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돌아온다.
여자는 남자가 좋아하던,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자주 먹던 냉동식품들을 해동하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맛있다고 느껴본 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어.’ 그는 어떤 음식을 먹는 행위를 통해 특별한 감동이 생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남자는 냉동식품을 자주 먹었다. 여자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덕분에 식비가 덜 드는 점이 썩 만족스러웠다.
그녀는 남자의 메뉴 선택빈도를 적어둔 수첩을 틈틈이 들여다보며 식탁 위 접시들에 해동된 냉동식품을 올리고 위치를 조정했다. 때마침, 창문 밖에서 플라스틱이 주기적으로 돌계단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왔다. 그녀는 현관으로 나가 손의 물기를 옷에 슥슥 닦으며 잠시간 서 있었다. 곧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작은 캐리어 아래쪽에 새겨진 수많은 흠집이 여자의 눈에 들어왔다.
“다녀왔어”
“안경 좀 닦아 쓰지”
여자는 웃으면서 손바닥을 펴 내밀었다.
“괜찮아”
그는 렌즈에 얼룩이 가득한 안경을 건네는 대신 여자의 손을 잡았다. 차갑고 가느다란 손가락들 끝, 한 달의 여행만큼 길어진 손톱이 그녀의 손바닥을 가볍게 파고들었다.
“여행은 어땠어?”
“좋았어”
그는 더러워진 캐리어의 바퀴가 거실 바닥에 닿지 않도록 손잡이를 가슴팍까지 들어 올렸다. 캐리어를 들고 침실로 향하다가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발견한 남자는 불안정하게 멈춰 섰다. 검은 옷소매 아래로 캐리어를 들어 올리고 있는 남자의 하얀 팔목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무언가 말할 것처럼 그녀를 향해 돌아섰지만 한참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간신히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피곤해서 저녁은 같이 못 할 것 같아”
남자가 방문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가만 바라보던 여자는 자신의 손바닥에 남은 남자의 손톱자국을 들여다봤다. 잠시 후, 혼자 식탁에 앉은 그녀는 문득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너무 많이 차렸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남자는 달라졌다. 적어도 여자는 그렇게 느꼈다. 그는 잠을 거의 자지 않는 듯했다. 매일 밤, 남자는 여자가 잠든 것 같으면 침대를 조심스럽게 빠져나가 낡은 컴퓨터가 있는 작은 방에 틀어박혔다. 일을 다녀온 후에도 작은 방에 들어가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냈다. 때때로 그녀가 문에 귀를 가져다 대봐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먹는 양은 더 줄어버려서 유통기한이 다가온 냉동 연어를 여자가 먹게 되는 일이 익숙해졌다.
남자가 돌아온 지 한 달이 되던 날, 평소보다 일을 일찍 마치고 돌아온 여자는 식탁에 앉아 빽빽한 메모가 적힌 자신의 수첩들을 펼치며 남자가 여행을 떠나기 전의 상황을 되짚어보기로 했다. 그가 이상하게 변해버린 계기에 대해 그동안 주의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점이 그녀 스스로를 퍽 당황스럽게 했다.
사실 그들은 오래전부터 겨울 지중해 여행을 계획해 왔었다. 그러나 하필 비행기를 타기로 한 그날 아침에 갑작스레 몰려온 태풍 탓에 공항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됐다. 뉴스와 신문은 기후 이상으로 인한 초유의 태풍이라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겨울에도 따뜻한 지중해에 가보고 싶어’ 버릇처럼 그녀에게 말하곤 했던 그였다.
항공편들의 상황을 알리는 커다란 전광판의 상태 항목에는 모조리 빨갛게 ‘결항’ 두 글자가 박혀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분주히 공항 출구로 향하는 인파 속에서, 남자는 제자리에 서서 스크린의 ‘결항’ 글자가 외국의 글자들로 차츰 변해가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여자도 그런 그를 따라 전광판을 한동안 올려다봤다. 그렇게 둘이 몇 년간 기대해 온 지중해 여행이 간단히 취소되었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 여자는 막 호텔 프런트와 전화를 마친 참이었다.
“다행이야. 예약했던 호텔인데, 천재지변으로 인한 취소는 약간의 수수료만 제하고 예약금을 거의 다 돌려준대.”
할 말을 마치고 여행취소와 관련해 수첩에 메모를 하던 여자는 남자가 자신의 말에 대답이 없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메모를 멈추고 고개를 돌려 옆자리의 남자를 바라보자 그도 그제야 정신이 든 것처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부는 아니지.”
“그래. 전부는 아니지.”
폭우가 쏟아지는 창밖을 바라보는 남자를 따라 여자도 수첩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유리창을 타고 정신없이 흐르는 빗물의 그림자가 두 사람의 얼굴을 거미줄처럼 덮었다.
“미친 날씨죠.”
택시기사의 어색한 위로는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에 금방 휘발되고 말았다.
몇 달이 지난 후, 남자는 여자에게 다시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의 일정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남자는 홀로 한 달 동안 먼 외국, 눈의 고장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가 평소에 가고 싶어 하던 따뜻한 지중해가 아닌 추운 지방에 간다는 점이 여자의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때까지는 그것이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여자는 그가 여행 중에 어디에 묵었는지 궁금해졌다. 둘은 이 사항에 대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고, 어쩌면 남자가 지냈던 장소에 그가 변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침실 옷장에서 아직 풀어 정리하지 못한 남자의 캐리어를 끄집어냈다. 캐리어를 열자, 검은 옷들 사이로 티켓들이 꽂혀있는 여권이 보였다. 숙박 티켓은 비행기 티켓과 함께 반듯하게 접혀있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숙박 티켓에 적힌 주소를 위성 지도 검색창에 입력했다. 그리고 검색 결과로 나타난 지역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반경 수킬로 미터 이내에 인간의 구조물이라고는 눈 덮인 평야 한가운데, 작은 오두막 하나가 전부였다. 여자의 얼굴은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조명으로 창백했다.
여자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남자가 틀어박히던 작은방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절전 상태인 컴퓨터의 팬은 작은 소음을 내고 있었지만, 모니터는 꺼진 채였다. 마우스를 흔들자 모니터가 켜졌다.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문서 프로그램의 하얀 종이였다. 거기에는 한 글자도 적혀있지 않았다. 오직 커서만 무언가를 적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문서의 시작 위치에서 규칙적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모니터를 보던 여자는 자신이 남자가 머물렀던 눈밭의 작은 오두막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벌판에는 얼마 전 지나간 누군가의 족적이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몸을 돌려 벽난로 앞, 안락해 보이는 팔걸이의자에 앉은 여자는 유난히 소란스럽게 타오르는 장작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별안간 온기를 넘어선 어떤 열기가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 여자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때가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기억해보려 했다. 이윽고 취소된 지중해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솟구쳤다.
적당히 따뜻한 바닷물. 수영을 하느라 짠 물에 잔뜩 젖은 머리칼을 넘기고 고개를 들어보면. 그리고 뜨거운 햇볕을 반사하는 바다를 들여다보면 얼어있지 않은,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가 보일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물속에서 무언가를 찾은 듯 신나서 말을 하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아무도 없는 바다, 마찬가지로 텅 빈 해변에는 파라솔 하나와 그 아래 깔린 타월 하나가 전부다. 여자의 표정에는 희미한 웃음만 남는다. 곧, 바닷바람이 불어와 여자의 젖은 머리칼이 얼굴을 뒤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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