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의 칭찬이 무조건 좋지만은 않은 이유

by 스테르담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직장인의 감정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요동한다.

잠깐의 칭찬으로 들뜨고, 이어지는 질책엔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지하로 향한다. 이러한 감정의 기복은 롤러코스터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번 타는 롤러코스터야 흥미롭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하루를 넘어 직장생활의 매일이 이러하기에 직장인의 마음은 오늘도 고되고 기진맥진하다. 그래서일까. '일희일비하지 말라'라는 말은 직장인에게 있어선 고전처럼 내려오는 작자 미상의 고견이다. 직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감정이 동요하면, 아마도 당신은 숨을 쉬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테니까.


직장에선 칭찬보단 아무래도 질책이 많다.

되는 일보단 안 되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직장이 우리네 삶의 축소판이라고 가정해 볼 때 삶에 있어 되는 것보단 안 되는 것들이 많은데, '축소판'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들의 농도는 더 진하고 끈적하다. 해서, 질책에 대해 어쩌면 당신은 더 많은 해법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던가,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 땐 여름휴가 계획을 떠올린다던가... 아니면 애인과 오마카세에서 셰프가 내어 주는 고품질의 초밥을 생각하며 (몰래) 입맛을 다신다던가.


그러나 당신은 직장 내에서 '칭찬'에 대해서도 한번 곱씹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몇 안 되는 칭찬의 빈도는 당신을 '일희(一喜)'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일희일비하지 말자'라는 다짐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말이다.


왜일까?

왜 칭찬마저 그렇게 한번 더 필터링하여 들어야 할까? 그저, 그 순간을 즐기면 안 되는 것일까? 나는 당신에게 칭찬의 순간을 즐기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희일지 하지 말라는 고견을 그대로 전하고 싶을 뿐이다. 더불어, '질책'과 '칭찬'을 동급으로 생각하라는 조언을 주고 싶을 뿐이다. 아니, 그 둘이 동급이라고? 왜?


직장에서의 칭찬이
무조건 좋지만은 않은 이유


직장에서 칭찬을 들었다면, 나는 당신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고 싶지만 그 이면 또한 곱씹기를 추천한다.

질책을 들어도 마찬가지다. 질책을 듣고 감정만 상해 있기보다는 그 안의 메시지를 들어야 덜 다치고 더 성장할 수 있다. '감정'과 '메시지'를 분리해 보면 확연해진다.


비폭력대화의 창시자인 마셜 로젠버그 박사가 말한 대로다.

모든 이의 말은 'Please'와 'Thanks'로 나눠진다. 상사의 질책엔 'Please'가 깊게 서려있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감정'과 '메시지'를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감정만 상하면 나에겐 남는 게 없고, 'Please'라는 '메시지'를 찾으면 이 상황에서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칭찬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도 메시지가 숨어 있다. 때문에 나는 '칭찬'과 '질책'을 같은 급으로 생각한다. 결국, 작장에서의 칭찬이 무조건 좋지 만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칭찬은 (질책과 마찬가지로) 판단의 결괏값이다.


직장은 평가가 난무하는 곳이다.

평가를 해야 성과를 책정할 수 있고, 그것은 돈으로 환산되어 연봉 등급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승진은 물론, 주요 요직에 앉힐 때에도 상사들은 판단을 통해 사람을 결정한다.


'평가'는 '판단'의 결괏값이다.

다시, '판단'은 생각과 감정의 결단물이다. 즉, 평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판단이 끝났다는 것이며, 그 판단에 있어 당신의 생각과 의견은 관여되지 않는다.


"자네는 디테일하지 않나."라는 말을 상사에게 들어서 잠시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다.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내가 정말로 그 역량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상사의 판단에, 그 범주에 내가 들어갔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에 의해) 잘 판단되어 다행이라는 그 생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칭찬은 질책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판단에 대한 결괏값이다.

잘 판단되느냐, 그러하지 않느냐는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2. 내 의도와는 다를 때가 있다.


위에서 말한 판단은 타인의 것이다.

즉, 내 의도와는 다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은 디테일함보다는 진취적이고 과감한 이미지를 형성하려고 노력해 왔는데, 상사가 당신을 디테일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라고 칭찬을 했다면? 이 칭찬에 당신은 좋아해야 할까, 아니면 아니라고 항변을 해야 할까?


이미 내려진 판단은, 굳어버린 타인의 심판이다.

이미 결과의 망치가 바닥을 세 번 두드린 것과 같다. 내 의도와는 다른 칭찬을 들었을 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질책을 들었을 때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처럼, 내 의도와는 다른 칭찬을 들었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칭찬이어서 좋긴 하지만, 당신을 돌아봐야 할 이유는 분명 있다.


3. 주위의 질투를 살 수도 있다.


좋은 뜻으로 받은 칭찬이 주위의 오해와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상사 또한 칭찬은 너무 대놓고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러나, 잘한 것에 대한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간혹 상사들은 공개적이고 대외적으로 칭찬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 대상이 당신이라면, 오해와 질투는 각오해야 한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아도, 이미 구성원 안에는 당신을 좋게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경계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란 걸 알아차려야 한다. 그럴수록 겸손해야 하고, 일희 하지 말고. 들뜨거나, 스스로 자신이 받은 칭찬을 떠벌려선 안된다. 행복은 순간에 있는 것처럼, 칭찬을 듣고 좋았던 기분은 순간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그것을 더 붙잡으려, 스스로를 내세우거나 남들로 하여금 그 이야기에 대해 말하게끔 하는 건 금물이다.


질책도 마찬가지.

순간으로 남기는 것이 좋다. 칭찬이든 질책이든 감정은 순간으로 남기되, 내가 해야 할 다음의 것을 더 곱씹는 게 당신이 해야 할 최우선의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

그러나 직장에선, 칭찬을 듣는다 한들 굳이 춤까지 출 필요는 없다.


칭찬이든, 직책이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물론, 한 귀에서 다른 한 귀로 넘어갈 때. 내게 필요한 것들은 순간이라도 마음에 남도록 새겨야 한다. 그 중간 필터 역할을 하는 무언가를 잘 만들어 놔야 한다. 나는 당신에게 이것을 '역량', '내공', '실력'이라 표현하고 싶다. 정말로 그저 흘려보내는 사람들은 고수가 될 수 없다. 진정 일을 잘하는 사람, 성장하는 사람들은 남겨야 할 것과 흘려보내야 할 것을 구분하는 사람들이다.


'일희일비하지 말라'라는 말은 감정을 버리고 AI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순간순간을 곱씹으라는 말이며, 솟아나는 감정과 푹 꺼지는 마음을 잘 다스리라는 말이다. 사람이 어찌 감정이 요동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너무 높이 올라가면 추락의 충격이 크고.

나무 낮게 있으면 무기력의 무게가 커진다.


그러니까, 일희일비하지 않음으로써 당신은 중용의 덕을 쌓아야 한다.

크게 흔들리지 않도록. 흔들리더라도 잘 흔들릴 수 있도록.


이것이 당신을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직장내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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