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좀 바꿔볼까 세상을
"강의에 나서는 이유"
(가능한) 토요일이면 강의에 나선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내가 했던 고민보다 요즘 세상이라서 더 큰 고민을 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 둘째는 가르치면서 얻고 배우는 것이 크기 때문이다. 멘토링에 대한 글을 쓰면서 실제로 멘티들을 만나며 생생한 호흡을 함께 하려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솔직히 미치도록 바쁘다. 몇 주를 걸러 다녀오는 해외 출장, 나의 능력을 훌쩍 뛰어넘는 온갖 지시와 업무들. 직장인으로서 해야 하는 미래에 대한 고민. 가장으로서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좋은 남편과 아빠라는 역할. 알고 보면 월급에 의존하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일 뿐인 나를 발견한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남을 돕는 일에 발 벗고 나서게 된 것일까.
위에 열거한 이유가 주된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더 그 이유를 풀어보자면 후배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때문일 것이다. 성장의 시대에 회사를 골라서 취업하던 시대가 지나고, 이제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무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 청춘들을 위해 말이다. 초등학교 때 고등학교 수학을 선행 학습해야 하고,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취업 '스터디'까지 해야 하는 현실. (그래서 주제넘지만 강의에 참여하는 후배들에게 나는 종종 말한다. 이건 그대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내가 처음 강의 의뢰를 받았을 때, 난 호기롭게 학생에서 직장인으로의 '정체감'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겠노라고 했었다. 내 말을 들은 과정 담당 매니저는 동공이 흔들렸다. 아주 조심스럽게 매니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좀 더 실질적인/ 실용적인 교육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더 중요한 것은 '정체감'이라는 주장을 꺾지 않았다. 그래야 취업이 되어서도 일을 잘 하고, 개인의 발전에 힘쓰며 입사하여 1~2년 만에 무턱대고 직장을 그만두는 방황을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토익을 가르치며 '영어'가 아닌 '시험 Skill'을 가르치는 것 같아 싫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매니저의 말이 맞았다. 몇 차례 강의를 해보니, 일단 '취업'이 먼저였다. '정체성'의 변화에 대한 것은 우리 후배들에게 '사치'였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목숨을 부지해야, 그 이후에 '낭만'에 대해 읊조릴 수 있는 것과 같다. '취업'이 해결되어야 다른 '고민'이 가능한 것이다. 전쟁에 임하는 사람들에게, '낭만'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던 것이다. 실제로, 강의를 진행하며 마주한 후배들의 고민은 그러했다. 당장 실질적이고 실무적인 가르침이 시급했다. 세상이 그러한데, 내가 너희들이 세상을 바꿔보라며 등 떠밀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세상은 내가 바꿔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권력을 잡아 내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조금씩 바꿔가거나, 후배들의 역량을 키워주며 뒷바라지해주는 것. 그래서 그 후배들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조금씩 세상을 함께 바꾸는 것. 나는 지금 그 두 가지 방법에 모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강의를 하며 느낀 점"
실제로 강의를 하며 맞이한 후배들은 어수선했다. 취업의 문은 내가 그것을 준비할 때보다 더 각박해졌는데, 준비는 더 안되어 있음을 보았다. 글로 키스를 배운 것처럼, 하나같이 서툴렀다. 무엇보다, 각자 '생각의 틀'이 마련되지 않았다. 면접관의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응시자들의 '지식'을 묻거나 그것을 확인하려 들지 않는다. 내가 던진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을 본다. 그것이 정답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대부분 면접에서의 질문은 애매모호하다. 또는 증명할 수 없는 거시적 질문을 하기도 한다. 정답을 원한다기보다는 그 사람의 '생각의 틀'을 보겠다는 것이다. 어학 사전을 뒤져보면 '대답'은 그저 질문에 대한 응답이란 뜻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 해결을 하는 과정/ 자세'라고도 되어 있다. 무슨 말인지 이제 감이 올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후배들 중에 자신만의 '생각의 틀'을 가진 사람은 몇 보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우리 후배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교육 시스템의 잘못이다. 그래서 알려주고 싶다. 토요일 주말 시간을 쪼개서라도 말이다. 다행히, 나의 강의에 참석해서 함께 시간을 보낸 후배들에게서 감사의 인사가 오곤 한다. 모호했던 영업과 마케팅에 대한 개념을 알게 되었고, '생각의 틀'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주었다는 것에 대해 말이다.
몇 주 전에는 첫 번째 강의를 들었던 학생으로부터 도와달라는 SOS를 받았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외국계 채용에 지원을 하려는데, 너무 막막해서 연락을 해온 것이다. 그 용기가 가상하여 메일로 관련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메일을 보고는 짜증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절실하다는 그 친구의 이메일엔 해당 회사 채용 공고에 대한 내용 (ex. 채용 일정, 인재상, 모집하는 직군)은 없었고, 자신의 경험과 경력을 단순히 나열한 문서가 와있을 뿐이었다.
감정이 치솟아, 이런 식이면 못하겠다는 답장을 보내려다 마음을 가다듬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땐, 나의 바쁜 상황과 보내온 수준을 봤을 땐 거절해야 함이 옳았다. 하지만, 내려앉은 감정은 어느새 그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변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몰라, 주말에 다급히 만나 수 시간을 들여 코칭을 해줬다. 다행히, 잘 알아들은 그 친구는 정해진 기간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완성도의 자기소개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아!, 우리 후배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필요하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바쁘지만, 내가 기여할 일이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더불어, 한 명에게라도 더 알려줘야 하겠다는 조급함과 뭣도 모를 사명감이 몰려왔다.
"강의를 통해 만나는 후배들의 유형"
강의를 통해 만나는 후배들은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는 큰 틀에서는 차이가 별로 없다. 주로 3~4학년, 또는 갓 졸업한 학생. 때로는 이제 막 입사를 해서 실무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친구들도 찾아온다. 그런데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각자의 사정이나 역량의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나는 주로 해외 영업 & 마케팅에 대한 강의를 한다. 거기에 나의 경험과 실무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취업 시 마주하는 자기소개서 작성법이나 면접법에 대해서도 Tip을 주곤 한다. 이제까지 만난 친구들의 유형에 대해 우선 정리를 해보자면.
첫째, 해외 영업 & 마케팅 (직무)에 대한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경우
전공에 관계없이, 본인의 진로를 영업 & 마케팅으로 정하고 그에 맞추어 도전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 강의에 참여한다. 상경계열이 많을 것 같지만, 타 전공도 많다. (참고로 나 또한 인문대 출신이다.) 이런 친구들에겐, 자신이 왜 이 직무에 도전을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특히, 상경계가 아닐 경우는 전공과 관계없어 보이는데 왜 이 직무에 도전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 '생각의 틀' 없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거나 면접에서 대답했다가는 광탈당하기 쉽다.
더불어 대학생 친구들이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영업과 마케팅의 실체다. '마케팅'이란 용어에는 매우 친숙하고 '영업'이란 단어에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은 '영업'과는 담을 쌓고, 뭔가 있어 보이는 '마케팅' 직무에 도전한다는 친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영업과 마케팅은 불가분의 관계이고 '마케팅'은 '영업'을 수식하는 관계로 오히려 '영업'을 모르고는 '마케팅'을 논할 수 없다. 또한 영업을 중심으로 그 이전 단계와 이후 단계를 거치는 Flow를 익히지 못하면 동문서답을 하거나, 추상적인 대답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내 강의에서는 이러한 점을 구체적으로 짚어주려 노력한다.
둘째, 해외 영업 & 마케팅을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놓은 경우
'영업', '마케팅'은 매우 친숙한 용어다. 게다가 취업의 문이 상대적으로 넓다. 전공 무관인 경우도 많다. 그러니 다른 것을 준비하다가도, 영업과 마케팅을 함께 도전하는 후배들이 대부분이다. 이해가 된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영업 & 마케팅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순 없다.'가 나의 의견이다. 적성이나 열정, 진로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도전했다간 취업이 되어도 문제다. 우리 회사 내부에서도, 연구직으로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서울 근무를 위해 영업/ 마케팅 직군을 도전하곤 하는데 그중 열에 아홉은 적응을 잘하지 못하고 또 다른 부서로 옮기거나 오랜 시간을 방황한다. 이야기를 해보면, 어려워 보이지 않았고 해외 출장 다니는 것이 재밌어 보였다고 하나같이 이야기한다.
그래서 영업 & 마케팅을 하나의 또 다른 선택지 중 하나로 놓은 후배들을 만났을 땐, 영업과 마케팅이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자신이 생각한 진로와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 짚어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영업과 마케팅은 우리네 인생에 있어 일상생활에서도 사용되는 것들이다. 당장에, 지원하는 회사 면접을 보는 것도 나 자신을 '영업'하는 것이고, 내가 팔릴 수 있게 갖가지 미사여구를 붙여 좀 더 유능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 '마케팅'인 것이다.
셋째, 진로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해 어떤 설명이라도 들어보려 오는 경우
놀랍게도, 4학년이거나 이미 졸업한 친구들 중에도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지난번 강의 때 어느 한 학생에게는 쉬는 시간에 정말 진지하게 조언을 주기도 했다. 4학년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본인 전공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취업이나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부러 내가 쏟아내는 질문에 대해 그 어떠한 본인만의 '생각의 틀'을 보여주지 못했다. 취업에 대한 정보나 스킬이 모자란 것도 문제지만, 자신만의 이야기나 '생각의 틀'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그래서 그 친구에겐 여기저기 취업을 위한 세미나를 참석하기보단 우선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길 조언했다.
영업과 마케팅을 둘러싼 수많은 부서나 직무가 있다. 나는 강조한다. '기승전 영업'이라고. 기업의 존재 목적이 이윤추구임을 모두가 안다. 그리고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선 무언가를 팔아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그에 상응하는 것(이윤)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모든 부서나 직무는 결국, 영업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한 지원군이다. 인사나 생산, 연구개발과 마케팅 부서, SCM과 서비스 등도 모두 영업을 지원하며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과정이다. 브랜드에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하는 것도 결국 소비자들이 좀 더 쉽게 자사 제품을 선택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영업 & 마케팅'을 중심으로 한 유관부서와의 역학관계를 보면 꼭 영업/ 마케팅이 아니라도 그 시야가 넓어질 수 있다. 그래서 갈피를 못 잡는 친구들에게도 내 강의는 도움이 된다.
나는 우리 후배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에 나의 강의를 듣고, 자기소개서와 면접에 대한 도움을 준 친구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원하는 곳에 최종 합격하여 고맙다는 인사. 정말 보람찼다. 내가 다 기뻤다. 그럼과 동시에, 입사해서 느끼게 될 정체성에 대한 변화, 사회인으로 마주해야 할 여러 어려움에 대해서도 생각이 났다.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 기어이 나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구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한 친구이기에 아마 잘 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뭣도 모르고 헤쳐왔으니 말이다.
이제 그 친구에게 필요한 건, 나의 Tip이나 Skill이 아닌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맞서는 경험일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쌓이면, 또 다른 후배에게 그것을 전달하지 않을까. 세상을 바꾼다는 거창한 말들을 뻔뻔하게 몇 번 언급했지만, 나는 믿는다.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갈 것을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나는 나의 직업과 업무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가 해야 하는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는 모든 것이 무너진다. 강의도 할 수 없고, 후배들에게 멘토링을 할 자격도 없다. 진심을 전하기 위해 나는 내가 하는 일과 영역에서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지금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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