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이 없어진 현대를 사는 우리들
*스포일러 주의
'블랙 팬서' 말고는 도저히 볼 영화가 없느냐는 나의 불평을 들었는지, 마법 같이 지인의 인스타그램에 '리틀 포레스트'에 관한 피드가 올라왔다. 말은 안 했지만 코드가 비슷한 분이기 때문에 주저 없이 리틀 포레스트를 보러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리틀 포레스트'는 한국 영화가 아니라 일본 영화고, 잔잔하고도 고요한 분위기가 명상을 하듯 머리를 맑게 해주지만 큰 교훈은 없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삶의 고민을 한순간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힐링'을 경험했으므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리틀 포레스트'는 작은 영화다. 혜원(주인공), 혜원 엄마, 제하, 은숙, 큰고모가 전부인 영화는 의도적으로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 '리틀 포레스트'는 혜원이 주변 인물과의 대화 혹은 관찰을 통해 자아 성찰을 이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주된 관심사 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기서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보다는 인물 위주로 나름의 분석을 해보려는 이유다.
'리틀 포레스트'라는 제목답게 영화의 배경은 시골이다. 혜원의 엄마는 혜원 아빠의 투병생활로 인해 고향으로 내려왔다가 아빠가 죽자 혜원과 함께 그대로 눌러앉았다. 혜원과 함께 살면서 혜원 엄마는 자연의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이며 혜원과 함께 즐거운 추억을 쌓는다. 하지만 혜원의 엄마는 혜원이 수능을 끝나고 며칠이 되지 않아서 가출을 한다. 혜원의 엄마가 남기고 간 편지에는 '인생은 타이밍'이고 지금이 그 때라는 알 수 없는 말이 적혀 있다. 당연히 혜원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혜원 엄마는 혜원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식을 통해 여러 가지를 가르친다. 영화에서는 마치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것처럼, 곧 떠날 사람이 남기는 유언처럼, 레시피 하나하나에 엄마의 가르침을 표현했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혜원 엄마는 어쩌면 처음부터 혜원이 20살이 되면 떠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영화 말미에 혜원은 '아빠를 잃은 엄마에게 나와 자연이 리틀 포레스트였다'라고 회상하지만, 혜원 엄마의 리틀 포레스트는 혜원이 아닌 자연과 음식이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이 죽고, 남은 것은 시골집 한 채와 어린 딸아이. 혜원 엄마는 얼마나 막막했을까. 닭가슴살처럼 퍽퍽한 삶에 위로를 주는 것은 자연과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메뉴가 산채 비빔밥이나 된장찌개가 아닌 '오코노미야키'와 '크렘 브륄레'를 보면 혜원 엄마의 탈출 욕구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시골을 탈출하기에는 어린 딸 혜원이 있다. '연애는 너희 아빠와 하도 해서 그런지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 엄마였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열망은 누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되면 살아갈 수 있도록 레시피와 함께 인생의 가르침을 전수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생존하는데 가장 중요한 '식'을 전수했다는 것이 약간은 의미심장하다. 마치 사자가 새끼한테 사냥을 가르치듯, 혜원 엄마는 혜원에게 레시피를 가르쳤다.
재하는 회사를 다니다 귀농했다. 아버지의 농사를 도우면서 과수원을 시작했다. 혜원의 '재하는 답을 찾아 돌아왔다'는 말처럼 재하는 회사원 생활을 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 고향으로 내려왔다. 재하에게 있어 고향이란 혜원처럼 도피처가 아닌 다시 시작하는 반환점이다. 극 중 재하의 모습은 직장을 다니는 모든 이들의 로망이다. 괴롭히는 상사, 매일 반복적인 업무, 이것저것 떼고 나면 얼마 되지 않은 월급,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혹은 내 자식 돈 걱정 없이 잘 키울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을 않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있어 한번쯤 아니, 매일 같이 상상하는 모습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함치는 상사를 앞에 두고 짐을 챙겨 퇴사를 한 재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향땅에 내려와 과수원을 열었다. 비로소 온전한 '나의 것'을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택하지 않는 '농부'라는 직업을 선택한 재하는 '멋진 직업'을 가진 것 같다고 말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에게 '일하기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친구의 대답이 '돈, 일, 사람 중 하나만 맞아도 좋은 직장이라더라. 돈 많이 주니까 다니는 거지.'였다. 글쎄. 사람이 돈으로만 살 수 있을까?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돈만 있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돈을 많이 주는 회사에 다녀도 결국 회사는 회사,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다.
재하의 과수원은 온전히 재하의 것이다. 잘 익은 한 알의 사과를 얻기 위해 거름을 주고 병충해를 예방하고 가지를 치는 등 궂은일을 다 해야 한다. 하지만 괜찮다. '내 것'이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서서 할 수 있다. 기분 좋게 일을 할 수 있다. 태풍에 큰 피해를 입었을 때도 아침 일찍 일어나 피해를 수습하고 주변 정리를 한다. '금방 재벌 되겠어'라는 혜원의 말이 '어쩌냐'로 바뀌어도 재하는 웃으며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한다. 그 모습에서 '내 것'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 그리고 믿음을 엿볼 수 있다.
재하는 태풍 속에서도 살아남은 잘 익은 사과 한 알을 혜원에게 건넨다. 물론 혜원을 좋아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빨간 사과 한 알에는 자신의 길을 먼저 찾은 선배가 후배에게 주는 소소한 위로와 응원이 더 크지 않을까.
은숙은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다. 시골 토박이가 서울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것과 직장 상사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모습 그리고 친구에게 그에 대한 푸념을 하며 위로를 받고자 하는 모습에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0대를 읽을 수 있다. 영화에서 보편적인 인물상을 보여주는 은숙이지만 그녀가 가져다주는 두 가지 사건은 혜원을 달라지게 하는 계기가 된다.
첫 번째는 뒷담화 사건이다. 은숙은 일명 '탬버린 부장'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잦은 회식 요구에 노래방에서는 성추행에 가까운 행동까지 탬버린 부장은 은숙에게 있어서 가장 큰 스트레스다. 은숙은 탬버린 부장에 대한 스트레스를 혜원과의 뒷담화를 통해 풀려고 하지만 혜원은 은숙의 푸념에 '스트레스받으면 그만두면 되지'라는 대답을 해버린다. 이에 은숙은 '남의 일이라고! 그놈의 자존심, 친구면 그냥 들어주고 위로해주면 되는 거 아냐?'라고 화를 낸다.
은숙으로써는 당연하다. 매일 짜증 나는 상사의 얼굴을 보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우리는 알고 있다. 더러워도 돈은 벌어야 했고 돈을 모아야 상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풀고자 친구에게 푸념을 했던 것인데 돌아오는 대답이 '힘들면 그만두라'니. 하지만 혜원 역시 솔직한 대답을 했을 뿐이다. 힘들기에 시험을 관두고 고향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에 맞춰 말한 것뿐이다.
두 번째는 탬버린 부장의 머리를 탬버린으로 내려친 사건이다. 탬버린 부장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다를 때 즈음 은숙은 노래방 회식 때 부장의 머리를 탬버린으로 내려쳤다. 다행히도 부장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났고 은숙은 평화로운 회사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를 두고 혜원은 '너무 속으로만 참지 않고 뱉을 것은 뱉어야 한다'며 자신은 그러지 못하지만 은숙은 참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가장 평범한 은숙은 평범한 사건들을 통해 혜원이 자신을 반추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혜원은 일단 도시에서의 삶을 모두 정리하고 고향집으로 내려왔다.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고향에서 지낸 1년이라는 생활이 밑바탕이 됐다. 가장 힘들었던 겨울에 모든 것을 포기한 혜원이 선택한 곳은 고향집이었다. 엄마와 함께 지낸 19년의 시간들이 인생에서 가장 따듯한 기억이기 때문에 고향집을 택했다고 본다. 혹독한 삶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영화 속 혜원을 보며 드는 생각은 '모순'이다.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엄마의 레시피를 이용해 삶을 연명하고 사람과 유대하며 미안한 일에 사과를 고마운 일에 감사를 전한다. 이런 모습에서 급작스럽게 가출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영화는 혜원이 엄마의 레시피를 사용해 요리하는 것에서 일말의 개연성을 제공해주지는 않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혜원이 행하는 모든 것이 엄마의 유산이기 때문이다.(물려주었다, 남겨놓았다는 의미에서 유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엄마가 혜원의 속마음을 몰라주고 매몰차게 말을 했을 때 만들어준 크렘브륄레를 은숙에게 전달하는 장면이나 곶감을 먹으며 달다고 말하는 장면은 혜원이 점차 엄마를 이해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혜원이 엄마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느낀 부분은 친구들에게 쪽지를 남기고 훌쩍 서울로 떠나는 장면에서다. 아무 말 없이 편지만 남긴 채 떠난 엄마를 그렇게도 원망했던 혜원이 이제는 엄마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새삼 큰고모가 '네 엄마와 똑같다'라고 말한 것이 통찰력이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재하는 말없이 떠난 혜원을 불평하는 은숙에게 혜원이 금방 돌아올 것 같다며 양파의 아주심기를 언급한다. 다른 곳에서 재배한 모종을 더 이상 옮겨 심지 않는 곳으로 심는 것을 아주심기라고 하는데, 양파는 아주심기를 한 상태에서 추운 겨울을 난다.
재하는 혜원의 서울행을 아주심기를 준비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영화의 말미에서 혜원이 시골집으로 돌아왔지만 그것이 도시에서의 생활을 전부 청산하고 전원의 삶으로의 아주심기를 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1년 간의 전원생활로 그토록 답답해하던 시골의 삶을 선택했다고 보기보다는 오히려 도시에서의 치열함을 이기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고 본다.
혜원이 단순히 고향집으로 돌아온 것을 아주심기라고 보는 것보다는 사회에서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고 끈질기게 버틸 수 있는, 추운 겨울을 온전히 지내고 달디단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도시에서의 아주심기'를 준비하는 모습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매달아 놓은 감을 계속 주물러야 겨울이 되어 아주 단 곶감이 되는 것처럼, 혜원이 선택한 길은 포기와 내려놓음이 아닌 도전을 위한 충전 내지는 잠시 쉬어감이 옳다고 본다.
혜원이 엄마에게 답장으로 쓴 편지에는 혜원만의 감자 빵 레시피가 담겨있다. '엄마의 감자 빵은 감자가 보이지 않아서 섭섭하다'며 감자를 씹히게 만든 혜원의 레시피는 패배에 대한 승복보다는 과거를 딛고 일어서는 도전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영화에 대해 묻는 친구에게 '일본색이 짙다'라고 말했다. 독백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점이나 음식만 한 장면에 크게 담아 보여주는 방식 등 일본 영화를 떠오르게 하는 것들이 곳곳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원작을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라기보다는 번역한 것에 가까웠다는 것이 좀 더 맞는 표현 같다. 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현실에 대한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두고 싶다. 혜원이 스스로 요리를 해서 식사를 하는 장면들이 하나의 위안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점점 우리는 요리에 대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하루 살기 바쁜 직장인이나 자취생들에게 손수 해 먹는 요리는 귀찮고 시간이 아까우며 사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이 해주는 요리는 점점 제 값을 받고 있다. 정성스레 만든 슬로푸드나 가정식 요리들이 비싸게 팔리는 것을 보면 손수 요리하는 것에 대한 값어치를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우리 집 역시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 해 먹던 수제비가 몇 년 전부터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밀가루 반죽을 집안 남자들이 떡-떡 주물러서 할머니와 엄마를 드리면 대충 툭툭 잘라 진한 멸치육수에 팔팔 끓여 먹던 것이 어느 새인가 사치와 노동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각박하고 힘들어졌다는 방증이 아닐까.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의, 식, 주 중 '식'을 차디찬 편의점 도시락으로 연명하는 혜원이 '배고파서' 고향을 찾았다는 말은 단순한 농담으로 치부하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살기에 녹록지 않다.
청년실업, 고령화, 부동산 등등 우리 사회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사람들에게 손수 따듯한 밥상을 차릴 수 있게 해주는 여유를 마련해주는 것 아닐까.
오늘따라 수제비가 먹고 싶어 지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