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름 새로운 아름다움
여정
네덜란드 to 몬샤우 (264km)
몬샤우 to 아헨 (33km)/ 1박
아헨 to 드리판덴푼트 (7km)
드리판덴푼트 to 마스트리흐트 (42km)
마스트리흐트 to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212km)
정해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 그런 것이 더 크지만. 그렇게라도 위로하기로 했다. 금요일날 마음먹은 그 마음은 토요일 출발로 바로 확정되었다. 결정이 되자마자 와이프는 익숙하게 노트북을 펼쳤다. 귓가에 미션 임파써블 음악이 오버랩되었다. 자판 누르는 소리와 함께. 그렇게 뚝딱 목적지와 일정이 정해졌다. 어쩌면 너무나도 바쁜 내 일정에 와이프는 호시탐탐 여행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주말에 낮잠을 한 번 안 자면 그렇게나 갈 곳이 많은 이곳이다. 잠들어 있는 아이들은 내일 아침 눈을 떠 영문도 모른 채 가족여행을 떠날 것이다. 훗날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라며.
와이프의 입에서 나온 목적지를 처음에 알아듣지 못했다. 물론, 업무에 파묻혀있다 와이프가 계획한 그곳으로 난 운전을 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그게 싫지만은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 어디로 갈지에 대한 설렘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목적지를 모르다 훌쩍 떠나는 여행은 그렇게나 살갑다. 들어본 적은 없지만 독일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다음날 이른 아침 운전대를 잡았다. 졸린 눈의 아이들은 뒷좌석에 제법 익숙하게 앉아 여행 채비를 했다. 아직은 '가족여행'이란 말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그래도 꾸역 구역 차에 올라타는 걸 보면서, 이러한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를 생각했다. '가족여행'보단 게임이나 친구들과의 시간이 더 중요한 그 날이 올 것임을 알기에. 주말 낮잠을 포기하고서라도 여행을 떠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동막골에선 북한군과 남한군이 친구가 될 수 있다. 동막골은 그렇게 숨겨진 마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외부와 거의 단절되다시피 되어 있어 전쟁이 난 줄도 모른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설정이다. 몬샤우는 그렇게 우리네 동막골과 닮아 있다.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를 칭송할 때, 2차 대전 때 그 아름다움으로 폭격이 취소되었다는 레퍼토리가 흔히 쓰이는데 몬샤우는 좀 다르다. 독특한 화산 지형과 산으로 둘러 쌓인 계곡 속에 자리 잡은 몬샤우는 폭격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떠나 그저 숨겨져 있던 곳이다. 그렇게 동막골과 닮았다. 어쩌면 우리는 동막골, 아니 몬샤우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렇게 길을 잃을 지도 모른다. 또는 어느 세상과 잠시 단절되거나.
네덜란드에서 264km를 달려 도착한 몬샤우의 초입에서 아이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맛있는 것도 먹고 잠도 자고, 창밖을 바라보던 아이들은 '도착'이라는 말과 함께 눈에 총기가 돈다. 녀석들도 차에서 내려 새로운 곳에 발을 내딛는 것이 마냥 좋은 모양이다. 초입에서 골목을 운전해 올라올라 마을의 윗 끝자락 주차장에 차를 댔다. 마을이 그리 크지 않음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마을에 도착한 사람들의 동선을 읽은 듯이 지도와 낯설게 서있는 책장이 우릴 맞이했다. "1198년으로 온 것을 환영해. 어디 한 번 이곳에서 시간을 잃어봐"라고 속삭이면서.
계곡으로 둘러싸여 그런지 들이마시는 공기의 느낌이 그랬다. 유럽에 널리고 널린 것이 돌길이지만 새로운 여행지에서의 돌길은 볼 때마다 새롭다. 울퉁불퉁한 그 모양새가 하나하나 다르듯이, 각각의 돌길은 그 지역의 지문과도 같았다. 그래서 느낌이 저마다 제각각이다. 아스팔트에서 돌길로 옮겨지는 이 순간이 어쩌면 유럽 여행의 시작이자 시간 여행의 묘미 일지 모른다. 그렇게 기분이 참 알싸했다.
마을 초입. 첫인상. 몬샤우의 색이 조금씩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느낌.
아이들에게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느낌을 물어보면 사내 녀석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그저 '좋아요'라 말 한마디 툭 내뱉고는 저들끼리 장난치기 바쁘다. 난 그저 그 녀석들의 투닥대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 모습은 집에서나 밖에서나 여행지에서나 한결같다. 바라보는 내가 그저 다르게 보는데 바뀌는 배경과 녀석들의 한결같음이 나를 미소를 짓게 한다. 강요하지 않되 그저 알아서 느꼈으면 좋겠다. 사진을 찍어 증거(?)를 남기지만 이 여행지에서의 기억과 추억, 그리고 느낌은 오롯이 녀석들의 것이니까. 기억을 하든 못하든 다 녀석들의 팔자다.
처음 몬샤우란 이름은 내게 매우 낯섦을 가져다주었다. 녀석들에게도 그저 독일 어딘가라고 설명을 했더랬다. 아마 아이들은 '몬샤우'라는 이름을 절대 기억 못할 것이다. 작은 기차를 타고 마을 한 바퀴 돌고, 언덕에 올라 바라봤던 그 어느 곳이 기억나냐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끄덕일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그곳에서 함께 보았던 아름다움은 무의식 어느 한 켠에 남아 있을 것이다. 분명. 살아가다 문득, 또는 꿈속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다 커서 다시 이 곳을 방문했을 때 떠올려질 기억일 수도 있겠다. 나도 바쁘게 일하다 까맣게 잊고는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의 편린들로 그저 웃어볼지도. 아무렴 어때. 그 어느 곳, 길과 시간을 잃은 듯한 그때 우리는 가족으로 함께였으니 말이야. 그렇게 우리는 어쩌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 아닐까. 가족이라는 여행을. 몬샤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