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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04. 2017

[번외] 내 마음 바라보기 #3

내가 사용한 방어기제 돌아보기

"번쩍!"


속도가 조금이라도 넘으면 뒤에서 또는 앞에서 불빛이 번쩍인다. 유럽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다 보니 국경을 넘어 이곳저곳에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간다. 살고 있는 나라에서 국경을 넘어 낯선 땅에서 운전하다 보면, 아무리 신경 쓰고 조심한다고 해도 과속단속 카메라에 걸리는 일이 많다. 그 벌금도 비싸서 50유로 ~ 250유로에 다다른다. 그러니 뒤통수(카메라가 보통 뒤쪽에서 차를 찍는다.)에서 번쩍임을 느끼면 감정이 요동한다.

좀 더 조심해서 운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날아올 고지서에 찍힌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떠오르며 마음속엔 분노가 가득해진다. 처음엔 욕을 했다. 입에서는 자동적으로 쌍자음이 들어간 단어들이 수두룩하게 터져 나왔다. 당장은 어찌할 수 없는 내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문제는 욕을 하고 나면 기분이 더 나빠진다는 것이다. 마음은 더 불편하고, 잠깐은 해소되는듯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은 더욱더 커진다.

특히, 가족들과 여행길에 올랐을 때 찍힌 거라면 그러지도 못한다. 뒷좌석에 있는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로 욕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옆에 와이프에게 들릴 정도로 '아이씨'라고 외치기도 하지만 그마저 조심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내 마음은 어찌할까? 순간적인 불만과 후회, 분노 등을 회피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되돌아보니 지금까지 쌓인 벌금의 금액이 몇 천 유로를 넘어갔을 때쯤, 재미있게도 그러한 상황이 학습이 되었음을 느꼈다. 그리고 욕을 하거나, 무거운 마음을 끌고 가봤자 나에게 남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족들과 있을 때, 내 마음이 요동하고 분노하면 같이 오른 가족여행의 여정은 망가질 것을 알기에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되새기기 시작했다.


"아, 방금 우리 프랑스에 기부를 좀 한 것 같은데?"


번쩍함과 동시에 나는 말하곤 한다. 그러면 옆에서 와이프가 미간을 잠깐 찡그렸다가 그러려니 한다. 뒤에 아이들은 내 말에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창밖을 보거나 잠을 청한다.


나는 가족 여행을 망치지 않고 또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방어기제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것은 복합적으로 사용되었다. 다시 나의 마음을 돌아보니 그것이 보인다.


첫째, 합리화다.


운전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는 것. 유럽 여행길에 오르면 짧게는 1,000km, 많게는 4,000km를 내달린다. 와이프는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못하므로 모든 운전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과속 카메라에 찍히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그렇게 오래 고생해서 운전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는 합리화가 생긴다. 그리고 와이프가 좀 더 조심하지 그랬냐는 잔소리를 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자신은 운전을 도와주지 못하고 있고, 또 내가 얼마나 힘들게 운전을 하고 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둘째, 격리와 주지화


일단 일어난 일에 대해 감정을 분리한다. 즉, 격리다. 일어난 일과 감정을 곧바로 연결 짓지 않고 따로 보기로 노력한다. 이것은 '학습'과도 관계된다. 그동안 많은 과속카메라 단속에 걸려봤으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당장 분노하지 않고, 곧바로 욕을 하지도 않는다.

주지화는 이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격리를 실행한 후 감정보다는 이성으로 상태를 수습하려 하는 것이다. "아, 이거 한 90유로는 나오겠다, 그렇지?" 슬쩍 옆에 있는 와이프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한다. 그러면 와이프는 안타깝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셋째, 승화


승화는 용납되지 않는 충동을 억압으로 완전하게 해소하지 못했을 때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형태로 변하게 하여 '의식적'으로 다루는 것을 말한다. 즉, 아이들 앞에서 분노하거나 욕을 하는 등의 용납되지 않는 충동을 억압/ 억제하였지만 그것을 다 해소하지 못하면 내 마음이 다치므로, 과속카메라에 걸린 그 나라에 '기부'했다고 에둘러 표현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가장 건전한 방어기제 중에 하나로 성적 욕망이 강한 사람이 그 에너지를 예술로 승화시키거나, 어렸을 때의 불우한 환경으로 인한 결핍을 채워나가다 성공하는 사람들에게서 승화를 엿볼 수 있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알게 모르게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감정을 느낀 그 시점이 아니라, 감정이나 욕구불만이 해소된 다른 시점에서 보면 그때 우리는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했는지 가늠이 가능하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면 보인다. 물론, 방어기제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그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고 그러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을 돌아보는 연습을 하면 분명 조금은 더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이러한 방어기제를 조금은 더 '의식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 논의하겠지만, 또 너무 '의식적'인 것으로 치우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즉, 감정과 마음 그리고 욕구불만은 우리가 '의식적'으로만 다룰 수는 없다. 때로는 있는 그대로 마음을 발산하고, 웃고, 떠들고, 울고, 욕하고, 분노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방어기제뿐만 아니라 카타르시스도 필요한 이유다.



카타르시스 (그리스어: katharsis)는 그리스어로 정화를 뜻한다. 우리 마음속에 눌려진 불안, 우울, 긴장, 욕구불만 등의 뭉쳐진 감정이 풀리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카타르시스는 비극속 인물이 슬픔을 해소하는 것을 뜻하는데, 정신분석학에서는 감정의 상처를 밖으로 표출해 안정된 상태를 되찾는 의미로도 쓰인다.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선택!)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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