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으리라는 오만은 품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유한한 삶과 시공간의 제약에서 오는 애로사항을 인정하는 것이지, 그 두 가지가 해결된다면 굳이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붙일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것이 내 입장이다.
게다가 인간이라는 동물 특유의 꺾이지 않는 정신, 도전 욕구, 하면 된다 같은 특성을 보면 나는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알게 될, 그런 날이 오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지금 나의 상황은 언젠가, 또 누군가가 어떻게 된 일인지 과연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슨 헛소리냐고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 나는 횡설수설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듣고, 당신이 내가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장담컨대 열의 둘은 나처럼 장황한 헛소리를 늘어놓을 것이고 둘은 자리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할 것이다. 그리고 남은 네 명은 현실을 부정하겠지.
안타까운 사실은 지금 내 앞에 벌어진 일은 외면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라는 점이다. 눈 앞의 '사람', 그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라고 불리던 것이 안에 있던 것들을 다 뿜어내고 벽에 기대 있는 것과 내 손에는 손바닥 길이의 과도가 들려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도에는 '사람'이었던 것에서 나온 것이 분명한 액체가 묻어있다는 것과 과도의 크기가 꼭 맞는 구멍이 '사람'이었던 것의 목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가만, 그런데 사람이 겨우 요만한 것으로 죽을 수 있는 것인가?
못해도 50kg은 될 법한 사람이 이까짓 날붙이에 죽을 수 있다니...
그러고 보니 주변이 낯설다.
핑크색 벽지와, 벽 가까이에 붙은 침대 위에 놓인 곰인형을 보니 분명히 내 방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보니 곳곳에 놓인 조그마한 액자들이 집주인에 대한 힌트처럼 놓여 있었다. 왠지 모르게 침침한 눈을 비비며 액자로 걸어가려는데 발 밑에 무언가가 걸렸다.
'실크 잠옷인가?'
허리를 숙여 바닥에 놓인 것을 집어 드려다 현기증이 온 나는 실크 잠옷처럼 보이는 그것을 내버려 두기로 했다. 아마도 실크 잠옷이 맞을 것이다. 여긴 누가 봐도 여자가 사는 방이 분명하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 위화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분명히 여자의 방인데 어울리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는 느낌...
나는 생각을 깊이 할수록 머리가 아파옴을 느끼자 머리를 휘저으며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눈도 잘 보이지 않았고, 속도 메스꺼웠다.
'물... 물을 좀 마셔야겠어.'
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손으로 짚은 채 냉장고를 찾았다. 방문 옆에 허리 정도 높이의 냉장고가 보였다. 다가가서 냉장고 문을 잡고 열었는데 문에 붙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최선화?'
흐릿했던 시야가 잠시 밝아졌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는 최선화가 분명했다.
'뭐지?'
최선화의 사진이 왜 여기에 있는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일단 물부터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냉장고 문을 마저 당긴 나는 줄을 세워 가지런히 놓여있는 물과 음료수들이 보였다.
"난 뭐든 딱 맞는 게 좋더라. 줄 세워서 딱딱. 그게 아니면 맘이 불편해."
"무슨 군대도 안 갔다 왔으면서 각 타령이야?"
머릿속으로 기억의 편린들이 지나갔다. 나는 설마 하는 생각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윽 소리 나게 아팠지만 마냥 고통을 느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목에서 피를 흘리고 있던 '그것'의 정체는 최선화가 맞았다. 순간 시야가 깨끗해지며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나는 냉장고 문을 놓으며 '으악'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바닥에서 과도가 떨어져 나가며 바닥에 '탱그렁!' 하는 소리와 함께 두세 번 몸을 튕겼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선화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