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좋아하는 것엔 보상이 필요 없다

<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by 스테르담

A그룹과 B그룹이 있다.

아이들이다. 게임을 하게 했다. 차이를 두었다. A그룹에 게임을 해서 다음 단계로 가면 일정의 돈을 주었고, B그룹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러다 A그룹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놀랍지만 당연한 결과가 나왔다. B그룹은 즐겁게 게임을 이어가는 동안, A그룹의 게임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심리학에선 이를 과잉 정당화 효과(Overjustivication Effect)라고 말한다. 이미 내재적으로 즐기고 있는 일에 외부적 보상을 주면, 오히려 그 흥미가 떨어지는 현상이다. 뇌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보상받기 위해 하는 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때, 주도권은 '나'에게서 '외부보상'으로 넘아간다. 보상이 사라지면 동력도 사라지는 이유다.


'보상이 필요 없다'란 말은 곧, '내 행위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라는 것과 같다.


최근 들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글쓰기와 산책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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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생각이 든 걸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연 나는 어떤 보상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대개 도파민을 '즐거움의 호르몬'이라 부르지만, 정확히는 '기대와 추구'의 호르몬이다.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도 도파민은 분출된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함으로써, 외부적 보상보다 더 생산적인 동력이 된다. 이를 '내재적 동기'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내재적 동기'를 잃은 것이고, '과정'이 아닌 '결과'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 된다. 글쓰기는 나를 탐구하는 과정이었는데, 자꾸만 그 어떤 결과를 내려는 조급함의 도구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산책은 영감을 얻는 평온함의 행위였는데, 몇 칼로리를 태웠고 얼마의 거리를 다녀왔다는 다이어트의 수단으로 전락한 건 아닐까.


목표를 정하고 달려가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 또한 목표다.


그러나, 목표는 죄가 없다.

과도하게 목표를 수립하거나, 보상이라는 조건을 달아 단기적으로 무언가를 빼먹으려는 나의 욕심이 문제다. 과정이 아닌 결과로 판단하는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나를 자꾸 욱여넣으려는 못된 심보가 죄다. 도파민이 약속하는 미래의 달콤함에 속아 현재의 즐거움을 팔아치우는 순간 '좋아함'은 '노동'이 된다.


진짜 좋아하는 것엔 보상이 필요 없다.

그저 하는 것이다. 기분 좋을 때도, 기분이 그러하지 않을 때도.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하는 일도. 사사건건 바라는 보상이, 얼마나 내 삶을 오염시키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삶의 주도권'은 이미 나에게 주어진, 평생을 쓰고도 남을 절대적 보상임을.

늘 잊지 말아야겠다.


다시.

쓰고. 일하고. 걷고. 나에 관한 모든 걸. 좋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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