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안녕이라 해두자
사랑이 짧으면, 슬픔은 길어진다
옆 집 초인종을 눌렀다.
직감을 했다는 듯이 이웃 사람의 미간은 아쉬움의 찡그림이 가득했다. 양쪽 눈썹 끝이 내려간 상태로 우리를 맞이한 것이다. 와이프는 진작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4년 동안 왕래를 한 것이 손에 꼽을 정도지만, 막상 떠나려니 묵직한 무언가가 서로의 마음을 때렸나 보다. 와이프는 그렇게 마음이 여리다. 그런 그녀를 내가 사랑하는 이유다.
우리의 왼쪽 집은 전형적인 더치 가족이었다. 아이가 셋이었지만 육아에 있어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같은 월급쟁이였어도 남편과 아내가 수시로 돌아가며 아이들을 돌봤다. 네덜란드의 복지 덕분이다. 돌아가며 일찍 퇴근을 하고, 필요한 경우 주 4일 근무를 하기도 했다.
사실, 와이프가 눈물을 흘렸던 때는 바로 오른쪽 집과 인사를 할 때였다. 남편은 더치지만, 아내는 어렸을 적 한국에서 입양된 분. 간혹, 우리가 더치어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나, 반대로 그분이 한국말이 필요할 때면 서로 오가곤 했다. 자신을 먼 나라로 보내버린 어머니를 한국에서 찾았고, 그 어머니도 가끔 네덜란드로 여행을 오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한국인이라서 더 그랬을 것이다. 와이프의 눈물은 애써 참으려 하는 사람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슬픔은 추억이 되겠지
4년이라는 세월이 짧았나 보다.
너무 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지만, 이리도 아쉬움이 남는 것을 보면 그 세월은 짧았던 것이다. 하루하루 버티기는 힘들어도,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 얼마 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세월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하루하루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을 마음의 여유가 없어 내일로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결국 하지 못하고 나중에야 후회하고 만다.
사랑이 짧았다. 슬픔은 그래서 아쉬움과 함께 길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슬픔은 아련한 아쉬움의 그것이므로 추억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와이프가 눈물을 흘리니, 두 아들 녀석은 따라 울기까지는 하지 않아도 대략 분위기 파악을 한 모양이다. 웃음기가 사라지고, 자기들도 슬프단다. 먹먹한 가슴을 들키지 않기 위해, '슬픔'도 느껴봐야 한다는 말을 아이들에게 던지고는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지금의 '슬픔'은 '추억'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간섭하지 않는 사이,
간섭할 수밖에 없는 사이
간섭하지 않는 조건의 동거.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두 주인공은 그렇게 다짐하지만 결국 서로에게 간섭하며 그것이 곧 사랑임을 깨닫는다. 나 또한 네덜란드를 간섭하고 싶지 않았고, 그 네덜란드가 나를 간섭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주재원은 그저 '일'이 우선이니까. 나 하나 고생해서 가족들이 행복하면 된다는 마음 가짐이, 외화를 벌어들이는 산업 역군의 타이틀보다 더 고귀했다. 그러니, 난 내 할 일만 하고 그것에 온 힘을 쏟아부으며 다른 것들은 간섭/ 신경 쓰지 말자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런. 네덜란드와 사랑에 빠져버려, 결국엔 책까지 쓰게 되었다.
나는 결국 간섭하게 되었다. 그리고 간섭받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을 더욱더 빛나게 했고, 성과를 내게 했다. 한 걸음 다가가니 두 걸음 다가오는 네덜란드의 매력은 나에게 있어 운명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네덜란드 사람들, 역사, 문화 그리고 자연과 사물까지. 사랑에 빠진 줄도 모르고 마냥 좋아하다, 4년이라는 짧은 시간이 이제는 내 앞에 턱 하고 나타나 그 끝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잠시만 안녕,
사람도 문화도 자연도 날씨도 사물도
부임했을 때가 떠오른다.
휘몰아치는 바람과 비. 모든 것에 긴장하고 얼어 있는 나를 더욱더 몰아친 습한 추위. 차갑던 공기의 냄새는 이방인을 향한 텃세와도 같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가까워진 네덜란드는 나에게 하나 둘, 그 매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더치 특유의 흥겨움과 아름답고 고즈넉한 자연. 소중한 햇살이 길어지는 계절, 그리고 가족들과의 즐거운 추억. 일은 힘들었어도 가족들과 맞이하는 바람소리와 자연으로의 회귀는 그 어느 유명한 관광지보다 값진 선물이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사물들.
군더더기 없는 그들의 삶을 나타내는 소품과 자동차, 집안의 구석구석. 어느새 그것에 익숙해져 버린 가족들. 짐을 싸고 집을 나설 때, 주위의 모든 사물들은 그대로였지만 내 마음은 흔들렸다.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가 힘든 건 사람 때문만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사물과도 이별하고 있던 것이다. 흙과 바닥, 동네 근처 농구장과 그네. 오리가 노닐던 작은 운하와 갈대밭. 오르내리기 힘들었던 좁고 높은 3층 집. 아주 작은 뒷마당. 생각해보니, 그 사물들은 우리 가족이 잠시라도 머물렀던 곳이었다. 그래, 그러니 그러겠지. 저들도 섭섭하겠지. 앞으로 언젠가 다시 보게 될지 아닐지 모르지만, 그러기에 '안녕'이란 끝맺음보다는 '잠시만 안녕'이라 해야지. 아이들은 자라서 제2의 고향과도 같은 이곳에 배낭을 짊어지고 올 수도 있고, 아예 가족끼리 여행을 오게 될지도 모르니. 그렇게, 잠시만.
네덜란드의 겨울 날씨는 떠나기에 참 좋다.
네덜란드에 더 남아 있고 싶다가도, 휘몰아치는 비바람과 살을 에는 습한 추위는 미련을 덜 느끼게 한다. 그런데 난, 이미 이러한 날씨마저 좋아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서로 간섭하려 하지 않아도 간섭하게 되는 것처럼, 상대방의 장단점을 모두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평소에 더 잘하고, 더 알아갔어야 한다는 아쉬움과 후회로 점철된다. 언젠가, 곧 네덜란드를 떠나며 어떤 글을 쓰게 될 것이라 생각은 해왔지만... 사람이 그렇지 않은가. 언제나 닥쳐서야 뒤를 돌아본다. 돌아보니 후회가 그리 크지 않음은 감사한 일이다. 그래, 이런 날씨마저 사랑하게 되었으니 난 네덜란드를 후회 없이 사랑하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다시 만날 인연이면 그렇게 될 거고, 그렇지 않다면 그래서 더 소중한 네덜란드. 운명은 그렇게 우리를 만나게 했고, 다시 우리를 떼어 놓는다. 만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많은 것들. 네덜란드라는 이름만 들어도 감사한 마음이 들고, 미소가 지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