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마시러 간 카페에서.
느즈막히 일어난 아침 지긋지긋한 추위가 가시고 간만에 봄 날씨다. 달력을 보니 3월 6일, 밑에 작은 글씨로 적힌 경칩이 눈에 들어온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깰 정도로 따뜻하다는 날씨니 오랫동안 미뤄온 달리기를 해볼 생각에 밖으로 나왔다.
간만에 안양천을 따라 달리기를 하니 숨이 턱턱 막히고 다리가 아팠다. 하지만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 느끼는 불편한 호흡이 아닌 내 몸이 봄을 맞아 깨어나는 신호로 느껴져 오히려 개운했다.
몸을 움직이니 피가 돌았기 때문인가, 괜시리 기분이 좋아 미뤄놨던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켜고 작업을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직접 내린 더치 커피에 얼음을 동동 띄워 마시니 타지에 홀로 여행을 와서 호텔에 있는 기분이었다.
오후 두시까지 작업 반 놀기 반을 하다가 커피나 한 잔 더 마시고 출근을 하기 위해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더치 커피는 카페인이 부족해 커피를 더욱 부르는 법이다.
지하철 역 옆 스타벅스에서 통신사 맴버쉽으로 무료 커피를 마시니 또 기분이 좋았다. 문고리 잡는 순간부터 돈이 나가는 요즘, 돈을 아꼈다는 것이 소소한 기쁨인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요즘 흥미롭게 읽고 있는 안도 다다오의 책을 펼쳤을 때 앞에서 입을 웅얼웅얼하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노래를 따라 부르나 싶어서 봤더니 귀에 이어폰을 끼지 않았다. 유심히 관찰하니 영어 스피킹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나이도 내 또래인 것을 보니 아마 취업 준비를 위한 듯 했다.
여자를 관찰하며 신기해 하는 차에 옆자리에 또 다른 인물들이 내 귀를 간지럽혔다.
"...그래서 교회를 다닌다길래 바로 찼지. 교회 다니는 남자 너무 싫어."
여자는 전 남자친구가 교회를 다니길래 이별을 통보했다고 마주 앉은 여자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지금 만나는 오빠가 자기가 교회 다니면 헤어질거냐고 묻는거야,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바로 헤어진다고 했지. 그러더니 나보고 자기를 진짜 사랑하지 않는구나 이러는 거 있지? 기가 막혀서. 글서 내가 그랬지 내가 오빠를 만나는 이유는 오빠가 내가 생각하는 남자친구의 여러가지 조건에 부합해서 만나는거라고. 그 조건중에 하나라도 안 맞으면 만날 이유가 없다고."
여자는 강렬하게 자신의 남자친구와 했던 이야기를 말하고 있었다. 마치 무용담을 전하듯이. 그러더니 '조건'이라는 단어가 민망했는지
'그렇다고 무슨 내가 많은걸 따지나? 그러면 내가 남자를 못만나지.' 라고 덧붙였다. 앞에 앉은 여자는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며 수긍하는 표시를 했다.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보니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취업준비생과 옆자리 여자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책은 3쪽을 다 못 읽었다. 서둘러 가방을 챙겨 일어나는 순간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생각.
'참 바쁘게도 사는구나 다들.'
(사진은 전단지를 돌리던 중 아파트 조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