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죽지 않지?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할까.

by 쇼유

중2병 같은 생각이 문뜩 들 때가 있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삶은 괴로움이라 하였고, 부처는 현세의 고통을 잊으려 무아(無我)를 가르쳤으며, 기독교는 천국을 꿈꾸며 현생을 버텨낸다.

그렇지만 삶이 괴로우면 안 살면 되는 것 아닌가? 죽음에 대한 막연함이 우리를 살게 하는가? 아니면 놓지 못할 무언가가 우리를 살게 하는가?

그도 아니면 그저 동물적 본능인가?

인간은 가장 높은 지능을 갖은 동물로써 본능 외의 선택을 할 수 있지 않는가?

머릿속에 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늘어진다.


최근에 봤던 어떤 글에 의하면, 심리학적으로 인간이 태초에 갖는 공포는 두 가지라고 한다.

첫째,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

둘째, 갑작스런 큰 소리에 대한 공포.

이 외에 다양한 선천적 심리장애가 있을 수 있지만 보통 우리가 살면서 갖게 되는 두려움은 학습된 공포에서 비롯된 두려움이라고 한다.

무엇이 있을까?

뜨거운 것에 대한 두려움? 어둠에 대한 두려움? 동물에 대한 두려움? 타인에 대한 두려움?…….


당연히 출처도 알 수 없는 글을 믿지 않지만, 많은 생각이 스쳐가게 하는 글이다.

어려서 나에게는 많은 공포가 없었다. 오죽하면 매달리지 말라, 뛰지 말라, 만지지 말라 라는 이야기를 수 도 없이 들으며 커왔겠는가.

살면서 많은 것들이 학습되어 왔다.

만지면 안 되는 것, 마주치면 안 되는 것, 먹어서는 안 되는 것, 들어서는 안 되는 것 등등.

지금은 거의 모든 것이 두렵다.

타인의 생각과 시선이 두렵고, 실패가 두려우며, 빈곤이 두렵고, 나태가 두렵다.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두려워질 것이며, 나는 즐거움과 호기심을 잃어갈 것인가.

사람이 두렵고 가족이 두려운 지경에 이르러서야

버텨낸 지난날들을 후회하며 자신을 안락사하는 지경에 이를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고통뿐인 벌칙 같은 것인가? 아니다 분명히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싶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떤 것들이 우리를 살릴까?’라는 주제로 머리를 쥐어짜 낸다.

한 때의 추억이

아직 못 이룬 꿈같은 것들이

나의 죽음을 슬퍼할 인연들이

내일 챙겨야 할 고양이의 저녁식사가

다음 주에 개봉할 영화와 달콤한 팝콘이

아니면 ‘내가 이것밖에 안 될 리가 없다’는 현실부정이?

정확히 모르겠으나 여러 복합적 이유들을

살아야 한다와 살아도 되겠다의 사이에 놓아둔다.


감당할 수 없이 무거워 치우지 못할 이유가 팽팽한 줄 사이에 놓이면

일말의 고민조차 없어질 정도로 무거운 이유라면

나는 무쇠처럼 단단해질 것인가.


보통 그 이유를 ‘자식’이라고 하는데

그 또 다른 이름은 ‘책임’이 아닌가.


닻을 내리기에

내 삶이

아직 좀 고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