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가볍게 글을 적기로 했다.
오늘은 노래 이야기로.
검색해봤는데 괜찮은 이미지가 안나와서 화질이 별로지만 아무거나 가지고 왔다... 롤러코스터 4집 <Sunsick>
<해바라기 - 롤러코스터>
가장 뜨거운날 또 가장 뜨거운 색으로
난 해바라기 맘껏 눈부신 꽃무더기
이 어지러운 현기증에 붉은 햇살
그리운 열기 속을 꽃보라로 난 쏟아지네
문득 태양을 향해서 활짝 피어나는 그리움
다시 돌아갈수 있다면 내가 태어난 그 곳으로
당당한 웃음 반짝 빛나는 땀방울
힘껏 달려가네 벅찬 여름의 한 가운데로
문득 태양을 향해서 활짝 피어나는 그리움
다시 돌아갈수 있다면 내가 태어난 그 곳으로
뭉클 선명한 향기로 난 항상 똑같은 꿈을 꾸네
다시 돌아갈수 있다면 내가 태어난 그 곳으로
롤러코스터는 명백히 보컬 조원선의 취향과 색채가 강한 그룹이다. 이제는 각자의 길을 걷고있는 지누와 이상순이 롤러코스터로 다시 뭉칠 일은 없지 않을까하는 아쉬운 예감도 그래서다. 그런 그들의 앨범을 들으며 찾을 수 있는 재미 요소 하나. 중간중간 조원선의 손길을 벗어나있는 노래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곡도 그렇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고개를 갸웃하며 조원선의 작사가 맞는지 확인해봤던 기억이 난다. 작사가 항목에서 코나(이후 W 등으로 활동) 배영준의 이름을 찾았을 때, 비로소 이 위화감을 납득할 수 있었는데.
조원선의 작사는 대부분 모던(혹은 세련된)한 감성을 목표로 하고 단순한 가삿말을 쓰면서 음악을 '거스르지 않는' 스타일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가사를 튀게 쓰지 않는다. 우선 악기들을 편하게 들을 수 있고 가사가 곧바로 뒤따라온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습관'을 참고해볼 수 있겠다.
<습관 - 롤러코스터>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아직도 너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
안녕 이제 그만 너를 보내야지
그건 너무 어려운 얘기
⋯
한편 해바라기를 들으며 내가 감지한 이상함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촌스러움(괄호치고 좋은 뜻). '가장 뜨거운 날 - 가장 뜨거운 색으로' 병치부터 '난 해바라기' 라며 해바라기 제목의 곡 안에서 자신을 해바라기로 명명하는 것까지. 가사 2줄만 들어도 조원선의 스타일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작사다.
다른 한 줄을 뽑아볼까. '당당한 웃음, 반짝 빛나는 땀방울' 이건 마치 소년만화에서 클리셰처럼 나오는, 한여름 운동장을 뛰다가 멈춰서서 하늘의 태양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모습을 당장이라도 이미지로 그려 청자의 눈앞에 들이댈 기세다. 한줄한줄 다 살펴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는 피곤하다.
이런 만화적 이미지는 배영준 본인이 몇 번이고 밝힌 바이고 이런 스타일을 가사에 반영하는 용기(하지만 때때로 분명 실패하기도 한다)는 그만의 확실한 강점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그의 어떤 가사들은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아래는 배영준의 작사 스타일 예시.
<R.P.G. Shine - W&Whale>
건조한 눈빛 쓰디 쓴 그대의 혀
항상 말만 앞서고 행동하진 못해
⋯
때론 나 대신 싸워주는 로봇
그건 말도 안 되는 만화 속 이야기
⋯
<월광 - W&Whale>
⋯
은빛 탄환의 비를 춤추듯 피해서
중력을 뿌리친 채 저 하늘로
⋯
거친 숨의 열기로 붉게 물든 눈빛
손톱을 세워 밤을 찢어내고
⋯
그의 촌스러운(?) 작사 스타일에서 다시 해바라기 노래 이야기로. 이 노래에서 이상함을 느낀 두 번째 이유는 죽음의 그림자다. 반복되는 아래의 후렴이 나를 잡아끌었는데.
'문득 태양을 향해서 활짝 피어나는 그리움
다시 돌아갈수 있다면 내가 태어난 그 곳으로'
가사를 듣고 떠오르는 궁금한 점에 질문을 던져보자면 아래와 같겠다.
왜 태어난 그 곳(태양)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 문득(그냥).
응?
- 한 여름이고 꽃을 피워 고개를 드니 내가 태어난 태양이 보여서.
이건 뭐, 이방인 한 귀퉁이에서나 나올 것 같은 문답이다. 태양과 해바라기 간의 관계에 사랑을 붙여넣는 방식은 오래 전부터 내려온 것이지만, 이 노래에서는 그 둘의 관계가 오묘하다. 태양은 해바라기의 고향이자 해바라기를 개화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로 존재하는데, 여기에서 어떤 사랑이나 동경의 고리는 희미하다. 단지 태양이 만든 한여름이라는 시공간이 해바라기를 문득 고개들게 할 뿐이다. 그리고 그 고개듦이 그리움을 촉발한다. 태양에 대한 그리움, 회귀에 대한 열망.
이 어지러운 현기증에 붉은 햇살
그리운 열기 속을 꽃보라로 난 쏟아지네
이미 노래 초반부터 해바라기의 꽃잎은 열기 속에서 꽃보라로 쏟아져내리고 있다. 그의 생명은 느리지만 분명히 소진되고 있다. 즉, 이 노래의 한여름은 멈춰있는 시간의 한 단면이 아니다.
당당한 웃음 반짝 빛나는 땀방울
힘껏 달려가네 벅찬 여름의 한 가운데로
다음 구절에서 일부러 운동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노래 안에서 시간은 흐르고 있다. 여기에서 하나의 의문이 든다. 이 웃음과 땀방울의 주인, 달려가는 이는 누구인가? 이미 꽃보라로 지고있고, 태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후렴을 한 번 지나온 해바라기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해바라기가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앞서 언급한 소년만화에서나 나올법한, 뜀박질하는 어린 아이의 뜨거운 열기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아이는 그 자신이 두 발로 뛰어서 여름의 한 가운데로 향한다. 해바라기는 땅에 박힌채 꽃을 피우기 위해 생의 전성기로 달려가는 아이를 바라본다.
그리하여 꽃보라를 흩날린 이 해바라기는 아직 뜨거우나, 점점 저물어가고 있는 한여름의 복판에서 태양에 돌아가고 싶어한다. '여름의 한 가운데' 보다도 훨씬 뜨거운 곳으로. 열기는 해바라기의 삶의 조건이자 충만한 생명의 상징이다.
하지만 태양은 어떤가? 열기를 만들어내고 해바라기를 살게 하지만 그건 태양-죽음이 적당히 멀리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태양에 가까워졌을때, 그 열기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추락하는 소년의 신화는 이 맥락에서도 떠올려볼 수 있다. 죽음은 인간의 무의식, 적당한 망각의 깊이 아래에서 삶을 충만하게 하지만 그것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우리는 삶을 지속하기 힘들다. 또한, 태양은 해바라기가 이해할 수 없는 상태이자 대상이므로 (여기에 대해서 무척 생략해서 미안하지만 더 이상 글이 늘어나면 안될 것 같다) 태양과 가까워지는건 곧 물리적 죽음이자, 감당할 수 없는 기호와 의미가 내 안으로 들어와 팽창해 폭발하는 일이다.
삶의 여집합-태양에 죽음 외에 어떤 불순물들이 섞여있는지 알지 못한다. 우린 그것을 그냥 죽음이라고 부른다.
해바라기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자주 삶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죽음에 매혹된다. 열기가 가득한 한여름과 태양처럼 그것들은 꼭 닮아있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비유는 맞지 않다. 둘은 서로 섞여있다. 해바라기는 열기를 초과한 태양까지 삶 안으로 끌어들여 포옹하고자 한다. 태양으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은 애초에 불가능하니(개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이니까) 결코 이루어질 수 없겠지만. 태도 정도는 정해볼 수 있겠다.
정말 뻔한 말이지만,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죽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삶과 사랑,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해 훨씬 느리고 무척 적게 이해했을 것이다.
아~ 결국 지루하게 뻔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