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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껌딱지 Jan 22. 2024

엄마가 된 후 6 - 아기가 너무 어려

어린이집 가기 좋은 나이가 있을까?

약간의 우여곡절을 겪은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했다. 임신하면서 포기해야 했던 기업들의 1년 치 채용공고 안을 살펴보고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그 이후엔 가장 중요하면서도 하기 어려운 ‘우리 아기 어린이집 입학 사실 양가에 알리기’를 진행해야 했다.      


양가에 아기와 관련된 소식을 전할 때면 늘 긴장의 연속이다. 무엇이든지 ‘내 잘못’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 친정엄마는 항상 딸이 우선이라고 하던데, 우리 집은 귀하디귀한 손자라 그런지 나보다는 늘 아기 입장을 우선시했다. 아기가 입원했을 때도 ‘쎈찮은(별로인) 엄마 만나서 아기가 고생하네’가 가장 첫마디였으니 말이다. 시댁도 말씀은 늘 내가 우선이라 하지만 ‘왜 아픈데, 그러게 왜 그렇게 돌아다녀, 그 작은 아기가 얼마나 불쌍해 아휴 참’이라고 질책했다.     


단 한 번도 위로받은 적도, 격려를 받은 적도 없기에 이번 말이 어떤 반응으로 되돌아올지 사실 너무 무서웠다. 웃으며 통화를 마무리해야 내 감정이 아이에게 전달되지 않을 텐데…. 심장이 두근거렸다.

제일 처음 친정에 전화했다. ‘엄마. 00일부터 아기가 어린이집 다닐 거야. 앞으로 오전에 전화하긴 어려울 거 같아.’라고 말씀드리니 ‘벌써? 그럼 니는 뭐하게?’ 라고 하셨다. 나의 계획을 설명하고 가볍게 통화가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너무 어리다…. 아기가 불쌍해서 우짜노... 고마 쉬는 김에 둘째나 낳지’라며 혀를 찼지만 나는‘뭐가 불쌍해, 괜찮아 열심히 벌어서 좋은 거 많이 해주면 되지!’ 대답하며 통화를 마무리했지만 ‘불쌍하다’라는 그 말이 전화를 끝내고도 계속 맴돌았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무난하게 통화를 마무리 한 편이었다.     

다음으로는 시댁에 전화를 걸었는데, 40분 동안 시어머니의 질타와 걱정을 들어야 했다. 물론 여기서 걱정은 ‘나’에 대한 걱정이 아닌 ‘아기’에 대한 걱정이었다. 주 요지는 친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말씀이 길었을 뿐. 다른 게 있다면 어머님이 직접 키워줄 테니 만3세가 될 때까지 어린이집을 보내지 말라로 강경히 요청하셨다.      


여담이지만 우리 부부는 딩크족(뜻:부부가 결혼한 뒤 맞벌이를 하면서 자식을 의도적으로 갖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으로 결혼했었다. 물론 서면으로 강력하게 합의를 본 사항은 아니었지만, 남편이 자식 생각이 애초에 없었고 나 또한 큰 생각이 없었기에 결혼 후 3년 동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 가끔 의심의 소지는 있었지만 워낙 생리불순이 심한 탓에 의심은 의심으로 마무리 되곤 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마트에서 장바구니가 없어 물건을 담요에 싸서 주차장으로 올라갔는데 담요를 안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꼭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 같았고 나는 문득 우리의 2세를 보고 싶었다. 기나긴 시간 동안 논의 끝에 엄마,아빠가 되기로 결심했고 남편의 조건은 1개였다. “절대로 양가의 도움을 쉽게 받지 말 것, 우리의 자식은 우리가 키워야한다.” 였다. 나는 당연히 동의했고 그 결과 지금 예쁜 아기가 곁에 온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어머님이 키워주신다는 말씀은 당연히 의미가 없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시어머님은  너무 서운해 하셨고  그 서운함에 대한 토로는 ‘아기가 너무 어리다.’‘불쌍하다’로  나를 설득하려 했다. 어찌 어찌 통화를 마무리 하고 남편이 오자마자 하소연을 쏟아부었다. 덕분에 나는 우리 아기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전달하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후 100일간은 양가 안부 전화를 드릴 때마다 ‘아기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어리다.’,‘불쌍하다’를 들어야 했고 ‘쑥쑥찰칵’이라는 어플을 통해 어린이집 적응을 잘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아기는 누구보다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고 있고 아침마다 웃으며 등원하고 있다. 가끔은 나랑 있는 것을 심심해 할 정도로 어린이집을 잘 다니고 좋아한다.     


이론적으로 어린이 집에 등원하기 괜찮은 나이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이른 어린이집 입소가 매우 큰 잘못이고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아기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조언은 감사하지만 질책과 연민 그리고 동정은 삼가주었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우리아기의 행복을 바라는 것은 우리 부부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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