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란한 여자

보드카 마티니요.

by starka


12.


"안녕하세요?"


뜻밖에도 사장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 쪽은 사라였다. 언뜻 보기엔 친절해 보였지만 내 눈에는 '저는 손님인데 혹시 사장님이세요?'라는 따짐으로 보였다. 몇 번 본 게 전부지만 사장의 성격 역시 평범한 느낌은 아니었기에 중간에 끼인 나는 살짝 긴장했다.


사장은 다시 고개를 들어 나와 사라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짧게 '네' 하며 고개를 숙였다. 인사 후에도 사라가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사장은 '여기로'라는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바 테이블을 가리켰다.


"여기요?"


나는 바 테이블을 권하는 사장의 손짓에 의문이 들었다. 가게에 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장은 마저 닦던 유리컵을 진열대에 올려놓고는 '바 테이블이 원래 상석이에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괜한 면박을 당한 기분에 얼굴이 바짝 달아올랐다. 술을 마셔서인지 피가 더 세차게 도는 느낌이었다.


"왜? 난 바 테이블 좋아하는데."


"그래?"


"응, 바텐더와 가깝고 좋잖아."


"아니 나는 너무 가까운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 마. 바텐더는 입이 무거우니까."


사라의 말을 들은 사장이 우리를 슬쩍 쳐다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봤지? 그러니까 이렇게 조용히 이야기할 필요 없어."


양 손을 동그랗게 만채 큰 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던 사장도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 웃으며 메뉴판을 건네줬다.


"나는 갓파더 먹을래."


내가 손가락으로 메뉴판에 맨 위에 적힌 이름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녀는 '그게 뭐냐'라고 되물었다.


"응? 칵테일이지 뭐. 저번에 마셔봤는데 맛있더라고."


"그러니까 무슨 칵테일인데? 칵테일은 그런 것 있잖아 유래라든지 만들어진 배경 같은 것."


"아, '대부'에서 비토 꼴레오네가 마시던 술이라는 얘기가 있어."


"그래서 갓파더구나? 재밌네."


"뭐가?"


"그냥 이런 유래들 보면 신기하잖아. 또 네가 고른 게 하필 갓파더인 것도 재밌고."


"응? 갓파더가 왜?"


"어울려서. 보수적인 순정파인 네가 좋아할 만하다."


'보수적인 순정파' 대목에서 킥킥 웃은 그녀는 내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은 채 바텐더를 불렀다.


"갓파더 한 잔, 보드카 마티니 한 잔 주세요."


그러자 사장님은 의도적으로 '보드카 마티니?'라고 혀를 굴려 발음했고, 사라는 'shaken, not stirred'라고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게 뭐야?"


어리둥절한 내가 묻자, 사라는 깔깔대고 웃으며 '보드카 마티니'라고 말했다.


"본드걸인 줄 알았는데, 본드 본인이었군요."


중저음에 웃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사장님이 말을 건넸다. 나는 사장님이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몇 번 오지는 않았지만) 내심 놀랐다.


"대부를 잡으려면 007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요?"


사라의 대답에 사장님은 껄껄 웃으며 '매력까지 카피하면 큰일인데'라고 말했다.


"무슨 이야기야?"


나는 알 수 없는 소외감에 답답하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해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자 사라는 웃으며 작게 '역시'라고 했다.


"뭐가 역시야?"


"역시 갓파더와 잘 어울린다고."


그녀는 여전히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선문답 같은 대화에 짜증이 치민 나는 애꿎은 물만 들이켰다.


잠시 뒤, 칵테일을 들고 온 사장님은 분위기를 살피더니 '이런 악당을 잔뜩 화나게 했는걸?'이라는 말을 남기고는 주방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