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떠나보내는 것들이 하나 둘 많아진다.
몇십 년을 같이 해오던 녀석이다. 이별의 날이 정해진 건 오늘. 한 달 전 치과의사 선생님의 권유였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우측 위쪽의 사랑니를 뽑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흔들리거나 상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그 안쪽에 어김없이 끼는 음식물 때문에 불편했던 건 사실이다. 음식물이 끼었을 때, 아무리 오물거리고 혀로 어떻게 해 보려 해도 여간해서 빠지지 않았다. 결국엔 양치를 하거나, 물로 헹구거나 정 답답할 때는 손가락을 사용했어야 했다. 어금니가 다 난 뒤, 성년기에 새로 맨 안쪽 끝에 나는 작은 어금니는 그렇게 나와 이별했다.
물론 이것이 사랑니와의 첫 번째 이별은 아니었다. 왼쪽 위, 오른쪽 아래 것은 나의 20대 시절에 보냈었다. 신기한 건 돌이켜보니 그때의 사랑과 이별의 즈음에, 같이 떠나버린 것 같다. 이제는 왼쪽 아래에 하나남은 사랑니가 다음 이별을 기다리고 있다.
눈을 감았다. 감았지만 앞이 밝았다. 밝은 조명이 얼굴에 내리쬐고 있었다. 입은 '아~'하고 벌린 상태에서 마취주사가 잇몸을 찔렀다. 마취주사는 항상 그렇다. 찌를 때 보다, 마취약이 들어갈 때가 더 아프다. 생에 몇 번 있지 않은 일이기에 긴장한 나와, 이런 상황이 일상이 된 의사 선생님과의 대립은 썩 즐겁지가 않다. 왠지 약자가 된 느낌. 그래도 나의 건강을 맡겨야 하니, 고분 하기로 했다. 잇몸에 감각이 사라진다. 발치를 위한 도구가 마침내 위쪽 사랑니를 단단히 잡는다. 좌우로 흔들기 시작한다. 처음엔 미동도 않다가 점점 그 각도가 커진다. 입을 더 크게 벌려야 했다. 점점 뽑혀 나오는 이는 나와의 이별이 싫었는지 그 뿌리를 쉽게 내보이지 않았다. 나는 반대로 뿌리가 어서 뽑히기를 바랐다. 마침내 뽑힌 이는 자그마한 쟁반에 덩그러니 놓였다. 외로워 보였다. 빨리 빠지기를 원했던 것이 아주 조금은 미안할 정도로.
이를 잘 뽑아주신 의사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감사의 인사가 우선이었지만, 몇십 년을 함께한 그 녀석을 보내야 해서 시원 섭섭하다고 했다. 함께 한 날이 얼마인데. 아마 의사 선생님은 피식 웃었을지 모른다. 그분에겐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닌데, 뭐 이리 감상적이냐고 말이다. 빠진 어금니 쪽에 거즈를 잔뜩 물고는 사무실로 향했다. 동료들이 안쓰럽게 바라본다. 그러니 스스로가 안쓰러워진다. 마취가 풀려가며 고통도 서서히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빠진 이를 잠시 바라보다 치과에 그대로 놓고 왔다. 가져왔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잠시 후회감이 몰려왔다.
나이가 들어가니 새롭게 생기는 것보다는 떠나보내는 것들이 많아진다. 그중에 하나라서 오늘의 사랑니가 나로 하여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이름이 '사랑니'라서, 'Wisdom Teeth'라서 떠나보내기가 좀 더 아쉬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딱히 없애버릴 정도로 내 삶을 방해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나마 이건 내가 결정한 이별이지만, 앞으로 다가 올 내가 결정하지 않은 이별들을 맞이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쓰린다. 오늘 나를 떠난 사랑니는 그렇게, 앞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무수한 것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혹시라도 의도하지 않은 이별에 닥쳤을 때, 그저 오늘처럼 시원 섭섭한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 시원하기만 하거나, 섭섭하기만 하지 않은 마음. 그렇게 의연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