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싶은 것을 주는게 최선일까?
엄마가 면세점에 같이 좀 가자고 했다. 일본에 사는 이모를 보러 일본 여행을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 없어 선물을 골라야 한다는 이유였다. 마침 일을 쉬는 날이기도 하고 이모 내외의 선물을 고르는데 함께하고 싶어서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샤워를 마치고 아침밥을 먹은 뒤 옷을 챙겨 입는데 엄마가 갑자기 이모에게 전화를 한단다. 왜그러는지 이유를 물어보니 무엇을 사다줄지 물어본다는 것이었다.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않고 선물을 당사자에게 물어서 사가는게 무슨 선물이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그러자 돌아오는 엄마의 대답이 필요한 것을 사다주면 서로 좋은게 아니냐는 것이다. 덧붙여 선물로 줬는데 쓸모없는 물건이면 오히려 짐만 된다고도 했다.
엄마의 지극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반박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이후 연결된 이모와의 통화에서 이모는 따로 필요한 것을 말해주었고, 그것은 굳이 면세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물건이기에 면세점행은 그렇게 무산되었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오전 일정이 날아갔다. 원래 약속이나 일정에 대한 미련이 있는 편이 아니라 별 상관은 없었지만 아침부터 부랴부랴 준비한 것이 괜히 헛헛해져서 커피나 마실 요량으로 바깥으로 나갔다.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선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준 나의 선물은 머리를 쥐어짜낸 결과물이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기본적인 고려 사항이었고, 필요한 것이나 좋아하는 것이 애매할 경우 어울리는 것을 찾았다. 그리고는 선물을 건네며 '어울릴 것 같아서 골랐다'는 말을 생색처럼 꼭 함께주곤 했다.
내게 있어서 선물을 고른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좋은 추억과 기분, 사랑 같은 것을 담는 행위다. 그래서인지 남들이 주는 선물 중에도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선물에 더 애착이 간다. 그런 선물은 내게 전혀 필요없는 물건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쓰고야 만다. 반면 의례 받는 선물은 어디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신경하다. 물론 선물이라는 것이 받을 때의 고마운 마음은 다 똑같지만 애착은 다른 이야기다. 나를 생각해서 골라준 선물이 주는 여운은 평생동안 잔잔하고도 깊다.
우리 가족들의 생일은 공교롭게도 년초에 몰려있다. 2018년이 된지 한달이 채 안되었지만 나는 그들의 생일 선물을 위해 지금도 고민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가족들은 나 빼고는 다들 실리주의인지라 원하는 선물을 해주거나 받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꿋꿋이 나의 고민과 애정을 담아 찬찬히 선물을 고른다. 언젠가 그들에게도 잔잔하고도 깊은 여운이 남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