 어린 너는 나의 손길이 필요했구나. 몇 초간의 일이었지만 너는 얼마나 놀랐을까. 개에 놀라 이리저리 뛰는 너의 모습이 어떤 사람들은 귀엽다고도, 또 우스꽝스럽다고도 생각했겠지만 너는 얼마나 놀랐을까. 무서웠을까.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지도. 아니 분명. 아빠가 많이 미안해. 몇 번을 두고두고 우는 네 모습이 자꾸 생각나네. 네가 아직 어리긴 어리구나. 많이 컸다 생각했는데 말야. 언젠가 이 글을 보고 이때를 추억하는 그때. 이 아빠의 마음을 한 번 봐주렴. 너에게도 웃으면서 기억할, 아니 어쩌면 기억하지도 못할 그저 지나간 아무것도 아닌 일에 대성통곡했던 너와 한 없이 마음 아팠던 나의 마음의 추억을. 우리 가족 여행의 추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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