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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01. 2017

직장인, 미지근함의 미학

미지근함은 차가움과 뜨거움의 결과물인 것을

"사람이 왜 그리 미적지근해?"


누군가에게 이러한 말을 들으면 당신은, 우리는 하루 종일 내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미지근하다는 말은 우리에게 그리 긍정적인 말이 아니다. 실제로 어학사전을 검색해봐도 그러한 뜻이 담겨 있다.

미지근하다
1. (사물이) 차지도 뜨겁지도 않고 더운 기가 약간 돌다
2. (사람이나 그 태도가) 소극적이고 분명하지 못하다

미적지근하다
1. (사물이) 더운 기운이 약간 있는 듯 없는 듯하다
2. (사람이나 그 태도가) 결단성이 없고 흐리멍덩하다


언제부터, 왜 미(적)지근하다는 말이 오도 가도 못하고 이리저리 결단을 못 내리는 것으로 개념 정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내가 한 행동을 돌이켰을 때 나는 '미지근함'에게 꽤 미안했다. 그리고 돌이켜보니 나는 그 행동을 매일매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뭘까? 물론, 기지개를 켜고 졸린 눈을 비비는 것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양치를 하거나 샤워실로 향한다. 오늘 아침은 어느 한 여행지에서 맞이했더랬다. 연말을 맞이해서 가족 여행을 왔던 차인데, 샤워실의 수도꼭지가 꽤 오래되어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을 각각 돌려야 하는 구조였다. 그때 갑자기 깨달았다. 내가 아침에 심혈을 기울여하고 있는 것이 바로 '미지근함'을 만드는 일이라는 걸. 그것도 매일을. 집에서나 밖에서나 어디에서나 말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매일 아침 '미지근함'을 '지향'하며 '실천'을 하는 모양새다.


"그러고 보니,
미지근함은 차가움과 뜨거움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실천하는 모습은 이렇다. 먼저 수도꼭지를 틀고 나서 물의 온도를 재고, 그것이 차갑다면 뜨거운 쪽으로 또 뜨겁다면 차가운 쪽으로 조절을 한다. 즉, 우리가 상쾌하게 아침을 시작하게 도와주는 우리 몸이 원하는 적정 온도는 이렇게 차가움과 뜨거움의 조절 속에서 나온다. 즉,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열정이나 성격은 온도에 비유되곤 한다. "저 친구는 참 뜨거운 친구야". 즉, 열정적이란 소리다. "저 친구는 차가워, 차가워도 너무 차가워." 차가움은 냉철한 이성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 예의가 없거나 정이 없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비유라면, '미지근함'은 정말 고도의 기술이다. 물론, 그렇다고 "저 친구 참 미지근해"라는 것이 아직까지도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이미 '미지근함'은 돌이킬 수 없도록 부정적인 의미로 못 박혀 있기에 내가 아무리 다른 예를 들어도 그 뜻과 개념이 변할리 없다. 다만, 나는 여기서 좀 더 나은 설명을 위해 "적극적 미지근함"과 "소극적 미지근함"이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하고 싶다.


"적극적 미지근함"과 "소극적 미지근함"의 가장 큰 차이는 말 그대로 '의지'가 녹아 있느냐 아니냐에 따른다. 즉, "적극적 미지근함'은 차가움과 뜨거움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 시의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음을 말한다. "소극적 미지근함"은 부정적인 원래의 그 뜻을 그대로 나타낸다. 원해서 미지근한 것이 아니라, 이도 저도 아니라 미지근하다는 것이다.


"차가움과 뜨거움을 겸비한 미지근함은
곧, 중용(中庸)을 말한다!"


직장 생활을 해가고, 나이를 먹어가며 깨달은 것이지만 '중용'이란 삶의 진리다. 이것은 나이를 불문하고, 직장에서든 학교에서든 삶의 어느 곳에서든 필요한 것이다. '과유불급'이나 '지나치면 하지 아니함만 못하다'라는 말이나, '너무 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노래 가사는 우리 가슴에 그렇게 깊이 새겨진다. 어쩌면 이 '중용'을 말하기 위해 이렇게 길고 긴 서두를 써 내려갔는지도 모르겠다. '중용'은 항상 내 마음과 머릿속에 있어야 했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잊게 마련인데, 아침에 물 온도를 맞추다 그것이 불현듯 생각난 것이다.


여기서 다시 중요한 것은, '미지근함'과 '중용'은 모두 고도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차가움과 뜨거움, 지나침과 부족함을 고루 갖추고 행하는 어쩌면 지극한 상태와 실천이다. 이것은 대인관계에서도 그렇고 직장의 업무에도 바로 적용된다. 특히, 직장에서는 각 개인의 온도와 그 개인이 가진 역량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1. 온도가 높고 역량도 높은 경우

유형: 이러한 사람은 어디서나 데려가려 아우성이다. 업무 능력도 탁월하고 주위에 끼치는 영향력이 대단하다.

장점: 열정이 높다는 것은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여기에 일도 잘하니 모든 선후배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 배울 점이 정말 많다.

단점: 자칫 안하무인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열정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만 회사를 사랑하는 것처럼 비추어질 수 있다. 후배나 선배 모두에게 미움을 살 수 있다.


2. 온도는 낮으나 역량이 높은 경우

유형: 굳이 말하자면 '게으른 천재'를 떠올릴 수 있다.

장점: 상사라면 '전략가'일 확률이 높고, 부하라면 다루기 힘든 '지략가'일 경우가 많다. 대하고 다루기는 쉽지 않지만 그 역량이 발휘될 때 팀에게 주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단점: 다루기 힘들고 자칫 어긋날 경우 팀 전체의 분위기를 흐릴 수 있다.


3. 온도도 낮고 역량도 낮은 경우

유형: 최악 중에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장점: 장점은 없다. 그저 내부에서 저평가자를 꼭 선정해야 할 경우가 있다면 그저 고마울 것이다.

단점: 팀의 분위기를 흐리는 것은 물론 성과도 방해한다. 물론, 잘 가리켜서 데리고 갈 수 있는 수준이라면 잘 끌고 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의 손실은 감수해야 하지만.


4. 온도는 높으나 역량이 낮은 경우

유형: 신입사원이나 경력사원 또는 계획보다 몸이 앞서는 경우다.

장점: 행동파이기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새로 시작하는 사람의 경우는 초심이라는 강력한 에너지가 마음속에 있다. 잘 이끌어주기만 한다면 소위 말해 '포텐'이 터질 수 있다.

단점: 지나침이 해가 되는 경우다. 계획 없이 진행하거나 몸이 앞선 경우 방향 설정이 잘못되거나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그렇다면 '중용'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내가 예전에 모셨던 여자 팀장님이 계셨다. 그분은 열정의 온도와 역량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회사에서는 몇 안 되는 여성 임원이 될 것이 뻔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 내가 그분에게서 배운 것은 정말이지 몇 년치를 한꺼번에 받은 것 같았다. 그만큼 배움의 무게도 컸고 깨달은 바도 컸다. 지금도 나는 주재원으로서 어려운 일에 닥칠 때마다 '그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구분은 선배나 후배들로부터 미움 아닌 미움을 사고 있었다. 너무 뛰어난 역량과 열정은, 다른 사람의 그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즉, 자신이 하는 일이 무조건 맞는 일이고 다른 사람은 자신보다 무언가 2% 부족한 사라들이라는 생각이 표현하지 않지만 저변에 확실히 깔려 있었다. 선배들은 말했다. "지만 회사를 위하는 줄 알는 것 같다.", "Too much다, 저 친구는" 그저 견제를 위한 불평불만이 아님을 함께 지내면서 깨닫게 되었다. 악의적이지는 않았지만 때로는 자신의 열정과 실력이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을 때 역효과를 낼 수 도 있구나...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만약, 그 팀장님께서 이러한 피드백을 듣고 자신의 그것을 '조절'할 수 있다면 그분은 우리가 말하는 '중용'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미 그분은 '뜨거움'을 가지고 있기에. 조금의 '차가움'을 알아가면 된다. 사실, '차가움'보다는 '뜨거움'을 갖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 있지도 않은 열정이 생기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난 위 그래프에서 '중용'은 1 사분면과 2 사분면의 중간 어느 곳에 위치한다고 본다. 물론, '중용'은 고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 이루어질 수도 없다. '중용'을 이루고 유지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닐 것이다. '신'의 영역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지도. 다만, 사람은 그것을 '지향'한다. '이상'이며 '지향점'이다. 이러한 것이 있을 때 사람은 조금은 더 고결해진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노력해야 한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이리저리 매일매일을 조절하듯이. 장갑차가 목표물로 가기 위해서는 핸들을 '탁탁', '탁탁' 수시로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 큰 방향은 명확하지만 그것은 곧이 곧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바로 잡아주는 노력과 성찰이 필요하다.



'미지근함', '적당함', '중용' 등. 지나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다 글이 길어졌다. 미지근한 물을 만들 조절 하려다 생각난 '미지근함의 미학'은 이렇게 마무리를 해야 하겠다. 누가 모를까. 지나치거나 적당함이 없는, '적당함'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하지만 우리는 다 아는 걸 안 하거나 못하거나 하면서 살아간다. 적어도 아침에 샤워를 할 때, '중용'의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본다면 이 글을 쓴 보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차가움과 뜨거움이라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소극적인 미적지근함은 최악이다. 반대로, 적극적인 미지근함은 삶의 지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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