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할 줄 안다면 꾸준할 수 있다.
꾸준함은 만인이 바라는 미덕이다.
꾸준함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내 꾸준하지 못하지만 어느 한 때 꾸준함으로 무언가를 이룬 것을 향수하며 그것을 앙망한다.
꾸준함의 결과는 확실하다.
그러나 꾸준함의 과정은 매우 모호하다.
어느 날 손톱이 길게 자란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결과다. 결과론적으로 손톱의 길이는 명확하고 확실하다. 그러나 그 과정을 아는 사람은 없다. 인식하기 힘들 정도로 천천히, 눈에 보이지 않게, 그 어떤 감각으로도 느낄 수 없을 정도다.
꾸준함이 이와 같다.
꾸준함이 만들어낸 결과는 확실하지만, 그 과정은 지루하고 모호하다. 내가 무얼 하고 있나... 란 회의가 몰려오는 이유다. 다른 사람들의 결과를 볼 땐 더 그러하다. 타인의 결과는 이미 자란 손톱과 같다. 내 손톱은 언제 저렇게 자라지... 란 생각으로 상대적인 박탈감에 휩싸인다.
나는 꾸준함의 과정을 '고독'이라 말하고 싶다.
정말로 외로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외로움은 내가 선택했다는 것이다. 자발적 고독은 꾸준함으로 이어 지고, 꾸준함은 자발적 고독을 기반으로 존속한다. 손톱은 누구와 힘을 합쳐 자라지 않는다. 그저 꿋꿋이, 자라야 한다는 사명과 소명을 안고 묵묵히 자라는 것이다.
꾸준함을 앙망하는 자는 그래야 한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구에게서 찾거나, 잘 세팅된 일상 루틴이 오토 파일럿처럼 나를 꾸준하게 만들어 줄 것이란 기대는 내려놓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외롭지 않으면 꾸준함이 성립되지 않는다. 매 순간이 재밌는 것도 꾸준함과는 거리가 멀다. 외롭고, 재미없고, 회의감이 드는 그것이 꾸준함의 미덕이다. 그 과정을 견디는 자가 꾸준함 그 자체가 되는 것이고 말이다.
그저 꾸준하기만 할 때.
회의감이 들 때.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마음이 들 때. 회의감이 들지만, 그 회의감으로부터 발생하는 질문에 대답해 줄 이는 아무도 없다. 이것이 바로 고독이다. 또 고독해야 하는 이유다. 그 고독함을 느낀 나는, '아, 지금 내가 꾸준한 과정에 있구나..!'란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꾸준함은 고독을 넘어 '실력'으로 자리 잡는다.
쉽사리 바스러지는 꾸준함엔 고독이 결여되어 있다. 또는, 과정이 아닌 결과만을 보려는 앞서가는 마음에 있다. 우리는 때로 그림자를 앞서 가려는 우둔함을 가지고도 남을 조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까.
왜 꾸준해야 하는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때로 어떤 이들은, 고독하지 않은 꾸준함을 바라다가 왜 저가 꾸준해야 하는 지를 모르기도 한다.
꾸준함은 고독이다.
고독할 줄 안다면 꾸준할 수 있다.
눈치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고독은, 나와의 은밀하고도 친밀한 만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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