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글쓰기의 정석>
흔히들 명언은 어느 위인의 전유물이라는 관념이 있습니다.
저는 그 관념을 거부합니다. 명언을 거부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명언은 어느 특정인만이 내어 놓을 수 있다는 관념에 대한 거부입니다. 거부의 이면엔 그 누구라도 명언을 내어 놓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단, 어느 명언을 내어 놓으려면 명언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직접 경험하고 몸소 깨달은 '진실'과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글쓰기에 진심으로 진심입니다.
글쓰기로 인해 제가 바라던 삶에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으며, 쓰지 않으면 '나'와의 대화가 단절되기 때문입니다. 나와의 대화가 단절되면 삶은 고단해집니다. 그 고단함은 꽤나 큽니다. 지난날, 삶의 커다란 고단함은 글을 쓰지 않을 때 일어났습니다. 좀 더 솔직해보자면, 지금의 삶도 고단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다만, 그 고단함을 잘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나서부터. 고단함의 이유, 고단함의 원인. 그로 인한 깨달음과 의미. 한 마디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능력이 날로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깁니다.
(직접 쓰며 깨달은) 글쓰기에 대한 명언.
수도 없이 많지만, 우선 12개 정도로 추려 나누려 합니다.
어느 한 분이라도 글쓰기에 대한 진심이 생겨날 수 있도록.
'작가'라는 한자를 해석해 보면, '나만의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삶의 페이지를 써 내려가는 작가입니다. 고로, '작가'는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니며, 쓰기만 한다면 모두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하므로, 글쓰기는 '삶'을 쓰는 것입니다.
어디 멀리, 특별한 사람의 삶을 쓰는 것도 아니고, 거짓을 지어내 멋진 말로 기교를 부리는 게 아닙니다. '나'를 쓰면 됩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과 감정, 생각과 깨달음을 차곡차곡 쌓아가면 됩니다.
삶을 반드시 써야 합니다.
기록하고, 곱씹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도움은 가치가 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콘텐츠와 돈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의하세요. 돈을 버는 게 목적이 되면 주객이 전도됩니다. '선택'과 '필수'를 잘 구분하며 써 나아가야 합니다.
어설픈 완벽은, 모든 시작을 머뭇거리게 합니다.
필력을 쌓고, 소재를 준비하고, 좋은 사양의 키보드를 구비하면 글을 쓸 수 있을까요? 맑은 정신을 만들고 글을 써야 할까요? 절대 시작하지 못합니다. 글을 써가며 어지러운 것들을 정리해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글쓰기이며, 또한 궁극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며 정신을 맑게 해 보세요. 글쓰기의 선물을 받게 될 겁니다.
직장인은 늘 회의(懷疑)합니다.
현재는 고달프고 미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움켜 잡아 봅니다. 커피? 유흥? 술? 담배? 그러나 갈증은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저는 생명줄을 발견했습니다. 단단히 붙잡고, 그 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저는 씁니다.
게으른 저를 탓하며 살았습니다.
여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실행하지도 못할 루틴을 더하고 더하다 보니, 그러한 계획은 실행될 리가 만무했습니다. 직장인이라는 루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구상하고 사색하고 머리로 쓸 수 있는 시공간이 분명 있었습니다. 출근과 퇴근은,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힌트를 드려 봅니다.
글쓰기를 시작하려니, 필력이나 기교를 먼저 배우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필력으로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마음이라면, 절대 글쓰기는 시작되지 않습니다. 글쓰기는 '어떻게'에서 시작하면 안 됩니다. '왜'쓰고 싶은 지를 규명해야 글쓰기는 꾸준히 이어집니다. '왜'라는 질문은, 스스로에게 던져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이니까요.
책 한 권 내고 글쓰기가 멈추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꾸준히 출간할 수 있었던 제 경우도 그렇습니다. 저는 출간보다 '글쓰기'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책은 글쓰기의 과정에서 나오는 '과정물'입니다. 책을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면, 글쓰기는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책쓰기가 아니라,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소비적인 삶에 회의가 들어, 생산자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을 때.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자본도 필요 없고, 사전 투자나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쓰니, 무어라도 생산되었습니다. '글'은 추상적인 내면의 것을, 구체적인 무엇으로 바꾸어주어 말 그대로 '생산'을 해내는 과정입니다.
글은 길게 써야만 하는 게 아닙니다.
서론, 본론, 결과라는 법칙에 맞추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아를 위한 글쓰기라면 두서없어도 됩니다. 뒤죽박죽이어도 됩니다. 우선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채우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대신, 내어 놓아야 합니다. 내어 놓으면 채워집니다.
글쓰기를 팔려는 목적으로, 글쓰기엔 어떠한 '지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글쓰기엔 특별한 지능이 필요 없습니다. 굳이 필요한 게 있다면, 자아를 향한 질문입니다. 감정으로 써도 되고, 이성으로 풀어내도 좋습니다. 특별한 지능을 추구하는 순간, 글쓰기는 시작되지 않고 시작되더라도 그 목적과 방향은 왜곡되고 맙니다.
내 글의 첫 독자는 '나'라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나를 관통하지 못하면, 나에게 진솔하지 못하면 그 글엔 힘이 부여되지 않습니다. 내 첫 독자를 감동시킨다는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쓰면 단언컨대 이전보다 더 영향력 있는 글이 탄생할 것입니다.
[종합 정보]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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