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이대로 행복한 것일까?
아침 7시.
요란한 음악소리가 머리맡에서 울린다.
화면을 터치해 알람을 끄고는 졸린 눈을 부빈다.
이불을 대충 개키고, 스마트폰을 집은 채 화장실로 간다.
좋아하는 노래를 재생시키고 샤워를 시작한다.
-어느 B 씨의 일일
"스마트폰의 시대다."라고 선언한다면 모두가 '왜 뒷북이야?'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짜 스마트폰의 시대는 이제부터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증거로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매스컴에서 찾아보기 힘든 단어가 되었다. 한창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키워드로 위기와 공포를 조장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뜨겁게 받은 후 산화한 느낌이랄까.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폰 중독'을 위험이라고 인식하지 않고 농담 정도로 취급한다.
과연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말을 농담 정도로 치부할 수 있을까. 나 역시 하루의 시작과 끝을 스마트폰과 함께한다. 알람, 전화, 인터넷, 문자메시지, SNS, 게임 등 손바닥만 하거나 그 보다 조금 큰 기계 하나로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 스마트폰 하나면 불가능한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스티브 잡스가 '전화', '인터넷', '아이팟'을 돌려가며 '아유 게링 잇?'이라고 물을 때,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하루 종일 네모난 화면만 바라볼 줄 예측했을까?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들을 보게 된다(너무 협소한 공간에 떠밀리듯 타니 볼 수밖에 없다). 그중 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주일에 책 읽는 사람 한 명을 볼까 말까 할 정도다. 물론 지옥철이라 책을 읽을만한 환경이 아니긴 하지만 서도 책이 없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의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보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자그마한 네모 화면으로 만화, 소설, 영화, TV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을 돌아볼 수 있으니 빼곡히 적혀있는 활자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있나.
직장인 친구들을 만나면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사는 얘기를 하는 것도 옛말이다. 요즘은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서로 스마트폰을 본다. 서로가 '헤비 유튜버'라며 낄낄대고,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 유튜브에서 본 영상들에 대한 대화를 한다. 5분 이야기하다 10분 스마트폰, 5분 이야기하다 10분 스마트폰, 간간히 지인들에게서 온 카카오톡에 대한 답장. 이 사이클이 3~4번 돌다 보면 이야기가 지루하여져 다음을 약속하고는 금방 자리를 뜬다. 그리고는 집에 가는 길 내내 또다시 스마트폰 삼매경이다.
중독이라는 것이 무서운 이유가 알면서도 끊지 못한다는 점인데, 스마트폰 중독이 담배나 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중독이라는 사실을 스스로가 인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스마트폰 중독인지 아닌지 모른다.
"휴대폰 너무 많이 하는 것 아니야?"라고 물어보는 사람도 많지 않을뿐더러 설령 물어본다고 해도 대개는 "아냐 나 평소에는 별로 안 해"나 "잠깐 친구한테 연락이 와서"나 "잘 모르겠는데?" 정도의 대답만 할 뿐이다.
나 역시 스마트폰 중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두통이 극심해서 왜 그런지에 대한 이유를 찾다가 눈 앞에 스마트폰을 보고는 '이거다' 싶어 복기해보니 그 날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왜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두통이 올 때까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까?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어떤 메커니즘을 발견했다.
1. 현재 상황 도피
'현재(present)는 선물이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분은 가라앉기 마련이다. 현재가 즐거워야 하는데 요즘 현대인들은 즐거움은커녕 고통스럽지 않으면 다행인 현재를 살아내고 있다. 규제를 해도 솟구치는 집 값, 오르지 않는 월급. 게다가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다.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현재)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할까? 사람들이 선택한 방법은 '반품'이다. 눈 앞에 보이는 현재를 무시하고 스마트폰 안의 행복한 세상으로의 도피를 택한 것이다.
스마트폰 안에는 즐거운 이야기뿐이다. 커뮤니티, SNS, 재밌는 영상, 세계 각 지의 신기한 소식들 등등, 현재 나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진통제인 것이다.
2. 자극적인 쾌락 추구
하지만 진통제라고 계속 쓰다 보면 내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간단한 친구들의 안부를 확인하고자 가입한 SNS에 어느새 셀럽들과 연예인들이 친구로 추가되어있다. 한 편 두 편 재미로 본 웹툰들도 어느새 지겨워져 커뮤니티의 새글 업데이트만 주야장천 누르며, 틈만 나면 유튜브에 접속해 동영상을 보며 친구들에게 '나 헤비 유튜버야!'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점점 자극적인 정보와 자료들을 찾으면서도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주제의 시작과 끝이 스마트폰에서 나옴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한다. 그렇게 점점 현실과 스마트폰 안의 세상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3. 수동적인 뇌로 바뀜
정보를 사고를 거치지 않고 수용하기만 한다면 우리 뇌는 점점 생각하기를 싫어하게 되는 것 같다. 뇌 과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아도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문제다. 사람들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검색한다. 그리고 10초도 안되어 발견한 가공된 정보를 그대로 수용한다. 그 과정은 마치 씹어서 삼키고 소화시키는 과정을 생략한 채 포도당 주사를 몸에 직접 꽂아 영양을 공급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내성이 생겨 자극적인 정보에만 재미를 느끼게 된 뇌와 사고를 포기하게 된 수동적인 뇌가 합쳐져 사람들은 누군가 자극적인 무언가를 제공해주기를 바란다. 아마 그래서 자극적인 방송을 하던 초기 아프리카 TV나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많은 구독자를 확보했는지도 모르겠다.
4. 반복
스마트폰 중독의 가장 큰 원인은 '피하고 싶은 현실'이겠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스마트폰이 너무도 강력하게 사람의 욕구를 채워준다는 사실에 있다. 스마트폰처럼 강력하게 쾌락의 욕구를 채워주는 물건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피하고 싶은 현실'을 타파할 만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지 않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인해 지구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의견을 공유하며 해결책을 강구할만한 환경이 되었지만, 우리는 너무도 쉽게 스마트폰의 마약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스마트폰을 쓰지 말자고 쓴 글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스마트폰의 위험성에 대해 너무도 간과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4차 산업으로 가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시대에서 스마트폰을 등지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 마사이 부족도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들이 키우는 가축을 위협하는 사자와 같은 동물의 위치를 공유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지금은 그런 세상이다.
스마트폰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우리 삶의 깊숙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것을 떼어내는 것은 사회에서 스스로 고립되는 길을 택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스마트폰을 버리라고는 하지 못하겠다. 우리 삶을 병들게 하고 있고 실컷 말해놓고 버리라고 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다만 하루의 한두 시간이라도 스마트폰에서 멀어져 자신을 관조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어떨까 조심스럽게 제언할 뿐이다. 힘들고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스마트폰이 없는 한 시간이란 지난하게 길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점은 분명히 안다.
하지만 24시간 중 스스로를 돌아볼 1시간도 내지 못한다면, 우리 삶의 의미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되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