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지.

이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by 스테르담
꿈 vs. 현실


아름다운 가상의 꿈을 좇을 것이냐.

차갑지만 진짜인 현실을 살아갈 것이냐.


영화 '바닐라 스카이'의 톰크루즈는 후자를 택한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톰크루즈는 꿈에서 들은 어느 한 여인의 말을 내뱉는다.


1분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지.

Every passing minute is another chance to turn it all around.


그 말을 남긴 채, 그는 빌딩 위에서 뛰어내려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그에게 있어 다짐을 하고 실행한 그 1분은 어떤 의미였을까?


달콤한 꿈에서, 혹독한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진 않았을까?


삶은 선택의 연속.
오늘의 '나'는 과거 내 선택의 결괏값.


삶은 우리를 평온하게 그저 내버려 두지 않는다.

삶이 우리를 괴롭히는 방법은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혹독하고 지독한 건 우리를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다는 것이다. 때론 그 갈래의 길에서 우리는 길을 잃는다. 이도저도, 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머뭇거리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삶은 피폐해진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선택을 했다가는 '후회'란 저주에 걸려 일상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상처받는다. 모든 인류가 후회라는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이유이자, 과거로 회기하고 싶은 욕망을 품게 하는 원인이다.


그리하여 언뜻, '1분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라는 말은 희망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이것은 사실 매우 부담스럽고 괘씸한 메커니즘이다.


우리는 매 순간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며, 무심코 지나쳐버린 몇 분 안에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로 인해 삶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에게 변화의 기회를 주었는데, 네가 제대로 기회를 못 살린 거야.'란 삶의 조롱 섞인 목소리마저 들려오는 이유다.


오늘의 '나'는 과거 내가 선택한 값의 결과다.

이것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무엇이다. 우리는 매 순간 무엇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 순간을, 매 순간의 선택을 우리는 인지하는 것보다 그러하지 못하는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또한 선택이라는 말에 있어서,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보단 삶의 농간에 휘둘리며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들이 더 많다.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선택의 결과마저 우리는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선택할 것인가,
해석할 것인가.


삶에 대한 투정은 이 지점에서 유발된다.

나는 '투정'을 '투쟁'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삶이 주는 고달픈 선택지와 그 결과에 어린아이처럼 투정하는 것을 멈추는 것.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 그것에 반항하고 투쟁하는 것을 좀 더 고민하는 것.


반항과 투쟁은 내가 무언가에 맞서는 걸 의미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맞서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내가 맞서고 있는 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임을 오랜 세월을 지나 깨우쳤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들을 좌우하려 하거나 그것이 내가 그린 삶의 그림과 다르다며 스스로를 괴롭힌 무수한 날들을 돌아보니 과연 그랬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받아들임'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받아들이면 홧병만 날 뿐.


나는 스스로 '선택'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석'하는 삶을 살기로 한다.

선택하는 삶은 모든 결과가 후회로 점철되는 '투정'의 모습이지만, 해석하는 삶은 매 순간이 의미 있는 세상의 부조리에 어퍼컷을 날리는 '투쟁'의 자세다.


진짜 인생을 살고 싶어.
이제 꿈꾸고 싶지 않아.


톰크루즈가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고 싶었던 이유는 진짜 인생을 살고 싶어서였다.

아니, 현실이 뭐 그리 좋다고. 달콤한 꿈에 머물면 그것이 더 좋은 것 아닐까? 달콤함은 현실에서 아등바등해야 얻을 수 있은 것이고, 꿈에서 그것은 보장된 자연스러움인데 굳이 쓴 맛이 나는 현실로 돌아가겠다는 저의는 대체 무얼까?


"쓴 맛을 모르면, 단 맛도 모르는 법이야."


꿈은 달고, 현실은 쓰다.

그러나 현실이 쓰기에 우리는 달콤한 꿈을 꿀 수 있다. 달콤한 꿈을 앙망한다한들, 달콤함에 머물면 그 달콤함은 끝내 질리고 만다. 삼시 세끼 초콜릿과 케이크를 먹는다고 생각해 보면 좀 그 감(感)을 나눌 수 있을까. 현실엔 다양한 맛이 있고, 그 맛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쓰다.


매 1분마다 무엇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1분은 결심할 때 쓰면 된다. 매 순간이 모여 우리는 결심을 하게 되니까. 앞서 말한 대사를 응용하면, 매 순간 우리를 괴롭히며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심하라는 게 아니라 결심할 땐 1분이라도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해석'의 힘이다.

현실은 혹독하지만, 그래서 해석할 여지가 많다. 꿈처럼 달콤하기만 하다면 삶은 해석할 필요가 없다. 씁쓸하기 때문에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를 돌아보면 내가 꿈만 꾸고 있는지, 현실을 잘 살아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선택에 급급해서, 답을 찾느라 자아를 잃고 동분서주하는 쳇바퀴에서 벗어나 우리는 그제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다. '자문(自門)'으로 얻은 답은 고귀하다. 그 안엔 답을 얻었다는 안도감이 아닌, 의미를 찾고 내 생각을 더하는 '해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삶은 부조리하다.

부조리하니 매 순간은 변화의 기회가 있는 것이다.


매 순간 변화의 기회가 있다는 건, 또한 삶이 그만큼 안정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고로, 부조리함은 삶의 불안정성에서 온다.


불안정에서 완벽한 안정 즉,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는 게 좋다.

강박에 들어차는 순간, 우리는 삶의 농간에 당하는 꼴이 되고 만다.


선택할 필요 없다.

어차피 인생은 불안정하다.


해석할 필요가 있다.

삶은 영문을 모르는 앞으로의 나아감이므로.


질문하고.

사색하고.

대답하고.

해석하고.


그러하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더 좋은 선택들은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자, 이제 이 글을 읽었다면.

이해했다면.


'투정'이 아니라, '투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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