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방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먹지도 않고 씻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종일 잠만 잔 것도 아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가만히 누워있다가 간혹 소변이 마려우면 화장실에 갔다.
연예인이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내용이 기사가 되는 세상인데도 선화의 소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김필수의 명함을 꺼냈다. 손바닥보다 작은 이 종이 앞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을까 생각하다 조용히 책상 위에 명함을 올려놨다. 잠깐 움직였을 뿐인데 현기증이 났다. 머리를 맞은 후유증인지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바깥에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시끌시끌 들려왔다. 이따금 들리는 팡-팡 하는소리가 축구를 하는 것 같았다. 창 밖에는 해가 뉘엿뉘엿 저물며 파란 하늘을 발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투명한 물에 빨간 물감을 한 방울 톡 떨어뜨린 것처럼 느리지만 빠르게.
나는 무엇에 홀린 듯 선화의 집으로 발을 옮겼다. 누군가가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상관없었다. 형사든 김필수의 부하든 그런 것은 정말이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차분하게 이 사태를 관찰하고자 하는 의지만이 뚜렷하게 날이 섰다.
선화의 빌라에는 노란 폴리스 라인도, 시끄러운 경찰차 사이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빌라 입구로 들어가 햇빛이 잘 들지 않은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문고리를 돌려보았지만 철컥철컥하는 쇳소리만 들릴 뿐 녹슨 현관문은 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빌라 밖으로 나와 선화의 방이 보이는 창가에 쭈그려 앉아 안을 들여다보았다. 새하얀 벽지가 발린채 텅 비어있는 방이 얼마 전에 이사 간 사람의 집처럼 보였다.
나는 선화와 이야기했던 빌라 앞 벤치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말갛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짐작은 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선화는 그 날을 직후로 이 세상에서 종적을 감춘 것이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선화의 휴대폰을 꺼냈다. 김필수가 가기 전, 앞으로 선화의 물건은 이것밖에 없을 거라며 내게 넘겨준 물건이었다. 나는 배터리를 충전하지 않아 켜지지 않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선화를 생각했다. 선화는 이제 세상에 없는 것일까?
나는 야네우라로 향했다. 그곳에는 선화의 흔적이 분명히 남아있으리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선화를 아끼고 챙기던 호랑이를 닮은 선화의 '아버지'가 마지막 남은 선화의 흔적을 든든히 지키고 있을 것이다. 강남역에서 내린 나는 곧바로 번화가 건너편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초행길을 한 번에 외운 적이 없었지만 걱정되지 않았다. 길을 더듬어 생각하기도 전에 발이 이미 움직였다. 마치 누가 내 몸을 멋대로 움직이는 듯했다.
일본어로 적힌 간판 아래에 선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도 되는 것일까, 갑자기 찾아와서 딸의 죽음을(실제 친 딸은 아니지만) 알려도 되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내가 이 소식을 알릴 자격이 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대답할 새도 없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들어올 건가?"
야네우라 문이 열리고 호랑이 얼굴을 한 사장이 나와 말을 걸었다. 나는 우물쭈물하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바에 걸터앉았다. 사장은 바에 앉은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없이 '주문표'라고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저 혹시 나베 하나 주실 수 있습니까?"
사장은 말없이 등을 돌려 냄비에 물을 끓였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다 바짓가랑이에 손바닥을 슥 훑었다.
"소주도 한 병 주세요."
사장이 냉장고에서 소주 하나를 꺼내 탁 소리 나게 잔과 함께 내려놓았다. 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주 브랜드에서 주는 유리잔이었다. 나는 빈 잔에 소주를 가득 채웠다. 투명한 소주가 찰랑찰랑하게 움직이는 조심스럽게 입가로 가져갔다. 코 끝에서 역한 알코올 향이 맴돌았다. 가져갈 때와는 다르게 망설임 없이 입에 소주를 털어 넣은 나는 곧바로 다시 잔을 채웠다. 사장은 내가 안주도 없이 소주를 들이붓는 것이 불쌍했는지 락교와 단무지 한 접시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락교 하나를 씹었다. 아삭한 식감과 함께 역한 냄새가 가셨다.
소주를 붓고 비우고를 연거푸 다섯 번 정도 반복하자 나베가 나왔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에서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났다. 나는 며칠 째 제대로 된 음식을 넣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 위장에게 심심한 사과의 마음을 가지며 나베를 한 국자 떴다. 뜨끈한 국물이 알코올로 적셔진 식도와 위를 마사지하듯 타고 내려 갔다. 비로소 몸에 뜨끈한 피가 도는 기분이 들었다. 정신없이 나베를 들이켜듯 반 정도 비우고 나서야 정신이 알딸딸해졌다.
"저 사장님."
나는 약간의 용기를 내어 사장을 불렀다. 사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하라고 대답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던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나는 발끈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흩어버렸다. 지금은 나의 개인적인 감정을 내세울 때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 부고를 전달하는 전달자로서 이 자리에 온 것일 뿐,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해야 했다.
"선화가 죽었어요."
고민 끝에 내뱉은 말이었지만 어딘지 싱거웠다. 고작 일곱 글자로 사장에게 선화는 이 세상에서 떠난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내심 선화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내게는 달리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나름의 최선인 것이다.
"어떻게?"
사장이 여전히 뒤 돌아보지 않고 덤덤하게 물었다.
"강도가 들었어요."
나는 강도가 들었다고 말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바지 주머니에서 김필수의 명함이 허벅지를 찌르는 듯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장에게 부연 설명을 했다. 강도가 선화의 집에 침입해 부엌칼로 목을 찔렀다, 그대로 목을 관통당한 선화는 방 안에 피를 흥건히 적신 채 싸늘하게 죽었다. 시체는 다음 날 아침에 이웃이 발견해서 신고했다, 경찰은 범인을 쫓고 있지만 아직 소식은 없다. 장례식장은 아직 모르겠다 등등.
잠자코 내 말을 듣고 있던 사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보고가 끝난 부하직원처럼 가만히 앉아 사장의 말을 기다렸다. 사장은 주방 뒤편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나왔다.
"나는 그 애가 세상을 떠날 줄 알았어."
사장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지 그때가 언제인지는 몰랐지만 나보다 먼저 갈 줄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정상이 아니었다구요?"
"그래. 굉장히 불안하고 초조한 기운이 온몸에 서려있었지. 지금 당장에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 사실 그래서 신경이 참 많이 쓰였어. 그렇다고 해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지 딱히."
사장이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안에는 선화가 자랑했던 돌고래 문양이 그려진 접시와 포카락이 들어있었다.
"내 나름의 방식이었어. 너는 혼자가 아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런 신호였지. 그렇지만 결국 일어서야 하는 것은 제 힘으로 해야 해. 어쨌든 나도 결국에는 타인이니까 말이야."
"선화는 사장님을 아버지라고 생각했어요."
"허 참. 내가 술집을 20년을 했어. 그렇게 치면 내 딸과 내 아들은 손가락 발가락을 다 합쳐도 안돼."
사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치만 선화는 사장님께서도 따님이 계셨다고..."
나는 아차 싶어서 말끝을 흐렸다. 아무리 오래되었다고 해도 남의 아픈 가정사를 들먹이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내가 눈치를 살피자 사장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있었지. 분명히. 그렇다고 해서 내 딸이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는 일은 없네. 세상에는 아무리 우기고 원해도 바뀔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야."
나는 사장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결국 선화는 손님일 뿐이었다. 조금 더 쳐준대야 단골손님 정도. 나는 반 정도도 남아있는 소주병을 들었다 다시 내려놨다. 빈 속에 소주가 먼저 들어간 탓인지 속이 쓰렸다. 나는 괜히 숟가락을 매만지다 그것마저도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만 가보겠다고 말했다. 사장은 말없이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봉지를 받았다.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가 허탈했다.
가게문을 열며 뒤를 돌아보자 사장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하늘은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조금 전에 올라왔던 언덕이 낯설게 느껴지며 어디로 발길을 정해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나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과 함께 내키는 대로 첫발을 내디뎠다. 희미한 가로등을 따라 돌고 돌다 보면 결국엔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곳이 어딘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