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행복론>
행복은 손님과 같다.
손님은 늘 우리와 살지 않는다. 그러하기 때문에 '객(客)'이다. 왔다 가는 존재. 행복이 늘 이어지지 않는 이유다.
행복에 대한 내 지론은 이렇다.
재밌는 것 하나.
내가 불행하다고 느꼈을 때를 돌아보면, 나는 지론에 반하는 마음을 가졌더랬다. 이미 와 있는 행복을 알아채지 못하고 행복이 오지 않음을 불평하고, 애써 온 행복을 유지하거나 그것을 반복하려 손아귀에 힘을 꼭 쥐곤했다. 손 안에 모래를 더 많이 쥐려면 힘을 빼야 한다. 힘 주면 줄수록 내가 가질 수 있는 모래의 양은 줄어든다. 행복은 온데 간데 없고, 미련과 공허함만이 손아귀의 작은 공간을 뺀 세상 모든 공간을 채운다.
하여, 이제 나는 행복을 갈구하지 않는다.
갈구하면 갈수록 결핍은 더해지고, 간절함은 존재를 조급하고 초라하게 만든다. 그러한 나의 과거를 돌아보건대, 행복을 사라지게 하는 마음들이 분명 있다.
행복은 '마음'에 (잠시) 거주한다.
기분이 좋은 것도 마음의 영향이다. 과학적으론 신경의 자극과 전달 물질로 인해 마음이 움직일 수도 있는 거겠지만, 이것은 잠시 논외로 하고자 한다. 기분(머리)과 마음은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달리 움직이는 걸 과학은 여전히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복을 사라지게 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나는 세 가지를 꼽는다.
행복의 가장 큰 적이다.
우리는 하나하나가 특별한 존재다.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항상 언제든 매일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은 행복을 오지도 못하게 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행복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원인이 된다.
존재는 고귀하나, 모두가 언제나 행복해야 한다는 당위는 없다.
'당위'가 오히려 더 큰 불행과 두려움 그리고 불안을 야기한다는 건 이미 모두가 아는 삶의 깨달음일 것이다.
다만, 자신이 어떠한 당위를 가지고 있는지를 모르거나, 그것을 돌아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안쓰러움만이 늘 우리와 함께 한다.
'불행'이란 뜻을 되짚어 보면 '다행이지 않다'라는 의미다.
늘 생각해오던 불행이란 말의 어감보다는 어쩐지 덜하다는 느낌이다. 다행이지 않다...라. 앞서 이야기했지만 늘 다행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게다가, 우리는 '다행'을 잘 느끼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일상'이 대표적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