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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24. 2016

일 잘하기 프로젝트 #1. 중간보고

중간보고의 기적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이게 무슨 소린가. 나는 그녀를 위해, 그를 위해 모든 걸 다했다. 밤낮을 고생했고 원하는 것은 다 했으며 뒤치다꺼리는 모두 나의 몫이었다. 내가 싫으면 싫다고 할 것이지 왜 이런 말을 할까? 내가 사랑하는 걸 왜 모를까? 내가 당신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 몰라주는 그 자체가 더 섭섭했다. 근데, 그러고 보니 '사랑한다'라는 말을 한지 꽤 된 것 같긴 하다. 어느 서양 영화에서 늙은 부부들이 여전히 살을 부대끼며 서로를 매력적인 상대라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그것도 해 본 지 오래된 것 같다. 그/ 그녀가 말했다.


이 바보야. 나를 위해 백가지 천 가지 일을 하면 뭐해.
"사랑한다"라고 말해야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냥 바라보며 마음속에 있다는 걸...


읽기만 해도 익숙한 멜로디가 떠오르는 어느 한 초코과자 광고 속 노래. 우리네 정서가 마음의 교감으로 연결되어 가능한 이 이야기는, 아쉽게도 직장에서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히려 아주 큰 오해와 자기 손해를 불러 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자신의 이미지가 매우 완벽해서 지나치기만 해도 찬사를 받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생각해보자. 우리는 직장에서 누구를 적극적으로 칭찬한 적이 있는가? Give and Take를 위해서나 아니면 '정치적'으로 무언가를 바라며 칭찬을 한적은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누군가를 칭찬하며 내 편을 만들려고 하거나 칭찬하는 나를 드러내기 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예외는 있을 수 있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칭찬했던. 하지만 장담컨대 진심으로, 자발적으로 누군가를 칭찬했던 때보다는, 단점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나를 위해' 누군가를 칭찬했던 횟수가 더 많을 것이다. 아니라면, 난 당신과 함께 일하고 싶다.


이는 전반적인 우리 직장 생활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 모습이 이런데 익숙해져 있고 직장은 이리 삭막한 곳이니, 누군가 나를 '알아서' 알아주거나 인정해주는 일은 극히 드물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적극적으로 '어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필'은 결국 일을 잘 하는 것이다. 일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어필'은 그저 정치적 활동으로만 끝나고 결국 밑천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진정한 인정을 받기 위한 여정은 멀고도 멀다. 나 또한 한참 모자라고 지금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어떠한 방법이 있다 한들, 그것이 통할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왕도는 없다. 하지만 여러 가지 길은 있다. 때에 따라 현명하게 그것들을 요소요소에 적용하고, 내재화한다면 분명 '인정' 받을 '확률'은 올라갈 것이다. 직장인에게 '승진'과 '월급'빼면 뭐가 있겠는가. 이 두 가지는 모두 '인정'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당신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아!"


잠깐, 다시 앞으로 돌아가 보자. 서두에 시작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빗대어 '사랑' 대신 '일'을 대입해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이게 무슨 소린가. 나는 팀장을 위해 모든 걸 다했다. 밤낮을 고생했고 시키는 것은 다 했으며 뒤치다꺼리는 모두 나의 몫이었다. 내가 싫으면 싫다고 할 것이지 왜 이런 말을 할까? 내가 열심히 일하는 걸 왜 모를까? 내가 당신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 몰라주는 그 자체가 더 섭섭했다. 근데, 그러고 보니 업무 진행 현황에 대해 말을 한지 꽤 된 것 같긴 하다. 내가 롤모델로 삼는 한 선배가 시시각각 현황에 대해 이리저리 조잘대는 모습을 보기만 했지 따라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당신은 혹시, 상사나 팀장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이건 내가 원한 방향이 아닌데.

당신은 보고서가 항상 왜 이따위야?

이거 이거, 고쳐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누구 씨, 지난번에 그거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이거 내가 이렇게 하라고 했잖아. 왜 말한 대로 하지 않았지?


그렇다면 지금부터 필자가 하는 말에 귀... 아니 눈 기울이는 것이 좋다. 나 또한 이러한 문제를 겪어왔고 겪어왔으며 겪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월급쟁이들에게는 운명과 다름없기에.




보고
1. 지시 또는 감독하는 자에게 주어진 일의 내용이나 결과 따위를 말이나 글로 알림
2. 보고하는 내용을 적은 글이나 문서


'보고'란 말처럼 직장인에게 힘겨운 단어가 또 있을까. 우리는 이 '보고'를 위해 밤을 지새우고, 깨지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면 자연스레 머릿속에는 '때려치우고 사업이나 할까'라는 생각이 한가득이다. 그만큼 '보고'는 가슴 아프지만 중요한 일이다. 직장인에게는.


그렇게 힘겹게 작성한 보고서를 들고 갔을 때, 앞서 언급한 부정적인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 심지어 상사의 말을 꼬박꼬박 적어 놓고 작성한 보고서인데도 말이다. 회사 생활은 즐겁지 않다. 그러니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동기부여도 되지 않는다. 일을 못한다는 자괴감마저 든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시때때로 '사랑한다'라고 '표현'을 해야 하는 것처럼 일을 함에 있어서 우리는 그 일에 대한 '표현'을 해야 한다. 돌아보아 우리는 그 '표현'을 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보자.


 



'중간보고'는 일의 흐름에 대한 시시각각의 표현이다.


우리는 '보고'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보고'라는 말만 들어어도 양식이 잘 짜인 파워포인트 파일이나, 서류철에 있는 '결재 바랍니다'라는 아주 딱딱한 한 케이스가 생각날지 모른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 '중간보고'를 할 수 있는 여유와 담대함을 갖추어야 한다. '중간보고'가 필요한 이유는 당연히 우리가 앞서 언급한 부정적 피드백을 듣지 않기 위함이다. 그리고 일을 잘 하기 위함이다. 인정받기 위함이다. 작지만 큰 무기다. 


상사나 팀장이 되어보자. 내가 누구에게 일을 맡겼다. 이렇게 저렇게 원하는 것을 전달했다. 납기는 다음 주 월요일까지. 그 날이 되어 쭈뼛쭈뼛 들고 온 팀원의 보고서는 가관이다. 당장 나는 이것을 가지고 나의 상급자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 고칠 시간이 없다. 화가 난다. 화가 나.


이는 단적인 예다. 초코과자의 광고 속 노래가 직장에서 통하지 않듯이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속담도 '보고'라는 업무에는 통하지 않는다. '중간보고'는 그래서 필요하다. 일의 흐름에 대해 시시각각 보고를 하고 상사와 align을 하며 방향을 함께 맞추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때로는 상사도 자신이 한 말이나 마음, 생각을 바꿀 때도 있기 때문이다.


'중간보고'의 형태와 방법 그리고 그 효과


'중간보고'는 일반 '보고'와는 다를 수 있다. 아니, 달라야 한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보고'는 형식의 틀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무겁게 다가오는 것이다. 조금은 가볍게 생각해도 좋다. 그래야 하기에도 수월하다. 앞서 우리가 살펴본 '보고'라는 뜻을 살펴보면 '말이나 글로 알림'으로 되어 있다. 즉, 꼭 형식적인 틀에 갇혀 있지 않아도 되는 '말이나 글'이면 된다. 말 그대로 중간중간, 수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간보고'의 형태는 거창하지가 않다. 불쑥 찾아가 "팀장님, 현재 팀장님께서 말씀하신 부분 작성 중인데요 이렇게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내지는 "작성 중인데, 이 부분이 잘 풀리지 않습니다." 등을 이야기하면 된다. 진행 과정을 이야기해주는 것, 그리고 때로는 또다시 조언을 구하는 것. 상사는 이 부분을 높게 살 것이다. 또한 조언을 줄 것이다. 물론, 내용의 진전 없이 너무 자주 묻기만 하면 이해력이 떨어지는, 말귀 못 알아듣는 친구가 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말을 건네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상사나 팀장이 윗사람에게 깨져 돌아온 후나, 업무에 몰입을 하는 중에 이야기하면 되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중간보고'는 가급적 가벼운 이야기로 오갈 수 있는 때가 좋다. 예를 들어, 팀원끼리 점심 식사를 하며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나 계단 등에서 하며 좋다. 대개 상사 옆에는 사람들이 붙길 꺼려한다.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할 이야기 없는 거 업무 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진다. 해야 하는 업무에 대한 이야기라면 더 영양가가 있다. 게다가 나중에 막판에 들고 가서 깨지기는 확률을 줄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더 적극적으로 약간은 나른해지는 오후 어느 즈음에 상사나 팀장님에게 커피타임을 요청해도 좋다. 언급한 대로, 직장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외로워진다. 아랫사람 중 누군가 먼저 다가와 주는 것을 상사들은 아이처럼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다들 자기를 피해 다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차 한잔 하며 자연스럽게 "아, 지시하신 그 일에 대해 잠시 말씀드려도 될까요?"라고 운을 뗀 뒤, 현황과 어려운 점을 이야기한다. 모호하게 다가왔던 부분에 대해서도 재 질문하여 확실한 스토리 라인을 잡을 수 있는 중요한 시간.


혹자는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을 손이 오그라드는 것 같아 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상사나 팀장에게 먼저 다가가는 그 자체가 '아부'나 '정치적'인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편견'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그렇지 않다. '진심'은 직장에서도 통하게 마련이다.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맞지만 '순수한 의도'는 '진심'이기 때문이다. 더더군다나 이렇게 먼저 다가가는 사람은 '인정'받을 확률이 더 크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자연스러운 이득. 직장에서 '이미지(물론, 실력을 동반한)'는 강력한 무기이자 경쟁력이다.




현명한 상사라면 오히려 '중간보고'를 먼저 제안한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라고 납기를 주고 난 뒤, 그전에 이번 주 목요일쯤 우리 한 번 볼까?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시를 받은 사람조차도, 아 뭐 이번 주까진 괜찮고 주말에 몰아서 하지...라고 한 뒤 허겁지겁 월요일 아침에 작성하여 뭇매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현명한 부하라면 상사를 궁금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 비결이 '중간보고'다.


정리하자면 '중간보고'는 보고 막판에 상사의 호통 확률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단지, 호통을 적게 듣기 위한 것은 아니고 일을 잘할 수 있는 노하우이자 나만의 무기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직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툴이기도 하다. 상사의 입장에서 자신이 지시한 일에 대해 이리저리 묻고, 방향을 align을 하려는 부하를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 반대로 보아 지시한 일을 끝까지 꽁꽁 묵혔다가 손도 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뚜껑을 따버리고 나몰라라 하는 부하와의 비교에 대한 결과는 각자의 몫이다. 그 결과는 이제사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말을 쓸 수 있겠다.


사랑한다면 그/그녀를 위해 모든 걸 다 하더라도 "사랑한다"라는 말은 분명히 하자.

일을 한다면 상사와 나를 위해 야근을 하고 열심히 일 하더라도 '중간보고'는 수시로 하자.


이것이 어쩌면 '일과 사랑'을 동시에 얻는, 아주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다.

아니, 분명 그렇다.


참고 글: "직장에서 '광'을 팔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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