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대들의 잘못이 아니다
과거는 '성장'의 시대였다.
'성장'의 과정 중엔 해야 할 일도 많았지만 그만큼 열매가 풍성했다. 전쟁을 치르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 '빨리빨리'란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한반도를 휩쓸었다. 그리고 그것은 '성장'이라는 나뭇가지에 강력한 비료가 되어 풍성한 열매가 된 것이다. 당시엔 졸업을 하면 여러 대기업들이 학생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줄지어 있었다. 제발 우리에게로 와달라고 말이다.
입사를 하고 나면 탄탄대로였다. 물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고 조직이나 사회의 전반적인 수준과 인프라가 성장세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상식 이하의 일들도 벌어지곤 했다. 그럼에도 생산해내는 모든 것들은 알아서 팔리는 시대. 회사나 공장 밖에서는 제품 좀 받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대리점이나 딜러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 풍요의 시대를 누렸던 파릇파릇한 신입사원들은 지금 현직의 고위급 간부로 그 열매의 풍성함을 아직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그분들이 밉거나 하진 않다. 시대를 잘 타고났을 테고, 각자의 삶의 무게와 어려움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장이 정체되고, 공급이 과해지면서 세상은 달라졌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무서운 시대. 하지만 '소비'는 하라고 마케팅이 난무하는 환경. 학력은 높아지고 경험은 많아지는데 그것을 써먹을 수 있는 데가 없는 세상.
지금 이렇게 힘든 건, 그러니까 후배들의 잘못이 아니다.
'노력'과 '노오력'은 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린 '노력'과 '노오력'은 해야 한다.
얼마 전엔, 내가 쓴 글에 어느 누군가의 댓글이 달렸다. 잘 읽었으나 아무래도 '노오력'을 강요하는 게 아닌지, 나의 글이 불편하다고 말이다. 누군가에겐 그럴 수 있다. 실제로 내 글의 많은 부분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우리 후배들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시대가 변하여 지금의 어려운 이유가 그대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노력'(이 안되면 '노오력'이라도)은 변함없이 해야 한다는 것.
시대를 탓하며 포기하거나, '노력'해봤자 안된다고 스스로 주저앉는 것은 좋지 않다. 왜일까? 그 '좋지 않음'은 자신에게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저 "요즘 애들 왜 이리 노력을 안 해?"라는 말에 욱하여, '노력'이라는 좋은 의미를 아니꼽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더불어, 수저 계급론에 입각하여 '노력'해봤자 그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실제 여기저기서 증명이 되다 보니 그런 것도 있겠다. 다시 한번 더. 그대들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 인정해주는 '성장'을 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삶은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당장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원하는 직장과 직무에 단번에 합격하려는 마음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 스스로의 마음을 편하게 하려는 심리 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요원해 보일 때, 어떤 사람들은 '노력'을 강요하지 말라하고 시대를 탓한다. 꼭 대기업이나 원하는 일을 단번에 거머쥐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노력'하고 있지 않는 자신을 '합리화'하려니 시대의 상황이 아주 적절하다.
노력해야 한다. 안되면 노오력이라도 해야 한다. 자신을 위해서다.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 그러면 기회가 온다. 다음의 길이 보인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구분하자
후회 없이 노력한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보자
우리 후배들은 지쳐있다.
불확실한 미래, 광탈의 연속. 불안한 마음에 여기저기 찔러 넣어본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의 탈락 통보는 더더욱 쓰라리다. 그러니 기분이 많이 내려가 있다. 현재 자신이 하는 경험이나 경력, 공부했던 것들이 과연 쓸모는 있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래서 난, 우리 후배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자존감'을 지키라고. '자존감'은 말 그대로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이는 '자존심'과 구분된다. 자존심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나 품의를 지켜려는 마음'이다. '자존감'과 '자존심'의 큰 차이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다. 즉, '자존감'은 '내가 나를 존중'하면 되는 것이고, '자존심'은 '남'과 연관된 무엇이다.
이 둘을 구분하면, '자존심' 상할 때마다 요동하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 남이 뭐라 하든, 어디선가 나의 경력을 인정하지 않고 탈락을 시켰든 간에 '내가 나를 존중'하면 되는 것이다. 시대의 상황도 있고, 내 탓만이 아니며, 스스로 후회하지 않을 만큼 노력과 노오력을 했으니 괜찮다고. '나'는 '나'이고, 지금의 이 순간의 경험마저 기억하고 즐기겠노라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과 함께 나 자신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을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보겠노라고.
취업은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이자 '과정'이다
고 3 때를 생각해보자.
아마, 대학교만 가면 모든 것이 '끝'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정말로 그런가? '끝'일 줄만 알았는데 지금은 또 다른 '끝(?)'인 취업을 바라보고 있다. 이마저도 끝이 아니다. 더 큰 파도가 다가올 것이고, 사춘기 때보다 더한 정체성의 혼돈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후배들에게 꼭 해주는 말이다. 취업은 '끝'이 아니라고. 또 다른 '시작'이자 '과정'이라고.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은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취업을 하더라도, 당장 자신이 원하던 회사나 직무가 아닐 경우 방황한다. 조급한 마음에 현재의 일엔 손이 잡히지 않고, 어서 빨리 내가 원하는 파랑새를 찾아 떠나야 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러니 1~2년을 버티지 못하고, 어렵게 취업한 곳을 박차고 나온다.
나도 그랬다. 당장 입사한 곳에서의 생활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그 다름의 정도가 웬만해야 하는데 그 정도를 벗어났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다른 회사 모집 공고를 알아보고 MBA 스터디를 기웃거렸다. 하지만 그때 3~4년은 버텨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야 '경력'을 쌓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 '막연한 생각'이 어쩌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 분명 그렇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평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접어두어도 좋다. '현재의 일'에 집중하고 그것이 어느 정도 손에 익으면, 신기하게도 다음으로 가는 계단이 보인다. 계속 같은 일을 전문화하든지, 아니면 연관된 다른 직무를 하든지. 또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새로운 영역이 보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뭐라도 하나 배우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끝'이라고 조급해하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길도 찾지 못한다.
멘토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줄 때 걱정하는 것이 있었다.
내가 하는 말로 인해, '꼰대'로 받아들여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멘토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그러한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 스스로의 경험과 후배들을 위하는 '진심'으로 전달하면 그것은 바르게 전달될 것이라는 믿음과 경험. 그리고, 아무리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든 아니면 순화해서 말하든 받아들이는 사람이 배움의 자세가 되어 있으면 알아서 걸러낸다는 것이다.
지난번엔 '역 꼰대'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는 무조건 귀부터 막는 후배들을 걱정하며 쓴 글이다. (참고 글: 역(逆) 꼰대의 탄생)
아무리 못난(?) 사라이라도 배울 것은 있다. 정 없으면 '저러지는 말아야지'라는 것이라도. 그러니 누군가 조언을 주면 도움이 되는 것은 간직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흘려버리면 된다.
난 우리 후배들이, 시대의 어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폄하하거나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한 '노력'은 지속했으면 한다. 자존심은 상하더라도, 자존감으로 극복하는 멋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취업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한 수 더 앞을 바라보는 여유도 가졌으면 한다. 나는 하지 못했던 것. 하지만 지나오니 했어야 하는 것. 이제야 깨닫게 되고 보게되는 것.
그래서 난 오늘도 후배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려 노력한다.
오늘도 내일도. 나의 진심이 전해지기를. 그 진심이 후배를 통해, 그 후배들의 후배들에게 내리사랑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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