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삶의 속도를 가늠하라고 한다면, 자동차의 속도계에 있는 숫자로는 모자란다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삶의 속도는 야속하리만큼 빠르다.
시간의 흐름과 그 속도엔 자비가 없다.
자비란 상대의 마음과 처리를 헤아려 기다려 주는 것을 말하는데, 삶엔 그러한 게 없다는 걸 우리는 이미 잘 안다.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나면, 저만치 멀리 가 있는 사람들과 시대를 보며 불안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혹시라도 뒤처질까, 혹시라도 잊힐까. 근원적인 두려움은 오늘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다. 우리가 너무 빨리 달려가려는 이유, 잠시도 쉬지 못하는 이유, 나를 위해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는데 무언가를 이룬 그 어느 지점에서 나 자신을 찾지 못하는 이유.
삶의 속도를 조금은 늦춰야 한다.
느리게 가거나, 남들에게 뒤처지기 위함이 아니다. 빠르게 가다 지치는 게 아니라, 천천히와 빠르게를 오가며 더 멀리 가기 위함이다.
빨리 가려는 건 타인과의 싸움이지만.
멀리 가는 건 자신과의 싸움이다.
지쳐 빨리 가는 것보다 속도를 조절하며 멀리 가기로 나는 다짐했다.
그렇다면 삶의 속도는 어떻게 잘 조절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방법을 글쓰기를 통해 찾아내었다.
글쓰기는 태생적으로 느리다.
대단히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선택의 결과다. 그러나 글쓰기는 자동차의 브레이크 같은 역할을 해준다. 사람들은 자동차 하면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 떠올리지만, 돌이켜보면 자동차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무던히 서야하고 앞으로 때론 뒤로 가기도 해야 한다. 즉, 브레이크 없이, 속도 줄임 없이는 자동차는 그 어떤 목적지에도 다다를 수 없다.
삶의 속도에 지칠 때, 내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삶의 엑셀만을 밟으려 할 때.
나는 쓴다. 글쓰기를 시작하며 조급한 마음을 잠재우고, 내가 알아야 할 것과 지금 해야 할 것을 하나하나 정리한다. 갑작스러운 속도의 급감에 불안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불안함은 최소화하고 자신감을 극대화한다는 걸 이내 곧 깨닫는다.
삶의 속도 조절은 글쓰기로.
어차피 세상은 계속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그 속도엔 자비가 없으므로, 나를 돌아봐야 하는 건 나 자신임을, 그러니까 삶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주체와 글을 쓰며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건 나 스스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