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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16. 2023

수 억 빚에서 벗어난 후의 깨달음

거대한 빚의 서막

"여기 A카드사인데요. 카드 연체금이 발생했습니다. 기한 내에 납부하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되실 거고... 추심 및 압류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여기 B카드사인데요..."

"여기 C카드사인데요..."

"여기..."


아빠가 취업 준비를 하고 있던 2003년이었단다.

취업 공부를 위해 도서관으로 향하던 아빠에게 걸려 온 다섯 통의 전화. 각기 다른 카드사에서 연체금 독촉을 하는 전화였단다. 당시 그 금액의 단위가 '억'이었어. 한 번도 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했던... 너무나 두려웠고.. 무엇보다 무서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 돈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이 없던 아빠였고, 더더군다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터라 그때는 등록금도 장학금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던 아주 어려웠던 때였거든. 더 큰 당황스러움은 아빠는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어떤 카드 사용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부터였지.


나중에야 알았단다.

가족 중 누군가, 아빠 명의로 신용카드를 만들었다는 것을.


IMF를 막 지난 정부는 소비 활성화를 통한 내수진작과 지하경제 축소를 위해 1999년 신용카드 활성화를 추진했어. 현금서비스 한도를 폐지하고 소득공제 제도를 만들어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했지. 심지어는 영수증 복권 제도를 시행하기도 했어. 신용카드를 쓰면 쓸수록, 복권 당첨의 기회는 높아지니까 사람들은 너도나도 신용카드를 쓰기 시작했지. 이런 정책에 힘입어 신용카드 사용액은 1998년 63조 6천억 원이었는데, 2002년에는 622조 9천억 원으로 단기간 내 10배 가까이 급증하게 되었어. 내수시장이 진작되고 세수도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지. 정부의 의도가 제대로 된 방향이었구나...라는 평이 나돌기 시작했어.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돈에 대한 인식이나, 경제에 대한 지식이 당시엔 그리 높지 않았다는 것이야.

또한, 규제가 완화되자 금융사들은 상환능력이 검증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카드를 발급해 주었어. 심지어는 법정 대리인 동의 없이 계약 자체가 불가능한 고등학생까지 서명만 하면 발급해 주는 정도였으니, 가족 중 누군가 아빠 신분증으로 몰래 카드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지?


신용카드의 무서움은, 실질적인 돈이 오가지 않는다는데에 있어.

미리 결제하고 나중에 갚는 시스템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금 당장 무언가를 손에 쥘 수 있다는 '착각'과 그것을 상환할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망각'을 줌으로써 우선 소비하게 해. (카지노에서 현금이 아닌, 칩을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단다.)


이로 인해, 소위 말해 '카드 돌려 막기'가 시작되었어.

A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아, B 연체금을 갚고... C, D, E카드로 악순환되며 시나브로 빚은 늘어나게 되었지. 2002년부터 돌려 막기를 할 수 없게 된 개인 소비자들은 파산하기 시작했어. 카드 대란 당시 신용불량자의 수는 2003년 최대 360만 명을 초과했어. 카드 대금을 갚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과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생겨났고, 경기는 급속도로 침체하기 시작했단다. 국내 1위 카드사마저도 늘어나는 부실채권으로 다른 금융사에 매각될 정도였어.


이런 상황에서 아빤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고백하자면, 갑작스러운... 주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번 생을 포기하려는 나쁜 생각을 하기도 했단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상황에서도, 열심히 그리고 착실히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하던 그 상황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빚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거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는 것도 서러웠는데, 남들보다 더 마이너스로 시작해야 한다는... 아니,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혀 취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 를 생각하니 정말로 앞이 막막했단다. 너무나 억울했지. 억울해서 화병이 날 정도로.


돈은 현실이고,
현실은 직시해야 한다.


벼랑 끝에 서면 생각은 명료해진단다.

돈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해결책 없이 이대로 내버려 두면 삶이 산산조각 나게 될 거라는 건 알 수 있었지.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 밀려오는 카드사의 연체 독촉 전화에, 당당히 맞서기로 했지. 신용불량자가 되어 취업하지 못하면, 당신네들 돈을 갚을 수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그러자 카드사들은 지급 일정을 유예해 주기 시작했어. 참 우습지? 삶이란 이래. 가족 중 한 명은 지레 겁먹었기 때문에 작은 연체가 시작되었고, 그 연체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거야. 애초에 이렇게 겁먹기보단, 현실을 직시하고 당당하게 나갔으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그리곤, 금융 사고를 저지른 가족을 데리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금융 프로그램에 참여했어.

정부는 2003년 3월, '신용카드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개인워크아웃제도 및 개인 파산제도를 활성화하여 신용불량자의 원금 상환 유예와 파산을 통한 자산처분을 해주기 시작했거든. 이 구제 제도를 통해 약 60만 명의 신용이 회복되었어.


아빠는 마음을 다잡고 취업 활동에 집중했단다.

다행히, 20년 넘게 다니고 있는 지금의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 월급 차압을 당하며, 3년 만에 빚을 다 갚을 수 있었지. 그 와중에서도 재테크를 시작하여 결혼하기 전 이른 나이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하기도 했고 말이야. (입사 후 3년 간, 법인카드마저도 발급받지 못했던 기억이 나는 구나. 지금은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너무나 아찔 했던, 막막하기만 했던... 어쩌면 너희들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이 끔찍한 시간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빠는 어안이 벙벙하단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

이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이 참 많다는 거야.


첫째, 돈은 혹독한 현실이라는 것.
둘째, 빚엔 좋은 빚과 나쁜 빚이 있는데, 나쁜 빚은 돈과 자아의 무지(無知)에서 온다는 것.
셋째, 돈과 관련된 어려움이 찾아오면, 피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
넷째, 돈과 관련된 문제는 그 누구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
다섯째, 월급을 기반으로 한 재테크는, 생각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




수 억 빚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비결은, 위 다섯 가지 안에 모두 들어 있어.

돈이라는 현실을 절실하게 경험했고, 돈의 무서움에 대해 눈을 떴으며, 돈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라는 사실. 무엇보다, 돈에 대한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자신을 잘 살피고, 돈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하고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 말이야. 무엇보다, 아빠는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돈에 대한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어. 그 돈이 많든, 적든 말이지.


이 한 장의 편지에, 위 모든 이야기를 담긴 쉽지 않단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어가 줄게. 조급해하지 마. 돈에 있어 조급함은, 돈이 들어오는 것을 막거나 가지고 있는 돈을 쉽게 잃게 되는 가장 빠른 길이란다.


너희 대신 아빠가 먼저 경험한 것이니, 너희는 이러한 전철을 밟지 말길 바란다.

아빠가 너희들을 위해 먼저 지불한, 돈과 빚에 대한 수업료니까.


아빠는 가족 중 누군가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 너희는 가족 중 누군가로 인해 경제적 혜택을 받길 바란다.


이를 위해, 그러한 일이 일어났던 거라고.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앞서 말했듯.

돈을 밝혀라.

돈에 밝아라.


무엇보다, 너희를 더 사랑해라.


돈이 없으면, 너희를 사랑하기 힘들다.

스스로를 사랑하면, 돈에 더 밝아질 수 있다.


돈이 없어 생을 마감하려 했고, 돈이 생기니 너희들을 만날 수 있었던 아빠의 삶이 그것을 생생하게 말해주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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