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간혹,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보람차고 어느 하루를 잘 보냈다는 생각이 벅차게 들 때가 있다.
무언가에 몰입하여 모든 걱정을 잊고 목표한 바나 하고싶었던 걸 해냈을 때다. 다시 그것을 맛보고자 하지만 바쁘고 힘든 일상은 그러할 여유를 잘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스스로를 복기해 보면, '몰입'은 곧 '무아지경'의 다른 말이었음을 깨닫는다.
'무아지경'이라...
무아지경은 '마음이 어느 한 곳으로 온통 쏠려 자신의 존재를 잊고 있는 경지'를 말한다. 생각해 보니 너무나 아이러니한 시추에이션이다. 우리는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한 순간도 숨 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생각하고 사색한다. 그런데, 최고의 행복을 느낀 그 시점이 '자신의 존재를 잊은 그 순간'이라니.
달리 말하면, 존재를 잊어야 진정한 극락을 맛볼 수 있다는 말인가.
'극락(極樂)'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요즘은 가장 좋아하는 무언가를 말할 때 '극락'이란 표현을 한다. 극락 파트라던가, 극락 장면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표면적인 단어를 비추어보면 마치 도파민이 극에 달하는 모습이 상상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지극히 안락하여 아무런 근심이 없는 상태. 즉, 매우 평온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이 없을 때가 우리 삶에 정말 있을까?
숨 쉬는 한, 존재가 존재하는 한 그러할 일은 없다.
살아 있다는 건 기쁨과 슬픔 모두를 포용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무아지경이란 말이 떠오른다. 그래, 무아지경은 존재를 잠시 잊게 한다. 존재는 늘 근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근심과 걱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잠시 잊음으로써 극락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존재와 근심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고로, 근심과 걱정을 느끼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존재를 잠시 잊는 것이다.
근심과 걱정으로 잠을 자지 못하던 그때.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던 순간들. 이것을 하지도, 저것을 하지도 못하는 갈팡질팡한 숨 막히는 삶. 그 안에서 자신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일까.
나는 나를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나를 잠시 잊을 것이다. 나에게 딸려 온, 존재에게 숙명인, 내 앞길을 가로막으려는 것들을 떨쳐버릴 요량으로.
살아가는데, 이러한 지혜와 기술을 잘 연마한다면 이전보다는 나은, 내가 바라는 모습에 더 부합하는 자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지금도 몰입하여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