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무버'와 '사회부적응자' 사이

"나는 그래도 멋있다 네가 참."

by starka

1.


"...그러니까, 1년만 고생해. 고생하면 내가 자기들 정규직 문제는 위에다 건의해볼 테니까. 알았지?"


말을 마친 국장은 육회비빔밥 한 숟갈을 가득 퍼서 입에 넣었다. 번들거리는 이마와 우적우적 움직이는 아구의 모양이 마치 동물의 그것과도 같아서 역겨움을 느꼈다. 이미 회사에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터라 정규직이고 나발이고 하루라도 빨리 출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정규직이 된다 하더라도 급여는 아마도 2400만 원 선. 사실 편의점 풀타임 알바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작가가 하고 싶다고 말했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겠다고 말하며, 이번 달 까지만 하고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국장은 '그래? 힘들겠네. 뭐 대학원도 가고 그래야 하는 것 아냐?'식의 말들을 툭툭 던지고는 다시 육회비빔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흡사 돼지가-돼지에게는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다- 우적우적 먹는 모습과 오버랩돼 나도 모르게 내 밥그릇으로 얼른 눈을 돌렸다.


국장의 자식도, 나와 비슷한 또래라고 했다. 재수를 하고 아직 군에 있다는데 문득 그 자식이 만약 나와 같은 비정규직이었어도 저렇게 말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으나 곧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럴 리가 없지. XX끼'


애당초 회사에 그렇게까지 큰 미련은 없었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사원증을 반납할 수 있었다. 다만 그동안 정말 친구처럼 잘 챙겨준 선배들이 눈에 밟힐 뿐이었다. 하지만 '밖에 나가서 보면 되지'라는 생각과 함께 슥슥 지워냈다.


2.


생각보다 수중에 모아둔 돈이 꽤 되었다. 하지만 액수가 애매했다. 하루키처럼 가게라도 차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근근한 생활을 몇 달 이어가거나 해외여행을 한 번 다녀올 만한 돈이었다. 원체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계획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외국여행은 무리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부랴부랴 유럽 여행 계획을 짰다.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영국 등을 일정에 넣고 비행기 표를 사려던 참에 IS가 파리 테러를 일으켰다. 애도와 함께 유럽여행은 보류.

하지만 여행 준비도 했겠다 이대로 마무리하는 것은 왠지 찝찝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여 행선지를 미국으로 바꿨다. '아메리칸드림', '천조국', '자유의 나라' 등 여행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가슴이 설레진 않아도, 분명 배울 점이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22일간의 일정을 줄이고 줄여 17일 만에 마치고 서둘러 귀국했다.

밖에 나가서 느낀 것은 '헬(hell)조선'이 아닌 '헤븐(heaven)조선'. 아닌 게 아니라 우리나라뿐 만이 아니라 세계 1위의 초강대국 미국도 언뜻 보기에 살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홈리스도 많고, 빈부격차 역시 한 눈에 보일 정도였다. 거기다 덤으로 깨달은 점은 역시 나는 여행 체질이 아니라는 점. 미국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는 것과 '중요한 것은 인식의 차이', 그리고 '징징거리지 말자'라는 것이었다.


3.


그래도 해외여행이랍시고 다녀왔기 때문에 동네 친구들에게 소소한 기념품이라도 전해줘야 했다. 먹을 것에 돈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여윳돈이 많지 않아 M&M에서 초콜릿 향 립스틱 세트를 샀다.


"어디냐 술이나 한 잔 하자."


마침 금요일이기도 해서 친구 녀석들은 흔쾌히 자주 가는 집 앞 술집으로 나오겠노라 말했다.


"미국 잘 다녀왔냐?"


ㄱ이 웃으며 물었다.


"잘 다녀왔지. 넌 회사 어떠냐?"


"회사야 뭐 꿀이지. 근데 참 신기한 게 하는 일은 없는데 회사라는 것에 묶여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쭉쭉 빠진다."


멋쩍은 듯한 ㄱ의 말에 ㄷ과 나는 의외라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왜냐하면 ㄱ은 이름만 들으면 '우와!' 하고 탄성을 뱉을 기업에 졸업하자마자 취업해, 또래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한 지 1년이 되자마자 비록 소형이지만 독일 3사의 자동차를 뽑아 더더욱 부러움을 샀더랬다.


"너는? 요새 글은 잘 쓰고 있냐?"


ㄱ의 물음에 나는 선뜻 '당연하지! 요새 하루키를 따라 하느라 새벽 5시에 일어나. 그리고 5km 정도 로드웍을 한 다음 바로 글을 써!'라고 해맑게 말했다. 그러자 ㄱ은 '오 역시. 멋있게 산다'고 말해주었다.



4.


한 달. 정확히 한 달이었다. 미국을 다녀온 뒤 한 달간 글을 쓰며 자유를 만끽했다. 하루키는 애플사의 '맥' 마니아였지만 나는 아날로그 한 것이 더 끌려, 입문용 만년필과 원고지를 구입해 꾹꾹 글자를 눌러 담았다. 하지만 원고지가 다 동이 나기도 전에 먼저 바닥을 보인 것은 내 통장 잔고였다.


'어떡하지?'


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또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지만 굶으며 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가난을 벗 삼아 맹물로 배를 채우며 쓰는 고독한 글은 내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었다. 또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나는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고정적인 생활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다 손을 벌리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기에, 통장 잔고가 10만 원 아래로 내려갈 즈음부터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창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보다가 '피시방 알바나 할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대학교 동기가 전화를 걸어왔다. 안부를 묻는 말에 '나 알바 자리가 필요해서 피시방 아르바이트해볼까 해'라고 대답했더니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야, 너는 그 나이 처먹고 무슨 피시방 알바야. 정신 차려. 도서관이나 구청 같은 공공기관 홈페이지 뒤져봐. 거기 채용 종종하니까, 알바라도 좀 그런데서 해. 그래야 뭐 쓸 말이라도 있지 어휴."


동기 말대로 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각 종 채용공고들이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거의 다 마감이 된 상태였고, 딱 하나만이 채용 중이었다. 기한은 다음날까지. '서울시 뉴딜 일자리 사업'이라는 사업의 일환으로 청년들의 취업을 돕기 위한 자리란다. 12월까지 계약직이고, 그동안 업무 경험을 살려 다른 곳으로 취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청년실업이 300만 명이 넘어가고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나라에서-오죽하면 '미생'은 케이블 드라마인데도 불구하고 그 해의 트렌드가 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나랏일을 하시는 분들이 왜 앞장서서 비정규직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당장이 급한 나는 서둘러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며칠 뒤 진행된 면접에서는 지원자가 나 혼자 뿐인 관계로 간단한 질의응답을 치르고는 출근하게 되었다.



5.


또다시 체계에 속해서 일을 하게 되면서 느낀 점은 역시 나라는 놈은 조직생활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 탓에 남들이 보기에는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하는 편이었지만, 속으로는 참 고역스러운 일이었다. 특히나 꼰대들의 말도 안 되는 지적질은 참기 힘들 정도였다. 요즘 시대에 압존법이라니.

하루키처럼 재즈카페를 하면서 글을 쓰는 삶을 꿈꾸다 보니 이러한 틀에 박힌 회사생활이 더더욱 안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만의 가게를 얻기 위해 집에다 돈을 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대출을 받을 수도 없었다. 거기다 세금을 뗀 한 달 월급 117만 원을 받는 10개월짜리 계약직은 암울한 상황을 더욱 자극적이게 만들었다.

결국, 돈을 더 많이 주는 '정규직' 일자리를 찾기로 했다. 3년 동안 돈을 모아서 나만의 가게를 차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생활패턴이 어긋나 버렸다. 온 신경은 기업들의 채용공고에 쏠렸고, 만년필 펜촉의 잉크는 굳어서 미지근한 물에 녹여야 했다. 원고지에 나만의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판매하는 영업용 글을 써야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게 아닌데.'



6.


얼마 전 오랜만에 ㄱ을 만났다. ㄱ은 이제 집 앞에 나오더라도 차를 타고서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며 투덜댔다. 역시나 단골 호프집을 찾은 우리는 오뎅탕 하나와 소주를 시켰다.

티릭- 하는 소리와 함께 말없이 내 잔과 자기 잔을 연달아 채운 ㄱ은 잔을 부딪히는 소리가 났는지도 모르게 술을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ㄴ에게 소개팅을 받았는데 잘 안되었단다.


"내 스타일이었는데. 난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랑은 안 이어지나 봐."


씁쓸한 표정으로 술병을 잡는 ㄱ의 손을 낚아챈 나는 더욱 씁쓸한 마음으로 술을 따라주었다. 항상 우리 셋이 모이면 내가 ㄴ에게 하는 인사말은 '여자친구 잘 지내냐? 친구들 좀 소개하여줘 봐!'였다. 물론 정말로 소개팅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단지 ㄴ이 우리 중에서 여자친구를 가장 많이 사귀었고, 또 혼자 있는 적이 없었기 때문에 농담이자 친근감의 표현으로 던지는 말이었다. 안부 그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닌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ㄱ에게 ㄴ이 소개팅을 시켜주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내 안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오면서 명치가 아렸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눈 앞에서 ㄱ이 푸념하는 것은 들리지도 않았다.


'왜? 내가 백수라서? 계약직이라서? 남들이 알 만한 직장에 다니지 않아서? 독일 3사 차 키가 없어서? 소개하여달라고 매번 이야기한 것은 나인데 도대체 왜?'


소개팅을 못해서가 아니었다. 패기 넘치게 일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니 마니 하면서 다시 또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 내 처지가 역겨워서였다. 거기에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가 '쟤는 별 볼일 없으니 대기업에 다니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ㄱ을 소개해주자. 그러면 나도 체면이 서지'라는 메커니즘으로 ㄱ에게 소개팅을 해줬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사무치게 서글펐다. 군대에서 이등병 때 맨손으로 하수구에 끼인 음식물 찌꺼기를 치우면서 느낀 비참함과는 또 다른 비릿한 감정이었다. '이게 바로 열등감이구나' 싶었다.



7.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ㄱ의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초록병도 어느덧 4개가 되어있었다. 슬슬 혀가 굳어 발음이 새는 것을 느낀 나는 ㄱ에게 귀가를 종용했다.


"그만 가자."


아직도 마음이 풀리지 않아 ㄱ이 술을 산다는 것을 기어코 뜯어말리며 내 카드로 계산했다. 5만 원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혼자서 자존심을 세워보려는 노력이 처량하게 다가왔다. 비틀거리는 ㄱ을 잡고 집으로 가는데 '저쪽 골목에서 담배 한 대만 피고 갈래'라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싫은 담배 냄새를 맡게 됐다.


"요새도 글 잘 쓰고 있냐?"


ㄱ에 입에서 부정확한 발음으로 흘러나오는 말이 나를 또 한 번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럼 인마. 쫌만 기다려라. 형이 사인해서 줄게."


대답을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고개를 숙여 발끝으로 애꿎은 아스팔트 바닥만 툭툭 찼다.


"나는 그래도 네가 멋있다 참."


느닷없는 ㄱ의 말에 '무슨 낯간지러운 말을 하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되물었다.


"뭐가?"


"그냥. 너 하고 싶은 일 밀고 나가는 게. 난 요리가 너무 좋았는데 집에서 바라는 것만 하느라 용기도 못 냈거든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만 알고. 근데 넌 아니잖아. 그래서 멋있고 응원한다. 첫 번째 펭귄."



"새끼, 술 많이 됐네. 근데 내가 왜 펭귄이냐?"


"있어. 내가 최종면 접때 마지막으로 한 말."



8.


다음날 첫 번째 펭귄을 검색해보니 뜻밖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펭귄들은 바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얼음 위로 나오는데, 휴식이 끝난 뒤 다시 바다로 돌아갈 때가 되면 망설인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다라는 공간은 펭귄들의 삶의 터전임과 동시에 바다표범, 범고래, 상어 등 각 종 천적들이 우글거리는 공포의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란다. 모든 펭귄들이 망설이는 그때 용기 있게 먼저 바다로 몸을 던지는 펭귄이 있는데, 이 녀석을 바로 '첫 번째 펭귄'이라고 부른단다. 펭귄들은 첫 번째 펭귄이 뛰어들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 둘 바다로 몸을 던진다. ㄱ의 눈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말했을 때 나를 첫 번째 펭귄 같다고 느꼈나 보다. 정작 나는 방황하고 있는데 말이다.


9.


과연 나는 첫 번째 펭귄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아직은 대답을 자신 있게 대답을 못하겠다. 하지만 나를 멋있게 생각해주는 ㄱ과 같은 사람들, 또 나를 응원해주는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첫 번째 펭귄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다. 다만 지금은 '첫 번째로 뛰어들기는 했는데 아직 바다에 도달하지 않은' 정도로 이야기하고 싶다.


곧 만날 바다를 맞이하기 위해 또 한 번 채찍질이 필요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