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심리학으로 바라보는 직장생활 #5
어느 하루 날을 잡아 맘먹고 주위를 관찰해보자.
직장에서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그리고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다른 부서의 누구는, 저 멀리 위에 있는 상사의 상사는?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나만 힘든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모두가 월급에 의존하는 가련한 존재일 뿐이다. 회사 가기 싫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회사라 했다. 그런 사람들이 모였으니 욕구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매사 불안하고 여기저기 방어기제가 만연한 이유다.
직장은 정말 나를 보호하고 방어해야 할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그래서 관찰을 해보면 많은 것들이 보인다. 나는 왜 그랬는지, 저 사람은 왜 저랬는지. 지나간 일도 돌아보면 나는, 저 사람은 각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하거나 반응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억압과 억제'외에 다른 방어기제를 함께 살펴보려 한다. 이것을 잘 알아두고 나면, 다음에 다룰 '자신 바라보기', '타인 바라보기'를 이해하기가 좀 더 수월해진다. 직장인들의 고됨은 결국 불안에서 야기되었고, 이 불안을 최소화하려는 것이 방어기제기 때문이다.
일단 관찰을 해보았다면, 다음엔 아래의 방어기제들을 살펴보고 난 후, 나와 다른 사람들을 계속해서 관찰해 보자. 아주 흥미로운 많은 것들이 보일 것이다.
우리 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바로 '합리화'다. 책의 첫머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침에 눈을 떠 인지부조화를 맞이하는 직장인에게 있어서 이것은 아주 달콤한 처방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욕구에서 나온 수많은 충동이나 행동에 대해 그럴듯한 구실을 붙인다. 이솝우화의 비유로 잘 알려진 여우와 포도 이야기가 합리화를 한 번에 손쉽게 설명해준다. 이는 결국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합리적인 이유를 만드는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떠오르는 또 하나의 기제는 바로 '셀프 핸디캡'이다. 회사에서 진급 교육에 참여하면 입소 이전에 사전 시험을 보게 되는데, 불합격하면 짐을 싸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 모두가 불안하다. 공부 많이 했냐는 질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은 업무가 바쁘고, 출장을 다녀와서 공부를 하나도 못했다고 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를 했을 것이다. 시험에 떨어질까 봐 불안했으니 공부를 안했을리 없다. 하지만, 정말로 시험에 떨어졌을 때 받아들이게 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핸디캡을 줌으로써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것이다.
다시 합리화로 돌아가, 적절한 합리화는 자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심한 합리화는 망상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이솝우화의 여우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자신이 먹지 못한다고 그 포도를 신포도로 규정했으니 말이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보고를 하다가 혼이 났을 때, 자신의 부족함은 인정하지 않고 그 날 상사의 기분을 탓하거나 또 다른 깊은 뜻이 있을 거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합리화에 해당한다.
자아에 내재되어 있으나 용인되지 않는 것들을 다른 사람의 특성으로 탓해버리는 수단이다. 자기 자신이 화가 나 있는 것은 의식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즉, 자신의 심리적 속성이 타인에게 있는 것처럼 규정해버린다. 늦잠을 잤을 때, 어머니나 와이프가 깨우지 않아서 지각했다고 화를 내거나 불평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누군가 밑도 끝도 없이 미운 경우에, 그 사람이 나를 매우 미워하기 때문에 나도 그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도 그렇다.
투사는 평소에도 자주 일어나는 자아 방어기제다. 그리고 대부분 자아의 현실 검증력에 의해 적절히 처리된다. 임산부 눈에는 임산부만 보이고, 장사꾼 눈에는 장사꾼만 보인다는 것도 투사를 잘 설명한다. 직장에서는 나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상대방이 실수한 것을 꼬투리로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서로가 그 꼬투리를 잡는 것에 혈안이 되어 갈등은 고조되고, 마침내 왜 그러한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본질은 잊은 채 적을 양산하고 만다.
감정의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대신, 이성적으로만 해결하려는 것을 말한다. 즉, '지성'에서 '감정'을 격리하는 자아 방어 기제다. 재미있는 건 주지화를 하는 사람도 감정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곤 한다. 예를 들어, "맞아요, 저는 지금 그 일로 화가 났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이 말을 듣는 사람은 그 사람의 '화'를 못 느낀다. 사회적으로 우리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조심히 여기고, 이성으로 먼저 해결하는 것이 좀 더 고차원이라는 풍조 때문에 사람들은 감정을 짓누르고 이성과 지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실제로 감정이 요동하는 직장생활 내에서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을 표하고 싶다. 하지만 떠오르는 감정을 짓누르고 그저 이성적으로만 해결하려다 보면, 결국 감정의 순환이 안된다. 혈액 순환이 잘 되어야 하듯이, 감정과 마음도 순환이 일어나야 하는데 강력한 주지화는 이를 막는다. 한 집안의 가장이 퇴근하여 집에 도둑이 든 것을 발견하고서는, 가족들에게 무사하냐는 말보다 "그래서 문은 진짜로 잠갔던 거니?, 우리 집에 허점이 있었구나,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대책을 세워보자."라고 하는 것은 심한 주지화의 단면이다. 본인은 이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싶지 않다는 자아 방어기제를 가동한 것이지만 그와 사는 가족들은 혀를 찰 일이다.
직장 내에서도 타 부서와 싸우고 온 후배 사원에게, "화내지 마, 여기서 감정 내어 보이고 화내면 하수야, 하수라고!"를 외치는 선배 사원치고 고수를 본 일이 없다. 감정이 상해 있는 후배의 마음을 들어주고 나서 조언을 주어야 하는데, 자신은 성숙해 보이려고 애써 주지화를 사용하는 경우다.
주지화는 감정을 소화해낼 능력이 있다면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이 욕구불만과 불안은 마음속에서 자라고 자라 언젠간 터지고 만다. 이성적으로 보이는 사람들(교수, 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 중에 예상치 못한 사고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회적 지위 때문에 주지화를 사용하다 억누른 마음이 폭발한 경우다.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긍정적인 부분을 강화하여 약점을 보완하려는 정신적 시도다. 아들러는 보상작용이 콤플렉스를 이겨내고, 이러한 '보상작용'이 미래를 개척하는 원동력이라 봤다. 키가 작은 사람이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운다던가, 뚱뚱한 사람이 좋은 목소리를 가지려 노력한다. 직장에서는 자신의 학벌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하거나, 추가로 공부해서 전문 영역을 넓혀가는 노력을 하는 경우도 있다. 보상작용은 잘 이용하면 아주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만, 지나친 보상작용은 성과를 허위로 부풀리거나 학력이나 자신이 가진 역량을 왜곡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타 부서에서 퇴직한 팀장 한 명이 구설수에 올랐다. 퇴사를 하고 밝혀진 사실인데 그의 학력이 왜곡되었고 그가 말한 학창 시절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것이다. 배경을 살펴보니, 본인이 생각하기에 남들보다 부족한 학력이라 생각한 그 팀장은 유명 대학원을 나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또한 자신이 과학고등학교를 나왔고, 학창 시절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에피소드를 늘어놓았지만 그것 또한 거짓으로 들통이 난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일하는 방식, 논리력, 사고 등은 흠잡을 데 없이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 부분이었다. 그 팀장은 본인의 콤플렉스라는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보상'이라는 자아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일을 열심히 하고 인정도 받았지만, 그것이 지나쳐 그만 거짓말까지 동원한 사례다.
문과 출신이어서 숫자에 약한 사람이 영업일을 하면서 마주치는 숫자에 대한 불안을 깨닫고 열심히 노력하여, 매출액이나 업무 관련 숫자를 빠르게 연산하는 긍정적인 보상작용의 사례도 분명 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을 억압한다.', '그 반대적 행동이 의식적 차원에서 표현된다.' 이 두 가지는 반동 형성이 거치는 두 단계다. 반동 형성은 무의식적 욕구 충동을 억압만으로 이겨낼 수 없을 때 그것과 정반대 되는 욕구를 만들어냄으로써 대항하는 심리 기제다. 극단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이타주의는 이기주의를 숨기기 위한 것이고, 경건은 죄를 감추기 위한 것, 그리고 박애는 야만적인 성욕을 숨기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결벽 증세를 보이는 사람은 무엇을 망치거나 흐트러뜨리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고기를 먹고 싶은 욕구를 무의식적으로 억압한 사람이, 육식 반대 운동을 하는 경우를 들수 있다.
직장 생활에서 보이는 반동 형성은 다양하다. 누군가가 두려운 경우, 어떤 이들은 반대로 그 사람과 친해지려 한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 일부러 싸움닭처럼 업무를 진행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마음이 여린 것에 대한 불안이 무의식적으로 억압되어, 의식적으로 반대되는 행동을 보이려는 경우다. 이러한 사람들은 매우 방어적이고, 강한 이미지를 표출할 때 매우 어색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밖에도 동일시, 전이, 공감, 대치와 전치, 상환, 상징화, 격리, 부정, 저항, 고착과 퇴행, 승화 등 수많은 방어기제들이 있다. 앞서 살펴본 5가지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래서 직장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방어기제들이다. 5가지 외의 것들은 앞으로 나와 타인을 관찰할 때 필요하면 차용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방어기제들은 단어 뜻 자체로도 이해되는 것들도 있다.
자, 나는 여러 가지 방어기제들 중에서 무엇을 주로 사용했을까? 내가 이러한 것을 사용한 걸 알아차리긴 했는가? 지난번에 나한테 이유모를 행동을 보인 그 사람은 어떤 상태였을까?
관찰을 해보자. 나의 마음을 우선적으로. 심리학 이론을 몇 개 접했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타인을 이 몇 가지 이론에 욱여넣는 것이다. 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이 이론들과 나를 접목시켜 보는 것이다. 내가 그랬던 행동이나 마음가짐,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른 이들을 조심스럽게 추정해볼 수 있다.
앞으로도 나의 마음과 행동, 감정의 상태를 잘 살펴보자.
나 스스로가 조금은 달라 보일 것이며, 나의 마음을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글을 쓰고, 이 글을 읽는 목표이자 목적이다.
* 글쓰기의 본질을 전하는 사람들, 팀라이트가 브런치 글쓰기 강의와 공저출판 프로젝트를 런칭 했습니다. 많은 관심과 함께 주변의 글쓰기가 필요하신 분들께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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