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안 하는 고3의 그럴듯한 핑계
나는 고3이다. 미친 듯이 공부하고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야 할 나이이다. 다가오는 6월 모의고사로 내 인생이 판가름 날, 내가 보기엔 위태로운 국면을 맞은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사는 꼴은 어떠한가? 매일 유튜브만 보고, 게임만 하고, 폐인 같이 살고 있다. 그것도 고3이. 주변의 급우들이 이번 수능의 응시자 수라던가, 선택과목에 대한 토의, 출제 유형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겉으로는 나도 아는 척, 동의하는 척 괜히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속으로는 나의 무지함과 비루함, 게으름에 대한 원망으로 저려온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것일까? 공부 말고 딱히 할 줄 아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름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온 나로서는 공부란 결국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한편으론 나의 자존심을 담당하는 삶의 일부였다. 그런데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사실, 나는 지금까지 오롯이 흥미로 살아왔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뭐 이리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나 싶겠지만, 나름 삶의 중요한 기로 앞에선 남녀노소 잡념이 많아지는 것이다. 아무튼 이어서 이야기하자면, 나는 다양한 흥미를 가지고 있어서 초등학교 시절 때부터 이것저것 하곤 했었다. 물론 그런 것들은 내 또래 아이들에겐 전혀 인기가 없는 것들이었고,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다지 인기가 없는, 외톨이라면 외톨이였다. 물론 이런 괴짜 같은 성향에 함께 해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과 중학교까지 함께했다. 그럼에도 다수의 아이들로부터 소외되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중학교 때는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으로서 영재학교에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내가 잘났다는 환상에 잠겨있었다. 그러다 입학이 좌절되고 일반고에 왔다. 1학년때까지는 성적도 좋았다. 급우들도 나를 무슨 천재처럼 받들어주며 - 솔직히 딱히 덧붙일 캐릭터성이 없는 나에게 덧씌울 좋은 캐릭터였을 것이다. 난 그들이 자칫하면 외로웠을 수도 있었던 고등학교 생활을 환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친구들이라고 생각한다. - 내 허영심을 채워주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이상하게도 내 성적은 수직 하락했다. 공부가 일반적인 것이 되면서 나는 손쉽게 따라 잡혔다. 그러니 공부에 점점 흥미를 잃은 것 같다. 더 이상 내 허영심을 채워주지 않으니 말이다. 고3이 되니, 이상하게도 해탈했다. 성적도 그럭저럭 나오니 그냥 대학 아무 데나 가면 되는 것 아닌가? 물론 나도 사람이다 보니 가끔 좋은 대학에 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불쑥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또한, 내 망상들에 지치기 시작했다. 난 초등학교, 혹은 그 이전부터 망상을 즐겨했다. 나는 이런 자신을 "상상력이 풍부한",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포장했고, 그 포장을 나름 자랑스러워했다. 이제서야 그 포장이 벗겨지고, 그것이 나의 허영심, 자만감에서 비롯된 아직 버리지 못한 철없는 생각들의 단편임을 알게 되었다. 난 아무것도 아니다. 훌륭한 수재나 언변이 뛰어난 정치가, 카리스마 있는 리더, 창의적인 발명가, 그 무엇도 아니다. 망상에선 무엇이든 될 수 있었기에 현실의 내가 방치되었나 보다. 이제 내게 남겨진 건 거의 아무것도 없다. 또래에 비해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한다. 아는 게 많다고 나름 자기 위로를 하지만, 그런 것들은 대부분 매우 국소적이고 쓰잘데기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보불 전쟁 당시의 독일군의 소총이라던가, 단선 철로와 복선 철로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 우주선에 대한 야트막한 상식, 각 나라들의 수도... 그렇다고 이런 지식들이 깊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정리하자면, 내게 남은 건 잡다한 상식과 소외된 인간관계 그리고 한없이 나태해진 나 자신이다. 이제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 시절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지도 않는다. 인터넷에서 영상들을 보거나 쓸데없는 글을 읽거나 AI와 우스꽝스러운 상황극을 한다던가, 게임을 하며 무의미한 유희들로 하루를 버린다. 하루를 알차게 보내보려는 결심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내가 재밌게 본 웹툰이 있다. 아마 웹소설 기반으로 한 웹툰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에는 소설 작가 자신의 삶을 투영한 인물이 나온다. 그는 지금의 나처럼 얼레벌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을 했음에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렇게 우울해하다 삶을 비관하고 자살하려 하지만 이내 실패한다. 그리고 그가 한 것은 그가 좋아하던 피아노를 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일이 풀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것으로 남들에게 인정받고 소중한 동료가 생긴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고 취직에도 성공한다. 지금 깊은 수렁에 빠진 내가 올려다 보기엔 너무나 높은 경지이다. 끝없는 자기혐오와 반복되는 실패로 점점 깊은 늪에 빠지는 내겐 그저 꿈같은 이야기로만 들린다.
그러나, 아직까지 남아있는 실낱같은 희망이 계속 속삭인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이 지긋지긋한 늪에서 벗어나 스스로 성취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한 번 빠져보려 한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놀랍게도 작문이다. 난 글 쓰는 것이 좋다. 하지만 거기서 한층 더 나아가 타인이 내 글을 읽어줬으면 하는 욕망이 있다. 설령 그것이 내 마음속에 아직 남아있는 허영심의 한 단면이라고 해도, 여전히 그것이 내게 주는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 창작물이 인정받는 것보다 가슴 벅찬 일이 있을까? 내 꿈은 남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다른 이의 마음을 울리고 싶다. 또 한 가지 꿈이 더 있는데,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그래야 다른 이들도 내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글을 꾸준히 써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내게도 뭔가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한창 방황할 나이이다. 그 방황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보고자 한다.