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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언제나 나여야 한다

<스테르담 철학관>

by 스테르담

인생은 답을 찾아 헤매는 방황 그 자체다.

답을 찾고 싶어 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으며, '답'은 곧 '끝'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만 끝내면 삶은 희망적으로 바뀌거나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기대감이 기저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건,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음 이후의 무엇을 나는 거론하지 않겠다. 그 이후는 그 누구도 모르니까. 다만, 숨 쉬는 한. '끝'은 없다는 것이다. 숨엔 끝이 없다. 그것과 같다. 숨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듯, 계속해서 숨을 쉬어야 하고. 삶은 가만히 있고 싶어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끝은 없다. 끝에 다다르고자 하는 헛된 희망과 욕망만이 가득할 뿐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좀 슬픈 이야기이지만 답은 없다는 것이다.

어느 문제집 끝의 정답지를 기대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삶에서 현실화되지 않는다. 답을 찾았다고 한들, 그게 맞을 때가 있고 또 틀릴 때가 있다. '정답'은 '옳은 답'을 말한다. 옳고 그럼은 상대적이다. 절대적이지 아니하므로, 때론 옳을 수도 있고 그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답을 찾느라 방황한 날들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을 찾을 수 없으면 질문을 바꾸면 된다.

잠깐, 우리는 질문하며 살아왔는가? 사회적 시스템과 이데올로기가 답을 찾도록만 우리를 강요하지 않았는가? 어느새 묻는 법을 모르는, 그저 답을 찾는 존재로 전락한 스스로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


묻지 아니하므로.

자신을 돌아보지 아니함으로.


글을 쓰며 깨달았다.

사색하며 깨달았다.


정답이 없다는 것을. 물어야 한다는 것을.

세상의 정답이 아닌, 나만의 해답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을.


내 자아가 묻어 있지 않은 정답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묻지 않고 얻은 답은 금세 잊힌다.


내 자아를 제대로 묻히려면 물어야 한다.

스스로 답하기 위함이다. 자신이 답한 것엔 이전엔 알지 못했던 의미가 있다.


답은 늘.

나여야 한다.

나에게로부터여야 한다.


답이 아닌.

질문으로부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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