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종속성에 대하여
우리는 모두 어릴 적 보았던 백 한 마리 강아지를 기억한다. 마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무늬의 강아지들에 얽힌 권선징악의 이야기. 이 영화 덕분에 필자 또한 어릴 때 부모님께 달마시안을 키우자고 조르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악당이 인어공주의 마녀인지 백 한 마리 강아지의 악당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할 때쯤 찾아온 영화 크루엘라.
크루엘라는 패션 영화다. 런던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리버티에서 쇼핑하던 필자에겐 마치 영국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았다. 간략한 줄거리는 왜 어떻게 크루엘라가 크루엘라가 되었는가이지만, 전체적 미장센과 화려한 눈요기는 모두 60~70년대 ‘Swinging London’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빌런이 주인공인 영화 내에서도 빌런이 있는데, 그 빌런이 마치 구조적이고 탄탄한 느낌의 격식 있는 전통의 패션이라면 크루엘라는 마치 그것을 보기 좋게 깨부수는 전차와도 같다. 빌런이 빌런끼리 서로의 대척점에 서서 펼쳐지는 시퀀스가 오랜만에 시원하면서 일품인 영화로 꼭 한 번 관람하시길 추천드린다.
영국은 약탈과 직물산업을 기반으로 네덜란드와 함께 산업혁명을 이루어 낸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명맥이 이어져 온 ‘이태리 장인’과 ‘프렌치 시크’의 영향에 따라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영국의 직물과 패션산업이 폭발적인 발전을 이루는데, 이러한 산업의 발달은 금융업과 함께 영국을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우게 된다.(물론 다른 여러 조건들이 충족되기도 했지만)
‘패션’이라는 단어는 중세시대 오직 신과, 신이 내려주는 은총만을 믿던 인류가 르네상스에 접어들면서 점점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하고, 인간 개개인의 힘을 믿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사전에 등재가 된다. 또한 ‘트렌드’라는 단어 역시 신대륙을 개척하고 산업혁명을 이루어 낸 서양의 선원들이 바다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는 뜻으로 쓰였다고 하니, 패션과 직물산업이 인류와 문화 발전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패션은 원래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사회 변화에 따라 계급구조가 사라지고 중산층과 서민들에게도 사적 소유권과 돈이 생기면서, 귀족들이 하고 다니는 것을 따라 하려는 흐름이 생겨나는데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유행’이라고 한다. 대중이 귀족을 따라 하면 귀족은 더욱더 자신을 특별하게 치장해야 하는 일종의 압박을 느끼고, ‘남들과는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목적 아래 누군가는 유행을 선도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취향을 고집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변화 역시 패션을 패션이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이렇듯 일종의 도망가고 따라가는 흐름을 반복하면서 현대의 패션이 완성됐다고 필자는 보는데, 예를 들어 백화점의 명품 브랜드와 SPA 브랜드의 디자인이 ‘도망가고 따라가면서’ 점점 비슷해지는 점을 생각하면 된다.
패션의 역사는 간략하게 정리하고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물자가 부족했던 영국의 시대상과 맞물려 여자들도 군복이나 오래된 옷과 원단을 재활용해 옷을 만들어 입던 시기가 도래하는데 이때 물자를 아끼고 재활용하자는 운동이 ‘Make do and mend’ 운동이다. 실제로 원단이 부족해 집에 커튼을 떼어 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다니 마치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과 비슷하게 근면, 협동하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면서 패션 디자인이 또 한 번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남녀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등장으로 청바지가 유행하고, 그동안 지켜온 영국의 전통관념이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이때 등장한 문화가 바로 펑크 문화이다. 이 펑크를 주도한 패션 디자이너가 바로 우리에게 갑옷 모양의 악세사리와 귀여운 로고로 익숙한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이다. 비비안의 뒤를 이어 알렉산더 맥퀸과 같은 천재 디자이너들이 현대 런던 패션을 주도해 온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문화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그려지는데 클래식과 그에 반하여 등장한 새로운 문화가 스윙잉 런던 시대의 대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어떻게 가져왔을지 생각하면서 관람하면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영화를 한층 풍부하게 관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혹자는 말한다. 서울의 문화는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들이 합쳐진 문화가 바로 서울의 문화라고. 물론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고 각자의 취향에 관대한 문화에 대해서는 백 번 찬성하나, 일단 뭔가 좀 있어 보인다는 것들의 기원이 전부 메이드 인 프랑스, 이태리, 영국인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필자는 옷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코로나 시국에 샤넬백을 위해 오픈런을 하고, 브랜드 측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줄 세우는 방식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표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아무리 노력해도 '메이드 인 프랑스'를 이기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물론, 샤넬과 에르메스는 너무너무 아름답고 우아하며 독보적이다. 최고의 디자인과 최고의 소재로 장인의 손길에 의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탄생한 제품은 수백 수천만 원의 값어치를 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샤넬과 에르메스를 드는 것이 우리 개개인의 가치를 대변해주는 것은 아닐뿐더러, 그러한 것을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디 모임에 갈 때, 이 정도는 들어줘야 꿀리지 않으니까 샤넬을 사는 사람이 있고, 그냥 돈이 많아서 사는 사람이 있고, 샤넬이 가진 매력과 감동을 느끼고자 사는 사람이 있듯 목적은 다양하고 이를 비판하고자 쓰는 글이 아니다.(필자도 명품 엄청 좋아한다..)
세계 무대에 당당히 설 수 있는 한국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나는 우리도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서양의 기술력과 문화적 견고함, 단지 돈이 되는 것이 아닌 정성과 집념을 기울인 제품에 열중하면 우리나라도 이런 명품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패션과 소비활동은 곧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고 문화이다. 우리나라는 양장 기술 자체가 식민지배를 통해 들어왔고 스스로 근대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각종 제도와 정치구조, 문화를 수입하면서 고도로 발전했는데, 이때 서양의 라이프스타일마저도 우리가 수입했다고 필자는 본다. 랄프로렌은 아메리칸드림을 디자인했고, 그러한 미국의 권위주의적 문화에 반하여 히피 문화가 등장했다. 영국 왕실의 전통과 클래식에 반하여 펑크 문화가 등장했고, 르네상스 시대의 직물과 패션 산업의 발전으로 프랑스의 하이패션이 발전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강함의 척도에 서있는 문화 역사적 배경이 없으니,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결과들만을 수입해 그것들을 일종의 최고의 것들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예쁜 디자인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 혹은 우리나라 브랜드들도 충분히 예쁘고 가치 있는데 왜 그러느냐?라고 물으실 수 있다. 당연히 필자도 이에 동의하고 우리나라에도 좋은 브랜드들이 충분히 많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최고의 제품은 '메이드 인 프랑스', '메이드 인 이태리'라는 보편적 인식을 조금은 바꾸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렇게 거칠지만 재밌고 화려한 배경을 가진 영국이 부럽고 그러한 배경 뒤에 치열하게 신대륙을 개척하고 기술혁신을 위해 노력한 그들의 역사와 부강함이 부러웠다.
언젠가 우리도 새로운 기술 혁신과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기반한 브랜드로 서양 사람들을 줄 세우는 날이 오게 되길 바라면서.
아, 그렇다고 뭐만 하면 K- 붙이는 건 좀 멋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