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원들의 참상
영원의 제로(永遠の0, えいえんのゼロ, The Eternal Zero, Eien no zero) 2013년 일본
최근 2006년 출간된 하쿠타 나오키(百田尚樹)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영원의 제로(永遠の0, えいえんのゼロ, The Eternal Zero, 2013년 일본)'가 화제이다. 이 작품은 삶의 의욕을 상실한 26세의 청년이 태평양전쟁 당시 가미카제(神風)특공대원으로 참전하여 전사한 할아버지 '미야베'의 행적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감독 : 야마자키 타카시 (山崎貴, Takashi Yamazaki)
출연 : 미우라 하루마 (三浦春馬, Haruma Miura) 오카다 준이치 (岡田准一, Junichi Okada) 이노우에 마오 (井上真央, Mao Inoue)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작가의 작품이고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가미카제(神風)특공대원을 미화하고 있으며 최근 우익행보를 계속하는 일본 아베총리가 관람을 한 까닭이다 (2013-12-27). 이와 유사한 영화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가 각본, 제작을 맡은 "너를 위해 죽으러 간다 (俺は、君のためにこそ死ににいく, For Those We Love 2007년 일본)"가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부는 1941년 1월 일본군이 전장에서 지켜야 할 행동규범 및 전튜규범으로 '전진훈(戰陣訓)'을 공포하여 실행하였다. 이 '전진훈(戰陣訓)'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군인 최고의 명예로 강조하여 개인의 존엄을 무시하고 군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전쟁기간동안 일본군은 '비합리적인 전투행동'이나 '명령'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태평양의 무수한 섬에서 '옥쇄'(玉碎)한 '일본군'들, 특히 이들 '가미카제(神風. Kamikaze)'특공대의 맹목적 복종은 바로 이런 '전진훈(戰陣訓)'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일본 일각에서는 이런 '비합리적인' 전투행위가 미화하고 찬양되고 있다. 이런 영화가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거나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가을 위해 위험한 전쟁에 나서고 목숨을 바쳐 적을 격퇴하는데 앞장을 서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자발적이며 뚜렷한 명분이 있는 정상적인 '전투'라는 전제가 있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작전이라도 '살아 돌아 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참전하는 것이 기본이다. 전투에 투입되는 개개인이 최후 선택에 의해 생존할 수도 있는가 하는 점이 큰 차이이다. 강제로 희생이 강요되고 돌아 올 희망이 없는 것은 살인이다.
최근 무슬림의 자살폭탄테러처럼 '가미카제(神風)특공대'와 같이 죽음을 강요당하는 살인특공임무는 국가권력을 이용한 국가살인의 한 형태일뿐이다. 이런 '국가살인'을 미화하고 국가에 희생된 특공대원들에 감격하는 행위는 "역사도 철학도 모르고 전혀 교양없는 사람"(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 회장) 일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가미카제(神風)특공대원들은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이다. 그 개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단지 그런 국가권력과 그들의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전혀 없는 일본 보수지도자들이 그런 희생양을 이용하여 또 다른 국가권력을 만들어 제2의 일본제국을 꿈꾸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고 현실인 것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제국군부의 빈약한 전쟁전략이 만든 또 하나의 비극은 "자살공격용 유인어회, 카이텐 (回天, Kaiten)"이다. 이 카이텐 부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출구없는 바다 (出口のない海, Sea Without Exit, 2006년 일본)'이다. 또한 일본제국군부는 소형선박에 폭약을 가득담은 자살특공요트인 '신요(震洋 Shinyo)', 자살인간기뢰 '후쿠류(伏龍)'도 만들고 편성하여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선택한 '원자폭탄'은 어쩌면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미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할 경우 수십만명의 미군이 희생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고 일본군은 물론 민간인까지 '전진훈(戰陣訓)'이란 이데올로기에 행동할 경우 그 피해는 수백만명이 예측되었다.
실제 태평양전쟁이 장기화 되어 수년 연장되었다면 우리 제주도 아니 한반도도 전쟁의 불바다에 휩싸였을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우리 독립에 우리 광복군의 역할도 증대되어 지금과는 또 다른 대한민국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