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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17. 2019

내 돈으로 사지 않던걸 산다는 것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지 모른다.

문득, 어른이 된 걸 실감할 때가 있다.

그것은 어떤 행동을 통해서다. 어른들이 왜 저러나 했던 것을 내가 했을 때, 또는 예전엔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림으로써 말이다.


밍밍하던 회 맛이 쫀득쫀득 맛있어지고, 앉았다 일어날 때 '아이고'를 외치며 나는 어른이 되었다.

돈을 받다가 돈을 벌면서도 그렇고, 무언가를 누리기 위해 대출이라는 자본주의 그물망에 그 어떤 저당을 잡히며 어른임을 선택하기도 했다. 꿈이 사라지는만큼 책임은 늘어났고, 자유가 줄어드월급은 쌓였다.


마음이야 아직도 새파란 젊음이고, 언제 난 철이 들까를 스스로 의문하지만 그 누구도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고뇌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미 나이는 어른임을 부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내가 쓴 사회적 가면은 먹고살아야 하는 것들과 결부되어 있어 두껍고도 무겁다. 어른임은 물릴 수 없는 것이고, 그에 합당하지 않은 행동을 하면 나는 누군가로부터 지탄받는다.


이런 와중에서 내가 가장 확실하게 어른이 되었음을 느낀 건, 내 돈으로 사지 않던걸 살 때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맞이 하면서 샀던 수건, 양말, 속옷 등. 그 외에도 가지런히 깎여 있던 과일과 간식거리. 그것들은 내가 어찌하지 않아도 당연히 집에 있던 것들이었다. 아무런 걱정 없이, 아무런 결핍 없이 나도 모르게 차곡차곡 쌓여 있던 것들.


난, 아직도 와이프와 함께 내 돈으로 처음 집에 쓸 수건을 샀던 때가 떠오른다.

결혼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었을 때인데, 그 당시의 느낌이 그렇게 묘했다. 나이야 30대가 넘었던 때지만, 내 돈으로 수건을 산다는 건 어떤 '관문'을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아, 내가 이제 직접 이런 것도 사게 되는구나. 정말 어른이 된 걸까. 나는 아직 준비가...


그때 생각을 하면, 난 어머니와 아이들이 동시에 떠오른다.

나의 어머니도 아직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어른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마음 한쪽이 시리다. 반면, 우리 아이들은 내가 누렸던 것들을 똑같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음을 생각하며 안도한다. 수건 한 장, 과일 한 점의 무게를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 물론, 그 무게를 미리부터 알려주고 싶진 않다. 너무나 당연한 건 아니라고 설명해주고 싶긴 하지만, 논리적이면서도 조금은 '덜 현실적'으로 설명해 줄 자신이 나는 없다.


아이들은 언제 어른이 되냐고 아우성이다.

TV는 그만보고 다른 것을 하라고 하거나, 시간을 정해 놓고 게임을 하라고 하니 그것을 마음껏 하는 그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돌아보면 나도 그랬다. 어른이 되고자 안달했던 그때. 맛있는 간식을 마음껏 먹거나, 가고 싶은 곳으로 훌쩍 떠날 수 있다는 환상이 있었다. 그에 따르는 책임과 삶의 무게는 보일 리 없었던 그 때다.


나는 아마도, 내가 하지 않았던 것들을 좀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다.

직장에서도 직급이 올라가고, 아이들은 더 커가면서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몇 살 자녀의 아버지가 될 것이니까. 40이라는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향하고, '이순'과 '종심'으로 가는 그 과정에서도 새롭게 하게 될 일은 많을 것이 뻔하다.


매 순간 그것을 느끼게 될 것을 생각하면.

그러게. 나는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사람은 어른이라는 것이 되기는 하는 걸까. 계속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깨달아가지만, 언제 어른이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게 아닐까.


그렇게,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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