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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14. 2016

로만틱 가도와 고성 가도의 그 어디쯤 Part.3

독일 하이델베르크, 퓌센, 로텐부르크 가족여행


여정


네덜란드 to 하이델베르크 (511km)/ 1박
하이델베르크 to 퓌센 노이슈반슈타인성 (332km)
퓌센 노이슈반슈타인성 to 로텐부르크 (221km)
로텐부르크 to 안스바흐 (141km)/ 1박
안스바흐 to 네덜란드 (634km)



"'퓌센 노이슈반슈타인 성' 그리고 '로텐부르크'"


판타지랜드 성으로 가볼까?


하이델베르크 호텔에서 아이들은 쓰러져 잠들었다. 강 양쪽의 언덕을 모두 오르락내리락했으니 그럴 만도. '철학자의 길'이라 쓰고 '고난의 길'이라 느꼈을 그곳. 거대한 성이라는 말로 꾀어 오르고 오른 하이델베르크 성. 아이스크림을 미끼로 좀 더 돌아본 다리와 강가. 첫째는 배를 드러내고 잠들었고 둘째는 평상시대로 고개를 약간 든 상태로 입을 벌리고 잠들었다. 아이들은 이때가 가장 예쁘다. 혹이라도 속 썩을 일이 있었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는 모습이 천사다. 자는 모습을 보면 그저 눈 녹듯 마음이 녹아내린다. 걸어 다니다 떼를 쓰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해대지만, 이렇게 자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 그지없다. 어린 나이에 많이 걷기는 하는 거니까. 자다가 추울까 배를 덮어주고 이불을 고르 잡아 준다. 언제나처럼. 이렇게 추울까 봐 이불을 덮어줄 누군가 있다는 것, 그것이 가족이라는 것이 못내 행복 겹다.


"아빠, 오늘은 어디로 가요?"란 질문에 오늘도 성을 보러 간다고 했다. "우리 성 봤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본 성 말고 다른 성. "또 봐요?"란 말에 뭔가 미끼를 던져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성이 디즈니랜드에 나오는 판타지랜드 성의 모델이 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와, 우리 디즈니랜드 가요?" 아니, 그게 아니고 디즈니가 그 성을 보고 만화에 그렸..."동생아 우리 디즈니랜드 간대!" 아무리 설명해도 내 말은 들을 준비가 안된 두 녀석을 뒤로 하고 난 샤워를 하러 욕실로 향했다.


바이에른 알프스 자락의 그곳


하이델베르크에서 퓌센까지는 332km, 3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다. 물론, 실제 도착한 시간은 예상보다 조금 빨랐다. 아우토반 덕분이다. 덕분에 온 몸에 긴장을 간직하고 달리긴 했지만. 퓌센에 가까워질수록 스위스 융프라우 아래 인터라켄이 생각났다. 넓은 초원, 사방의 눈 덮인 산. 그도 그럴 것이 퓌센은 스위스와 가깝고 오스트리아 국경에 인접해있다. 무엇보다 알프스 자락에 위치해있기에 더욱 그렇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
눈 덮인 산 아래 햇살은 따사롭고 공기는 맑다.


바로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오르고자 초입에 주차를 한다. 하루 이틀 전에는 성 내부 투어 예약이 안된다고 한다. 역시 갑작스레 정해진 여행의 숙명이다.



성까지 차로 올라갈 수 없기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안내판을 따라간다. 자세히 보면 마차나 버스를 이용하라고 되어 있다. 물론,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표지판에 있는 그림이 심상치 않다. 그냥 걸어가는 모습이 아니다. 하이킹을 하는 실루엣을 보건대 평범한 걷기는 아님을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아이들과 즐겁게 올라가기 위해서 마차를 타고 가는 방법을 택했다. 인당 6유로. 줄이 생각보다 길고 마차의 교대 시간차도 꽤 길어서 약 40분은 기다린 듯하다. 올라가는 여정은 잠시 타임랩스로.


성으로 가는 길. 마차를 타고 가는 것이 체력 비축엔 좋다. 가끔 정지해서 큰 일을 치루는 말을 보며 마부는 '공짜 기념품'이라며 가져가도 좋다고 한다.


17년이란 세월이 지나서야 완공된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유럽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바그너와 백조에 심취한 루트비히 2세의 작품이지만 정작 그는 성에서 3개월밖에 살지 못했다. 규모는 생각보다 크진 않았고, 아름다움을 감안하면 디즈니랜드의 상징물이 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성의 전체 모습을 담을 수 있는 곳은 따로 없어서 디즈니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성의 실루엣은 눈과 사진으로 담기 기 쉽지 않았다.



이거, 들어가도 되는 덴가? 중세로 가는 타임머신 로텐부르크


퓌센에서 221km를 달려 도착한 로텐부르크 초입에서 내가 당황해서 꺼낸 말이다. 와이프와 아이들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을 잇지 못한다. 중세보다 더 이전의 것으로 보이는 돌문과 입구로 들어가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믿지 못했다. 처음엔. 가라고 하니 들어가는 그 입구가 타임머신의 그것과 같았다. 작은 입구를 지나 펼쳐진 거리는 중세 시대 그 자체였다. 유럽에서 중세의 느낌을 받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성당과 광장, 그리고 돌바닥들이 그 옛날의 그것 그대로인 곳이 많기 때문이다. 언젠가 벨기에 브뤼헤를 새벽 인적이 없을 때 걸어본 적이 있다. 그 느낌이 꼭 그랬다. 마치 시간 탐험을 한 것과 같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겪었을만한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이러한 측면에서 로텐부르크는 그 이상의 느낌을 주었다. '황제의 자유 도시'라는 칭호를 얻은 이 도시는 로만틱 가도와 고성 가도가 교차하는 '중세의 보석'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화려함과 아기자기함. 그리고 중세스러운 것들의 향연


아름다움은 눈과 마음으로 담는다지만 순간을 놓치기 싫어 카메라를 들이댄다. 아이들에게도 그 광경을 바라보게 하고 또 그 앞에 서게 하여 사진을 찍는다. 호들갑을 떨고 싶진 않지만 꼭 그리 된다. 유럽에서 지내니 유럽이 거기서 거기지 뭐... 하다가도 이러한 자극은 카메라를 든 손을 바쁘게 한다. 특히 초입부터 광장까지 이어지는 플뢰라인 거리는 중세스럽다가 아니라 중세 그 자체를 보여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왜 '중세'에 매료될까?


그런데 문득 중세시대가 무얼까란 의문이 들었다. 중세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던 5세기부터 르네상스와 더불어 근세가 시작되기까지의 5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마치 우리도 중세 시대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것과 같이 중세시대의 그것에 매혹되곤 한다. 유럽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유럽의 곳곳에서 맞이하는 '중세스러운'것에 대한 경험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역사적으로 중세는 '암흑기(Dark Ages)'라 표현된다. 르네상스 시대와 비교하여 더더욱 그렇게 평가되는 것은 그간의 전쟁과 혼란, 로마의 몰락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478년 마지막 로마 황제가 살해당하면서 온 유럽은 혼란과 폐허로 남게 되었고, 로마 문명은 흔적만 간신히 남겼다. 이로써 유럽은 더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시대로 퇴보했다.


이러한 암흑기의 중세를 향수하는 것. 그리고 매혹되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물론, 우리도 그 옛날 역사로의 회귀를 즐거워한다. 사극을 보는 즐거움이나 한옥 마을을 찾는 것처럼. 어쩌면 암흑기 일지 언정, 시간을 되돌아 현실이 아닌 어느 곳에 있는 그 느낌이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에겐 지금 그들이 있는 그곳이 가장 살기 어렵고 힘든 곳일 수 있으니까. 중세 암흑기의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 모습을 미래로 그려가며 하루하루 기다렸을 지도.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과거를 보며 현재를 위로할 것인가. 현재를 보며 과거를 위로로 삼을 것인가. 나는 모르겠다. 다만, 현재에 살며 중세스러움 속에 있는 듯한 그 느낌이 그냥 좋다. 가족과 함께여서 더 그렇다. 가족 여행이 그렇다.


시청 앞 광장에서의 식사. 그 시간만큼 중세에 머물기.


고상해 보이는 고민도 배가 차야 한다. 아이들도 배가 고프다고 난리다. 차로 이동도 많이 하고, 또 걷기도 많이 했다. 광장의 시청사 건물을 감상도 할 겸 광장에 가지런히 놓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경치와 광장,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관광지라는 여유와 중세의 분위기를 모두 함께 편안히 앉아서 느끼기 위해. 누군가는 먹고사는 것에 대한 고단함을 말한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그러한 고단함에 피곤하다. 그러한 고단함을 덜어낼 수 있는 건 여행의 고단함이다. 걷고 즐기고 맛보고 느끼는 행복한 고단함. 고단함은 고단함으로 잊힐 수 있을지도.


시청사 건물 그리고 마이스터트룽크 시계
시청사 앞 분수대
알록 달록 개성 강한 곳곳의 집들
'중세로 들어오세요'라고 속삭이는 듯한 아치 통로
바삭한 껍데기가 매력적인 슈바인스학세


중세로의 여행을 아쉽게 뒤로하고 현실로 복귀한다. 로텐부르크 내 숙소는 그 인기를 나타내듯 만실이라 다른 곳으로 향한다. 덕분에 또 하나의 도시를 느낀다. 쌉쌀한 맛이 나는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켄 지방의 도시. 안스바흐. 유럽 여행은 성당, 광장, 돌길, 성, 박물관을 점철되지만 그것들의 모양새는 거기서 거기가 아니다. 각자의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시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눈 두 개, 코 하나, 귀 두개를 가진 모양새가 같은 사람들도 거기서 거기가 아닌 각자의 뚜렷한 개성이 있듯이. 그리고 삶의 이야기가, 인생의 깊고 낮음이 있으니 말이다. 안스바흐 어느 길의 바닥을 찍어본다. 이 사진이 이곳이 안스바흐라는 것을 나타내진 못하겠지만, 이 돌바닥은 그저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중세 어느 이전의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저 돌바닥. 그저 바라봄.


안스바흐의 호텔에서 아이들은 또 쌔근쌔근 잠이 든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기억할까.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보았을까. 기억을 기억할까, 느낌을 기억할까. 데려오는 것은 부모들의 몫이지만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은 오롯이 아이들의 몫이다. 난 우리 아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좋겠다. 당장은 못하더라도 나중에 기억을 더듬어 지금 이 순간들이 지금의 아이들을 올곧게 하면 좋겠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며. 우리 서로를 좀 더 여행하기 위한 여행 속에서. 그렇게.


다음 날 운전하여 집으로 갈 것을 각오하며 아쉬운 마지막 날의 중세 속에서 잠을 청했던 것 같다.

그렇게 로만틱 가도와 고성 가도의 어디쯤에서 가족 여행은 시작되고 또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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