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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30. 2018

여행이 정답은 아니다

삶이 주는 '힌트'라면 모를까

‘여행’, 참 흔한 말이 되어버렸다.


1989년 1월 1일을 기해서 ‘여행자유화 조치’가 내려졌다. 그러니까 그전에는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없었다는 말. 관광 여권은 83년에야 처음 생겼고 발급 나이는 50세 이상으로 제한되었다. 게다가 관광 예치금 명목으로 200만 원을 납입했어야 했다고 하니, 당시 해외로 나갔던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지금은 어떨까? 최근 일 년 단위, 해외로 나가는 사람의 수는 1,500만 명으로 추정된다. 80년대 연간 해외 출국자 대비 30배가 넘는 수치다. 즉, 우리나라 인구 3명 중 1명이 ‘한 해’ 동안 해외를 다녀온 것. 이것을 누적으로 생각해보면, 중복 수치를 고려하지 않았을 때 이미 온 국민이 몇 번씩을 해외에 다녀왔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이러한 수치를 들이대지 않아도 우리는 몸소 느끼고 있다. 일이 힘들거나,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우리는 “아, 여행이나 갈까?”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누군가는 경험과 재미를 위해, 또 누군가는 기분 전환을 위해. 추억과 낭만, 자신을 위로한다는 이유로도. 그래서 여기저기엔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들로 한가득이다.

‘여행’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닌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여행’만이 ‘답’인 것처럼


여행을 가는 이유는 많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싶다. 앞사람의 가방에 부대끼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마주하고 가야 하는 지옥철이나 출근 버스에서 사람들은 이미 머릿속으로 여행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과 나를 단절해 줄 음악으로 귀를 막고, 감은 두 눈으론 바닷가에 누워 있는 자신을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떠난다. 일을 다니면서, 또는 일을 그만두고서. 어떤 친구들은 여행을 가기 위해 회사를 관두기도 한다. 멀찌감치 예약해 놓은 여행 티켓을 바라보며, 상사의 잔소리는 한 귀로 흘려들을 수 있는 힘이 생길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다. 가기 전의 설렘은 곧 잊히고, 돌아오기 전 날부터 마음은 요동한다. 여행을 다녀오면 무언가 바뀌어 있을 줄 알았는데, 돌아온 일상은 어째 더 답답하다. ‘여행’이 ‘답’ 일 거란 생각. 다녀오면 무언가 바뀌어 있을거란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우리는 이것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일류회사란 별명을 가진 회사에 자랑스럽게 입사한 후배가 돌연 퇴사를 했다. 그리고는 일상이 지긋지긋하다며 세계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후배의 SNS엔 찬사가 넘쳐났다. 멋있다, 부럽다,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는 말들로.


1년 후에 돌아온 후배는 또다시 구직과 퇴사를 반복했다. 잠시 번 돈으로 여행을 다니곤 했는데, 많이 힘들어 보였다. 그것은 마치 ‘여행자’의 모습이 아니라, 일상을 벗어나고픈 ‘도망자’의 모습과도 같았다.


과감하게 어렵게 회사를 관두고 나간 후배의 말을 들었을 때, 난 내가 하지 못한 것을 해 후배에게 ‘무언가’를 기대했었다. 그 ‘무언가’가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 또한 ‘여행’에 대한 어떤 ‘환상’이 있었을까. 무언가 달라져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대한 경종이었다.


그 후배에게 ‘여행’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의미였을까? 내가 그 후배의 ‘여행’에 걸었던 기대는 과연 뭐였을까?


‘일상’의 소중함. 그리고 ‘여행’이라는 ‘삶의 힌트’


앞서, 글의 제목을 ‘여행이 정답은 아니다’로 했다. 잠시 고민했던 ‘여행은 정답이 아니다’라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두 번째 제목은 아예 그것이 정답이 될 수 없다는 뜻이지만, 앞의 것은 정답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자신만의 ‘정답’을 찾는 사람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일상’을 본다. ‘일상’의 의미를 ‘여행’에 투영하고,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을 ‘일상’의 활력으로 활용하는 사람들.


회사를 관두고 떠난 후배가 했던 ‘일상이 지긋지긋’ 하단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곤 어쩐지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일상’은 누군가에겐 매우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쳇바퀴 도는 ‘일상’이라도 그 속에서 ‘변주곡’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고나 큰 일을 당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꿈인 사람들도 있다. ‘일상’에 최선을 다하고 묵묵하게 나아가는 사람이 있기에 세상은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즉, ‘일상’이 있어야 ‘여행’도 가능한 것이다.


‘여행’은 삶이 주는 ‘힌트’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일상에서 써먹는, 나의 일상과 삶을 조금씩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에너지. 우리가 바라는 ‘정답’은 없을 수도 있지만, 있다면 바로 ‘일상’에 있는 것이다. ‘여행’은 어찌 보면 조금은 더 특별한 ‘일상’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일상’의 소중을 알아야 한다.


‘삶’은 ‘여행’에 자주 비유된다. 우리의 ‘일상’이 곧 ‘여행’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껏 즐겨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마음의 카메라로 일상의 순간순간을 간직해 두어야 한다.

‘틸틸’과 ‘미틸’이 찾아 나섰던 파랑새가 집에 있었다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 하지만 아무나 깨닫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자꾸만 ‘정답’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고 집에 돌아와 그것을 발견한다. - 조지 무어 -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데 있다. - 마르쉘 푸르스트 -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 현지인들과 만나는 여행은 생각의 근육을 단련하는 비법이다. - 이노우에 히로유키 -
여행에서 지식을 얻어 돌아오고 싶다면 떠날 때 지식을 몸에 지니고 가야 한다. - 사무엘 존슨


매거진의 이전글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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