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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03. 2023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만일 너의 인생을 내가 다시 살게 해 준다면 어떻게 하겠나?"


"저는 인생을 다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왜지?"


"어차피 인생은 당신 마음대로 흘러갈 테니까요. 인생은 다시 사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다시 산다면 이전보다 더 잘 살 수 있지 않겠나?"


"지금 저를 약 올리시는 거죠? 맞습니다. 어쩌면 지금 제 인생도 다시 시작된 걸지도 모르죠. 그러나, 전생에 대한 아무 기억이 없잖아요. 그렇게 만들어 놓고, 다시 사는 인생을 운운하시는 건 절대자로서의 기만 아닙니까?"


"그건, 그렇네만. 그렇다면 내가 이번엔 자네에게 전생의 기억을 준다면 어떻겠나?"


"하... 여기에 또 함정이 있겠네요. 좋습니다. 기억을 주신다고 칠게요. 그런데 이번엔 뭘로 태어나게 할 거죠?"


"물론,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야지. 내가 그토록 나쁜 절대자는 아니네."


"사람으로 태어난다... 그런데 말이죠. 부조리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제가 가진 이상과 인생이 주는 현실과의 괴리감. 인생을 다시 산다고 해도, 이 부조리에서는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절대자인 당신께서 이미 그렇게 세상을 설계해 놓으셨으니까요. 아니, 보다 근본적인 걸 물어보겠습니다. 저는 왜 태어난 거죠? 그리고 저는 왜 죽어야 하죠? 또 하나. 당신이 만든 '인생'이라는 덫에 걸려, 저는 왜 윤회해야 하고 윤회하지 않는다면 어떤 존재로 남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소멸해야 하는 건지. 사실, 당신은 제게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시 살 텐가... 이것만 묻고 있잖아요. 근본적인 답을 주지 않은 채, 그저 다람쥐 쳇바퀴와 같은 삶의 연속에 들어갈 거냐 말 거냐... 이것만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 기억을 주네 마네... 그 작은 걸 마치 무언가 큰 인심을 쓰듯이 주려는 그 모습이, 마치 인간이 개미와 대화하며 설탕 한 알갱이로 개미를 농락하는 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자네 나에게 많이 섭섭했는 모양일세."


"그럴 수밖에 없죠. 인생을 다시 산다 해도, 원하는 것을 다 얻는다 해도 어차피 사라질 운명이지 않습니까. 제가 가진 불만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인생'을 살아보지 않았잖아요. '인생'은 말 그대로 '사람의 삶'이니... 절대자인... 신이라고 불리는 당신은 그 고초를 알지 못합니다. 그저 살게 해 주겠네... 마네... 결정권만을 가지고 있는 거죠. 정말로 인생에 대해 알기는 하는 겁니까?"


"나는 존재하지만, 사람들의 삶엔 관여하지 않네. 그저 지켜볼 뿐이지. 내가 세상을 창조할 때..."


"그만하십시오. 이젠 지겹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기도는 뭐죠? 왜 그들은 응답도 하지 않는 당신에게 기도를 해야 합니까? 그들의 간절함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면서 왜 수많은 종교를 만들어 놓고 그들을 농락하는 거죠? 그렇네요. 이건 농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왜 태어났는지도 모른 채 바쁘게 달려가며 사는 삶을, 살아 있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하는 것을, 원하는 일 보다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사는 꾸역꾸역 한 삶을 당신은 상상이나 해보셨습니까? 그것들의 반의 반절만이라도 느껴본 적 있습니까? 만들어 놓은 피조물들이, 저들끼리 싸우고 저들끼리 사랑하고 또 저들끼리 물어뜯는 삶을 보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세상 귀한 존재라는 관념을 심어 놓고는, 실상은 우주의 먼지보다 못한 취급을 하는 당신의 저의는 정말로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당신은 대답하지 못함이 마땅합니다. 인생을 배우십시오. 인생을 조금이라도 알 때, 저에게 인생을 다시 살고 싶냐고 물어보십시오. 저는 다시 사는 인생을 거부합니다. 한번 사는 인생에 족합니다. 그리하여 저는 오늘에 충실하겠습니다. 오늘만 바라보겠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만들어 놓은 피조물들의 인생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내내, 지금처럼. 줄곧 해온 것처럼. 그대로 방치해 놓으십시오. 그럼, 알아서 인간들이 몰락을 할지, 더 나아갈지를 결정하게 되겠지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 무모한 여정은 오롯이 인간들의 몫입니다."


"....."


"그럼 저는 오늘을 살러 갑니다. 다시 사는 인생은, 저에겐 없는 무엇입니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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