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엇으로 가능할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가장 창의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가장 특수한 것이다.
가장특수한 것은 가장 보편적이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가장 창의적인 것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다.
그러하므로 모든 출발점은 가장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 가장 나답지 않은 걸 먼저 내세우려는 경향이 있다.
자기 사랑과 자기 증오의 한가운데에서, 그 선택은 자기 증오적인 모습을 없애고 자기 사랑의 면면만 보이려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을 증오하는 모습엔 회피로 일관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모습엔 타인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이다. 타인의 잣대는 자기 사랑을 왜곡한다. 내가 아닌 내가 되어야 남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며, 자신의 모습을 짓밟고서라도 화려한 무대 위에 서려고 노력한다.
특별하고 특수한 무엇이 자신을 내세워 줄거란 기대는 우리네 삶 곳곳에 만연해있다.
그렇게 특수성을 앙망하는 사이, 개별성은 소멸한다. 개별성은 대로 너무나 보편적으로 보이며, 너무나 보편적인 무엇은 특수성에 비해 화려하지 않다는 이데올로기가 정립되어 있다.
그러나 개별성과 보편성을 배제한 특수성은 있을 수가 없다.
아니, 있을 수는 있으나 그 안에 진심은 없고 그저 바짝 마른 껍데기만 가득할 뿐이다. 그 껍데기는 마르고 말라서 손가락만 툭 하고 갖다 대면 쉽게 바스러진다. 쉽게 바스러지는 껍데기는, 그 안에 튼실하고 촉촉한 열매를 품고 있을 수 없다.
나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 믿는다.
그 사이엔 창의성과 특수성이 존재한다. 즉, 시작은 가장 개인적인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무언가를 갈구하려 할 때. 그러니까 스스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세상이 말하는 트렌드와 가치를 무작정 쫓을 때. 자아는 소멸하고, 창의성은 풍화되며, 특수성은 자멸한다.
삶의 역설과 모순을 떠올릴 때.
특별해지고 싶다면 보편성을 내세워야 하고. 창의성을 내세우고 싶다면 지극히 개인적이어야 한다.
사람의 눈은 앞을 향한다.
이것은 외향적 생존을 위함이다.
내향적 생존을 위해선 앞이 아닌 내 속으로 향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가장 개인적인 것을 보편적이고, 창의적이고, 특별하게 보는 시선.
그것은 무엇일까.
두 눈과 같은 내 안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엇으로 가능할까.
질문이 시작되면.
마음의 눈이 드디어 그 눈꺼풀을 깜빡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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