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상 Sep 02. 2019

정체성에 대한 오해

정체성正體性,identity이란 존재의 본질을 규명하는 성질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여러 정체성 중에서도 여기서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서만 얘기해 보자. 유행가에도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는 가사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개인의 정체성은 고정되어 절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과연 그럴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릴적부터 무슨 일을 하거나 직업을 가지려면 우선 자신의 정체성부터 찾아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박히듯 들어왔을 것이다. 시간이 꽤나 흘러 직장에서 퇴직을 하고나서 이모작을 하거나 창직을 통해 평생직업을 찾을 때에도 정체성이 뭔지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자신의 정체성이 뭔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가? 혹시 아직도 그것을 찾고 있지는 않는가?

여기서 우리는 정체성에 대한 오해를 발견하게 된다. 가정에서의 내가 과연 직장에서 같은 모습일까? 사회에서는 또 어떤가? 친구를 만나도 대학교 친구들을 만날 때와 고등학교 친구를 만날 때가 같은가? 교회에 가면 나의 모습과 행동이 다르지 않은가? 평상시와 강연을 할 때 나의 생각과 행동은 어떤가? 정말 다양한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이것이 과연 잘못된 것인가? 표리부동表裏不同 즉,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과 속으로 가지는 생각이 다르면 그건 내가 아닌가? 다른 사람을 보고 흔히 4차원 같다고 핀잔을 주는데 자신은 그렇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이 모두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황에 따라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이런 여러 생각과 행동을 자기 자신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때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디에서 무슨 생각이나 행동을 하든 그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일본의 젊은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그의 철학 에세이 <나란 무엇인가>를 통해 개인individual과 분인dividual을 구분하면서 분인이란 개인보다 한 단계 작은 존재라는 개념을 주장하고 있다. 여러 분인이 모여서 개인으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개인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 분인에 해당한다. 그러니 자신이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다른 생각과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모티브가 제공된다고 설명할 수 있다.

창직을 해서 평생직업을 찾는 과정은 여러 분인을 모아 개인이라는 퍼즐에 맞추듯 대입해 보는 단계라고 보면 된다. 완벽한 개인은 없다. 아이든 어른이든 자신의 정체성이 이거다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지식을 쌓고 경험을 가졌는지에 따라 다양한 분인을 경험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의 특성을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차곡차곡 축적의 시간들이 모여 창직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런 정체성에 대한 오해 때문에 많이 방황하며 고민해 왔다. 이제 그 오해를 풀어야 한다. 사전적 의미가 이 시대에 맞지 않은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정체성이란 단어도 마찬가지다. 틀을 깨고 나오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히지 말고 개인보다 분인의 개념을 이해하고 접근하면 정체성도 자연스럽게 찾아내게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